▲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

퇴근하는 길 마트에 들러 휴지 30롤을 사들고 낑낑대며 귀가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다. 무선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이다. 손가락을 움직일 힘만 있다면 집안에서 365일을 날 수 있다. 마켓컬리 앱을 켜 식자재를 주문하고, 쿠팡 앱을 켜 생필품을 주문한다. 마켓컬리 ‘샛별배송’은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신선한 식재료를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문 앞에 가져다준다고 속삭인다. 쿠팡 로켓배송 상품도 자정까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무조건 상품을 받아 볼 수 있다.
기술 발전과 맞물려 코로나19는 물류업계 성장세에 기름을 부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생활물류 택배물동량 자료’를 보면 올해 1∼8월 물동량은 21억6천34만여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다.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에 따르면 쿠팡과 마켓컬리의 올 상반기 결제금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41%(9조9천272억원), 127%(4천144억원) 늘었다.
기업의 이윤과 소비자의 편익은 늘어가고 있는데 노동자의 환경은 정작 과거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과로사 추정 죽음을 맞았고,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일용직·기간제 신분으로 고용 불안정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린다. ‘성장하는 산업, 후퇴하는 노동 현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매일노동뉴스가 물류산업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고용 규모 크게 늘었지만,
대부분 불안정 노동”


쿠팡은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이어 고용 규모 빅3로 올라섰다. 산업의 성장이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수 기준 쿠팡과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센터가 고용한 인원은 4만3천171명이다. 고용 규모 3위였던 LG전자(4만500명)를 제쳤다. “산업성장기에나 볼 수 있는 고용을 동반한 성장”이라는 평가도 이어졌지만, 성장한 인력의 다수는 불안정 노동이다.
지난 19일 국민연금공단이 공공데이터 포털에 공개한 ‘국민연금 가입 사업장 내역’에 따르면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센터에 소속돼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동자는 4만7천700명이다. 1만546명이 신규가입했고, 7천317명이 국민연금 가입 자격을 상실했다. 국민연금 가입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까지 헤아린다면 훨씬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쿠팡풀필먼트센터는 쿠팡 자회사로 물류센터를 운영한다.
빛이 밝으면 그 뒤 어둠이 짙은 법. 성장하는 물류산업을 지탱하는 노동시장의 그림자는 뚜렷했다. 택배노동자는 최근 잇따라 과로사 추정 죽음을 맞았다. 이로 인해 미흡하지만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택배터미널·물류센터 노동이다.
택배사는 지역 거점 서브터미널 사이를 잇는 허브터미널에서 간선 상·하차 인력을 고용한다. 서브터미널에서도 상·하차 인력을 필요로 한다. 허브터미널에서 물건을 싣고 온 간선차 물건을 내려야 할 인력이다. 이들은 대개 인력도급업체 소속 일용직·기간제 노동자로 매일 저녁 혹은 새벽에 물류터미널로 출근하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쿠팡·마켓컬리 물류센터는 또 다르다. 두 업체는 직매입한 물품을 자체 물류센터에 쌓아 두고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집품(Picking·피킹)-포장-출고’를 거친다. 직매입한 물건을 물류센터에 입고하는 과정도 있다. 물류센터 내 업무는 대부분 일용직·기간제 노동자에게 맡겨진다.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새벽 인력시장”

물류센터 사용자는 진입장벽이 낮은 지원 제도와 탄력적인 근무 시스템을 노동자의 자율성으로 포장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온라인판 서울 구로구 새벽 인력시장이 매일 열린다.
“주간(근무 조) 확정 문자 오신 분 계신가요?”
“난 왜 (확정 문자) 안 오지 ㅜ 출근 마렵다(하고 싶다).”
“밤 10시까지도 출근하라 마라 문자가 안 와서 뭐라고 했더니 새벽 한 시에 티오(정원) 마감이라고 오네요.”
쿠팡·마켓컬리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공사현장으로 데려다줄 승합차에 몸을 싣기를 기다리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출근 확정 여부를 주변 동료에게 물으며 전전긍긍한다. 쿠팡·마켓컬리물류센터에 관한 정보 공유를 위한 채팅방에는 일하길 희망하는 이들 100여명이 모여 있다.
이들은 대개 온라인으로 출근을 지원하고 출근 확정 문자를 받으면 다음날 출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자신이 하게 될 업무에 대해 충분한 설명 없이 투입되는 탓에 “(냉동 혹은 냉장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경우) 장갑을 가져가야 할지, 롱패딩을 입어야 할지” 질문을 한다. “출근 확정 문자가 오지 않아 약속을 잡았는데 당일 출근 통보 문자를 받았는데 거절하면 나중에 불이익 받을까요?”처럼 혹시 받을지 모를 페널티를 두려워하며 부당한 지시·명령을 정당하게 거부할 것인지 망설인다.
결국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 근무를 지원해 일하기 시작했다던 이들은 “저는 출고(업무)로 배정받았다가 아침에 출근했더니 입고(업무)로 바뀐 적도 있어요”란 증언처럼 자신이 애초 맡기로 한 업무를 하지 못해도 받아들인다.

