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레인 소리, 망치 소리 멈춘 공장 높은 곳에 까치가 산다. 사람 기척에 경계를 한다. 정기훈 기자

“원론적인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금 상태에선 백약이 무효입니다. 당장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줄줄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국내 중소조선소들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 데다, 정부마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해법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조선산업이 호황일 때 24곳까지 늘었던 중소조선소 가운데 아직까지 살아남아 가동 중인 조선소는 성동조선해양·STX조선해양·SPP조선·대선조선뿐이다. 그마저도 채권 금융기관의 관리를 받고 있다. 호황기 과잉투자와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로 인한 환차손 피해,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자금력이 약한 중소조선소에게 특히 불리한 대금회수 방식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낸 결과다.

한국 중소조선소들이 직면한 난관 중 핵심은 부채과다와 자금부족에 따른 경영불안이다. 금융위기 이후 부도 위기에 몰린 중소조선소들이 비슷한 시기에 채권단과 자율협약 방식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갔지만 현재까지 경영정상화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조선소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갔다. 채권단이 개별업체에 요구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조선소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노동자 고용불안과 노동조건 저하를 동반했다. 정부가 정책적 개입 없이 중소조선소 위기를 사실상 방치한 탓이다.

허민영 경성대 교수(경제학)는 “법정관리를 목전에 둔 성동조선해양만 해도 상시고용인력이 1만명에 달한다”며 “정부가 일자리 지키기 관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는 조선소들을 정부 주도로 통합해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조선소 통합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를 상대로 한 재취업교육과 전직지원서비스 역시 정부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중소조선소 위기의 본질이 정부 지원 부재에 있다는 비판은 중소조선소 채권단으로 참여하는 국책은행 관계자의 입에서도 나온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성동조선에 대한 추가 자금지원에 반대한 것은 채권단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정부가 나선다면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중소조선소를 살릴 수 있는데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고사 위기에 놓인 중소조선소에 시장 논리만 들이대지 말고 국가산업 관점에서 해법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중소조선소 스스로도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흥준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는 "조선소 인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기능인력으로 양성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업체로 탈바꿈할 경우 중국 등과 저가 상선시장에서 경쟁할 필요 없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