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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정부 무관심에 속수무책, 위기의 중소조선소] 용접불꽃 향연 사라진 자리에 적막에 싸인 철제 흉물만 남아통영 신아SB·성동조선해양 "제조업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살죠"

   
▲ 배 짓는 도크가 꽉 찼다. 마지막 물량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가득하다. 정기훈 기자

   
▲ 경남 통영 신아SB 도크가 텅 비었다. 선체 블록을 받치는 핀 지그(Pin Jig)가 쓸모를 잃었다. 녹슬어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기사님. 신아SB, 아니 SLS조선소로 가 주세요.”

“미륵도 가시게요? 요즘 그쪽으로 가 달라는 손님 거의 없는데. 밤 9시만 돼도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하잖아요. 조선소에서 일하던 외지 사람들도 나가 버린 지 오래고. 근데 신아조선소는 앞으로 어떻게 된답니까?”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서 통영대교를 건너 택시로 15분쯤 달리면 한때 석유화학제품선 시장의 글로벌 강자로 불렸던 신아SB 조선소에 도착할 수 있다. 민원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조선소 안으로 들어갔다. 적막하다. 육중한 크레인이 오가며 내는 사이렌 소리도, 노동자들이 힘껏 내리치는 망치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선소를 수놓은 용접불꽃도, 용접기 주변을 감싸고도는 매캐한 연기와 분진도 보이지 않는다. 텅 빈 야드 너머로 바다가 파랗고, 인적 없는 조선소 창공을 까치 두 마리가 한가로이 날아다닌다.

시간이 멈춘 것일까. 선박블록이 들어차 있어야 할 공장에는 삐죽삐죽 첨탑처럼 생긴 철제 구조물(핀지그, 선박 블록 지지대)이 도열해 있다. 공동묘지에 줄을 맞춰 선 묘비 같다. 5분쯤 걸어 도착한 금속노조 신아SB지회의 노조게시판도 시간을 잊은 모양이다. 누렇게 빛이 바랜 포스터는 2013년도 민주노총 노동자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 신아SB <정기훈 기자>

용접불꽃 망치소리 사라진 통영 신아SB

1946년 최기호조선소로 출발한 신아SB는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다. 76년 신아조선공업으로 상호를 변경한 뒤 78년 대우그룹 계열로 편입됐다. 89년에는 정부의 조선산업합리화계획에 따라 대우조선으로 흡수합병이 시도됐다. 이때 고용불안을 우려한 노동자 300여명이 회사를 퇴사한 뒤 퇴직금을 갹출하고 통영지역 유지들의 출자를 받아 종업원지주회사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15년간 종업원이 대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이 회사를 운영했다. 하지만 우리사주조합장이 주도한 분식회계로 자본이 잠식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사주조합이 2006년 지분 일부를 SLS중공업에 매각하면서 신아조선의 상호는 SLS조선으로 바뀌었다.

SLS로 팔린 다음해인 2007년 우리사주조합의 과거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났다. SLS조선은 재무신용등급 최하위인 G등급 판정을 받으며 금융권으로부터 선수금 환급보증(RG)을 발급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RG는 조선업체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내는 지급보증 제도다. 조선업체는 은행이 RG를 발급해 줘야만 선박건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무역보험공사는 2008년 1월 SLS조선에 6억달러(27척)의 RG를 발급했다. SLS조선의 건조역량을 넘어서는 규모였다. 당연히 사고가 났다. 27척의 선박 중 16척을 기한 내에 인도하지 못하면서 보험사고가 터졌다. 무역보험공사가 손실을 떠안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정권실세 로비의혹이 불거졌다. 때마침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SLS조선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줄면서 선박발주량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워크아웃이 시작됐어요. 신아SB라는 상호는 이때 붙은 거고요. 출자전환으로 최대주주가 된 무역보험공사는 워크아웃 4년 동안 아예 RG를 발급해 주지 않았어요. 조선소 살리기보다는 채권회수에 급급했죠. 영업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려 한 거예요. 부동산 매각과 임직원 급여삭감, 복지 축소, 인력감축이 단행됐죠.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3천300여명이 조선소를 떠났습니다.”