“늘어나는 일용직 노동”

제대로 된 업무교육을 받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돼, 업무 중 재해에 노출될 확률은 더 크지만 이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은 취약하다.
지난 9월 쿠팡 노동자 인권실태조사단이 제작해 공개한 ‘쿠팡 집단감염,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는 “일하다 아프거나 다치는 경우 재계약 여부 불이익 등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부분 노동자가 일용직이다 보니 아프거나 다치게 되면 다음 날 일하지 않는 방식을 쉽게 선택한다”고 적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 ㄱ씨는 “일하다 쓰러진 여성을 본 적이 있는데 (중략) 119에 연락하려고 하니 관리자가 119에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말 쿠팡 부천신선2센터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97%가량의 노동자가 기간제이거나 일용직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집단감염 사태가 없었다면 물류센터 노동은 지금처럼 주목을 받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상품 판매와 유통을 함께 담당하는 이커머스 기업은 당일 물량에 따라 필요한 인력을 계산, 고용해 비용 효율을 꾀한다. 클릭 하나면 집 앞까지 필요한 물건·식료품·갓 조리된 음식을 가져다 주는 세상이지만 결국 그 뒤를 지탱하는 것은 언제든 쓰고 버리기 쉬운 유연화된 노동력이다. 빅데이터는 재고 처리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혹은 더 싼 가격에 노동력을 사용하기 위해 실시간 시장 수요량과 노동 공급량을 매칭하는 데 이용된다.
일일근로 노동자(일용직)는 증가 추세다. 지난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같은달 전체 임금노동자는 2천44만6천명으로 지난해 8월 대비 시간제 노동자가 9만7천명(3.1%), 비전형 노동자가 2만8천명(1.4%) 증가했다.
비전형 노동자에는 파견·용역·특수형태근로·일일근로·가정내근로 노동자가 포함된다. 이 중 지난해 8월 대비 올해 8월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고용형태는 일일근로(19.8%)다. 가정내근로(7.4%)가 뒤를 이었다. 파견·용역 노동자는 각각 9.8%, 10.3% 감소했다. 특수형태 노동자도 5.8% 줄었다. 비전형 노동자 중 56.9%가 비자발적으로 노동을 선택했다고 답했고,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84.7%)”라고 응답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 안 롯데택배 물류창고. 저녁이 되면 택배 상·하차 노동자들이 업무를 시작한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 안 롯데택배 물류창고. 저녁이 되면 택배 상·하차 노동자들이 업무를 시작한다.

 

“물류센터 노동자 조직화 기지개 켜”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긴 쉽지 않다. 노동형태·작업방식상 전통적 사업장처럼 동료와 문제의식을 공유할 시간이 없다. 일하는 곳을 변화시키는 험난한 길을 택하기보다 대부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를 택한다.
고건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모임 대표는 “일용직 비율이 70%인데다 식사시간 60분 말고는 법정 휴게시간도 없어 소통할 기회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용직들이 노조를 결성·활동하면 (회사는) 그들의 지원을 막아 버리면 그만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는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3·6·9·12개월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2년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당장 일을 그만둘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닌 한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쿠팡 부천신선2센터에서 3개월 계약직으로 일하던 고건 대표는 지난 5월 업무 중 재해를 입고 요양 중이던 7월23일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고씨는 쿠팡발 집단감염 사태를 알리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사람이다. 그는 쿠팡의 계약해지 결정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전형 노동자 93.6%가 가입할 노조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런 통계를 반영하듯 쿠팡·마켓컬리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는 노조가 없다시피 하다. 배송노동자인 쿠팡친구(옛 쿠팡맨)가 노조를 만들어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에 가입한 것이 드문 사례 중 하나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조직화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주부터 쿠팡 물류센터 앞에서 마스크와 함께 ‘쿠키런(쿠팡 노동자들의 권리를 함께 키워 가는 커뮤니티)’을 홍보하는 선전물을 나눠 주는 활동에 들어갔다. 쿠키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네이버 밴드’에 개설된 소통방이다.
이민진 노조 경기지역본부 조직국장은 “쿠팡 물류센터는 같은 센터 안에서 일하더라도 층이 다르면 얼굴 볼 일이 없고 교대근무 사업장이라 노동자끼리 서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먼저 관련 현장 상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조 차원의 공식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조직국장은 “고용형태가 너무 불안정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직률이 높은 사업장이다 보니 기존 노조 형식으로 담기가 어렵다”며 “알바노조나 권유하다, 라이더유니온 같은 형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애초 위험노동은
일용직에게 맡겨선 안 돼”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고용계약 경쟁 속에서 경제적 압박, 계약을 지속해야 한다는 압박, 최저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며 “이런 압박은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도록 만들고 노동강도 강화 경향에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상윤 대표는 “상·하차 업무를 포함해 물류센터 노동자는 물건을 들고 옮기다가 넘어지거나, 감전 위험에 시달리는 등 물리적 사고 위험뿐 아니라 근골격계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안전관리 측면으로 보면 (위험노동에) 일용직을 투입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패턴 자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용직 노동자는 특수고용직처럼 노동자성을 부정당하지는 않지만, 신분의 불안정성 때문에 권리를 주장하거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고건 대표는 “과거 물류 일은 다 한번씩 스쳐 지나가는 노동, ‘급전’이 필요할 때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류 일이 늘어 이제는 일반 직장으로 바뀌는 추세”라며 “그런데 근로조건 보호나 관련한 제도적 장치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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