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중형조선소를 살리겠다”는 과거 약속과 달리 자금지원을 끊고 법정관리와 사업축소·재편에 나선다. 조선산업 회복세에 내린 결정이다. 노동계는 “몇 개 안 남은 중형조선소를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정부가 고강도 구조조정을 위한 노사 확약을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반발이 예상된다.

◇산업은행 "구조조정 더 요구할 것"=정부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이날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형조선소인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처리방안을 확정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성동조선해양은 법원에 의한 회생절차 신청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추가적인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한다는 뜻이다.

STX조선해양은 지켜보기로 했다. 전제는 “자력생존이 가능한 수준”의 고강도 구조조정이다. 정부는 “고강도 자구노력과 사업재편을 대해 4월9일까지 노사 확약이 없는 경우에는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가 대규모 인력감축에 동의하지 않으면 STX조선해양도 법정관리를 하겠다는 뜻이다.

정부 발표로 성동조선해양이 문을 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지금껏 재무컨설팅 결과를 통해 회사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를 훨씬 웃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추가 자금지원 없이 회사 운명을 법원에 맡긴 이유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동조선해양 유동성을 봐서는 2분기 중 부도가 예상된다”며 “법정관리가 회생을 위한 절차냐는 질문에는 지금 답할 수 없고, 법원과 채권단이 잘 생각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STX조선해양에서는 최대 절반에 가까운 인력감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3천700여명이었던 STX조선해양 노동자는 1천300여명으로 급감한 상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컨설팅에서 40% 정도 인력 구조조정을 해서 기본적인 경쟁력을 갖추라는 결과가 나왔다”며 “저희는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더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몇 개 안 남은 중형조선소 말살책"=정부가 정책결정 근거로 삼은 것은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해 나온 두 회사 경영컨설팅 보고서다. 정부가 산업 전체에 대한 고려 없이 채권단을 위한 금융논리에 입각해 정책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삼정회계법인이 두 달간 작업기간 동안 조선산업이 안고 있는 복잡한 내용을 얼마나 파악했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스스로 밝히고 있듯 기업 감사·회계·세무 전략 등 기업금융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격에 비춰 볼 때 구조조정 방안이 채권자들의 구미에 맞게 설계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정부 결정은 조선산업이 회복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뤄졌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올해 1월 동안 최근 4년 새 최대실적 수주를 올렸고, 대우조선해양은 올 들어 두 달간 전년 수주실적의 40%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말 올해 수주전망치를 기존 77억달러에서 82억달러로 올렸다고 공시했다. 조선산업이 불황의 늪에서 바닥을 쳤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후보 시절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확대를 공약하며 “중형조선사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다. 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는 이날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앞에서 93일째 천막농성을 이어 갔다.

노조는 성명을 내고 “좋은 일자리를 무엇보다 우선하고, 사람이 먼저라던 문재인 정부가 STX조선해양 인원을 더 줄이고, 성동조선해양은 청산하겠다고 한다”며 “조선업을 살리겠다더니 정작 노동자를 죽이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조선산업 회복세가 뚜렷한 만큼 두 조선소 고용보장을 통한 회생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고, 추가 희생이 필요하다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도 정부가 최악의 방안을 발표했다”며 “금융논리로 조선산업을 재단하며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조선정책이라면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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