김민재 금속노조 신아SB지회장의 말이다. 신규수주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은 일감을 뜻하는 수주잔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09년 66척, 2010년 22척, 2013년 1척…. 신아SB는 지난해 8월 마지막 배를 인도했다. 현재 법정관리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사직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직원 230여명은 무급휴업 상태다.

신아SB는 이달 13일로 법정관리 돌입 1년이 됐다. 최근 법정관리인이 바뀌면서 법정관리 기간이 6개월 연장됐다. 청산이든 회생이든 6개월 뒤면 운명이 결정되는 시한부 인생이다.

   
▲ 경남 통영 성동조선해양 도크에서 한 노동자가 용접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워크아웃 이후 신규수주 0척, 지난해 8월 마지막 선박 인도

신아SB 조선소가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RG 발급이 필요하지 않은, 즉 손실 위험이 없는 야드와 크레인 임대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에서 70% 가량 건조한 선박의 마무리 공정작업을 수주해 부분조업도 하고 있다. 공무지원팀 소속 마운영(44)씨는 부분조업에 투입된 노동자 중 한 명이다. 용접작업이 많은 배 안에서 일할 때 불꽃이 튀어도 폭발하지 않는 방폭등을 설치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가장 열 받을 때가 언젠지 아십니까. 여기 미륵도 조선소를 싹 밀어 버리고 카지노 세우자고 말하는 인간들을 볼 때예요. 확~마!”

마씨가 이처럼 분통을 터뜨리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3년 경상남도가 공동주최한 경남건축대전에서 ‘신아SB 조선소 부지를 활용한 테마파크 계획안’이 대상을 수상했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앞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신아SB 부지를 관광단지로 개발하자는 제안이 지역사회에서 유력하게 검토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사회가 신아SB 살리기에 소극적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상 지회만 일터를 지키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실정이다. 지회의 적극적인 제안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2013년 1월 통영시를 고용촉진특별구역으로 선정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가 벌어진 경기도 평택에 이어 두 번째다. 2년간 210억여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고용유지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당시 유급휴업 중이던 신아SB 노동자들은 고용특구 지정에 따라 하루 1만원씩 한 달 30만원의 휴업임금을 더 받았을 뿐이다. 소속이 불분명한 ‘물량팀’ 노동자를 포함해 고용보험에 미가입한 노동자는 이마저도 받지 못했다.

“국내 중소조선소들이 자력으로 회생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아SB 법정관리 기간이 앞으로 6개월 남았는데요. 그 안에 인수기업이 나타날 거라고 보기는 어렵죠. 그럼에도 회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김 지회장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 선박브로커가 신아SB로 보내온 이메일 한 통을 열어 보였다. 신아SB가 정상화되면 예전처럼 다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조선산업 불황기가 지나고 다시 호황기가 돌아오면 지금 남의 집(다른 조선소)에서 하청으로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이 돌아올 곳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며 “떠나간 조합원들이 통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지역경제도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 성동조선해양. <정기훈 기자>

'풍요 속 빈곤' 통영 성동조선해양

국내 조선산업은 이른바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로 대변되는 대형조선소와 신아SB 같은 중소조선소로 양분된다. 대형조선소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나 해양·플랜트 부문에 주력하는 반면 중소조선소들은 주로 상선시장에서 중국 등 신흥강국을 상대로 경쟁을 한다.

조선경기가 호황일 때 24곳까지 늘었던 중소조선소 가운데 신아SB·대한조선·오리엔트는 법정관리에 들어가 매각이 진행 중이다. 세광조선·C&조선·녹봉조선·삼호조선·21세기조선은 매각됐거나 파산했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가동 중인 조선소는 성동조선해양·STX조선해양·SPP조선·대선조선 등 4곳뿐이다. 그마저도 채권단인 금융기관의 관리를 받고 있다.

통영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성동조선은 요즘 ‘풍요 속 빈곤’을 절감한다. 일감은 차고 넘치는데 부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저 쪽을 한 번 보세요. 도크마다 배가 꽉 찼잖아요. 이렇게 수주물량이 많은데 법정관리가 웬 말입니까. 무려 2년치 일감이에요.”

