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조선산업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하던 성동조선해양이 현재와 같은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된 배경에는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로 인한 환차손 피해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업계가 호황일 때 선박을 수주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선수금 환급보증(RG)을 받아야 했던 조선업체들은 은행들의 키코 상품 가입권유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2009년 성동조선은 1조5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들었다. 비슷한 시기 키코를 구매했던 중소기업이 흑자부도에 내몰리고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와 임금삭감을 감수해야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6년이 지난 현재 성동조선은 또다시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채권단 추가 자금지원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우리은행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도 성명을 통해 “조선업의 업황 개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영업손실 발생과 자본잠식 규모가 가중돼 정상화가 불가능한 기업에 대한 당연한 판단으로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당사자인 성동조선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자금지원이 무산되면 2만4천여명에 달하는 직영업체와 협력업체 직원들의 고용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의 근본원인이 정부의 지원부재에 있다고 진단한다. 한 국책은행 연구소 연구위원은 “키코 피해 등을 감안하면 중소조선소 재무구조 악화는 조선소만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렵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자본의 논리로 중소조선소를 망하게 둘 건지, 지역경제나 고용을 고려해 살려 낼 건지를 결정하는 것인데 그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권단이 추가지원에 한계를 느끼는 상황이라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은행들에게 손실을 떠안으라는 정부의 태도는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심보와 다르지 않다”며 “국민의 고용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태도로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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