정동일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장의 손끝이 육상건조 방식으로 배가 만들어지고 있는 조선소 2야드 쪽을 가리켰다. 육상에서 건조된 선박블록은 바지선처럼 생긴 부양식 도크인 플로팅도크로 옮겨져 최종 조립돼 바다에 띄워진다.

2001년 조선산업에 뛰어든 신생 조선소인 성동조선의 강점은 최신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게 뻗은 선박 조립라인(스퀴즈) 위로 머스크·스콜피오탱커·마마라스·나빅에잇 등 각국 선주사들이 주문한 배들이 형태를 갖춰 가고 있다. 최대 무게 3천톤인 선박블록을 옮길 수 있는 모듈트랜스포터가 그때그때 각각의 스퀴즈로 블록을 실어 나른다. ‘P공정’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제작방식은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하고 공기를 단축하는 효과가 있다.

   
▲ 성동조선해양. <정기훈 기자>

2년치 일감 쌓아 두고 부도 걱정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성동조선은 지난달 말 기준 198만7천CGT(수정환산톤수·75척)의 일감을 보유 중이다. 수주잔량 기준 세계 9위다. 매일 조선소 곳곳에서 꽃잎처럼 흩날리는 용접 불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렇게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조선소에 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글로벌 금융위기의 먹구름은 성동조선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전방산업인 해운업 침체로 선박 수주계약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설상가상으로 2009년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로 인한 환차손 피해로 무려 1조5천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부채가 자본보다 많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이다.

조선업계 특유의 대금 회수방식도 성동조선의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선박 수주시 계약금액의 10~20%만 받아 배를 만들고, 나머지 금액은 선주에게 배를 인도할 때 받는 헤비테일(heavy-tail) 방식이 일반화돼 있다. 일감은 많은데 돈이 없는 이유다. 성동조선은 2011년 3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기업 재무구조 개선사업에 돌입했다. 지난 5년간 2조원이 넘는 돈이 성동조선에 지원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지난달 채권단회의에서 성동조선에 4천2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하자는 안건을 올렸다가 부결됐다. 최근 지원금액을 3천억원으로 줄여 안건을 재부의했지만 역시 채권단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무역보험공사와 우리은행은 성동조선에 대한 ‘깨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로 대표되는 경남기업 사태로 금융권에 추가지원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현재로서는 수출입은행이 단독지원에 나서는 것만이 성동조선의 법정관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자금이 끊기면 지금까지 수주한 물량도 취소될 수 있다.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2만4천여명의 노동자가 성동조선 일감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어요. 더구나 조선산업은 해운·철강·기계·전자통신 등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성동조선과 거래하는 철강기업이 12곳, 거래규모가 2천258억원에 달할 정도니까요. 다른 분야까지 합치면 총 814개의 협력업체가 성동조선과 연간 1조1천311억원 규모의 거래를 맺고 있습니다.”

정동일 지회장은 조선산업의 전후방 효과를 강조했다.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끝내 무산되면 성동조선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의 동반부실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성동조선 선박 수주금액 중 60~70%가 중소협력사에 돌아가는 구조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내려가는 낙수효과가 크다. 뿐만 아니라 성동조선 같은 중소조선소들은 주력선종인 중소형 상선시장에서 중국 등 경쟁국의 추격을 견제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 왔다. 자금난으로 고사 위기에 놓인 중소조선소에 자본의 논리만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국가 산업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매일노동뉴스>가 찾은 중소조선소 두 곳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통영의 가장 오래된 조선소 신아SB는 6개월 남은 법정관리 기간이 종료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 결정에 따라 성동조선도 같은 길을 걷게 될 여지가 크다. 화려한 용접불꽃의 향연이 지고 적막에 휩싸인 거대한 흉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조선강국 명성도 함께 지고 있다.

   
▲ 성동조선해양 노동자가 가족사진으로 만든 그림벽 앞을 지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기름때 묻은 장갑이 바닥에 뒹굴었다. <정기훈 기자>

구은회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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