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선합창단 단원들이 지난 20일 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권중심 사람 회의실에 모여 노래하고 있다. '오월의 노래'다. 임정현(뒷모습)씨는 손짓으로 이끌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틈틈이 농담이 끊이질 않았다. 웃음도 그랬다. 즐거워서 하는 일이다.

김밥을 나눠 먹으면서도 악보를 본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연습곡을 들으며 음을 잡아 보기도 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저녁 7시에 찾은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강의실은 공연을 앞둔 무대 뒤편을 떠올리게 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정장 차림의 전문 가수들이 아니다. 공장·회사·학교·단체에서 일을 마치고 달려온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이날은 ‘이소선합창단’의 정기 연습일. 연습곡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오월의 노래'와 ‘진달래’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임정현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소프라노가 ‘진달래’의 첫 소절을 먼저 불렀다. 그 위로 베이스와 알토가 목소리를 겹친다. 테너가 뒤따라간다. 목소리들은 함께 가되 뒤섞이지 않았다. 제 음을 지키며 새 화음을 만들어 낸다.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끝을 좀 더 둥글게, 다시 해 보자”는 지휘자 말에 마지막 소절이 부드러이 몇 차례 반복된다.

양대 노총 ‘이소선’으로 만나다

합창단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소천과 함께 태어났다. 지난 2011년 9월3일 양대 노총은 이소선 어머니의 민주사회장을 함께 치르며 프로젝트 합창단을 꾸렸다. 어머니가 생전에 늘 했던 "하나가 돼라"는 말을 지키자는 취지였다. 그해 9월7일 한국노총 연세의료원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등 양대 노총 노동자들이 함께 영결식 무대에 섰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장례는 끝났어도 노래는 계속됐다. 이날 참여자들이 마음을 모아 정식 합창단을 발족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어머니가 생전에 투쟁현장을 찾아 응원해 주시던 것을 우리가 해 보자고 한 거죠.”(이영희 매니저)

임정현 성악가가 지휘하고 이영희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 차장과 이장주 금속노조 교육국장이 매니저를 기꺼이 맡았다. 오디션을 통해 단원도 모집했다. 양대 노총 조합원뿐 아니라 합창단 설립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지원했다.

현재 단원은 40여명. 연세의료원노조·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쌍용차지부·서울지하철노조·홈플러스테스코노조 월드컵지부·공공운수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조합원들과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한글문화연대·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노동·시민단체 소속 활동가, 외국계기업 수습직원, 대학생까지 함께하고 있다.

합창단은 매달 2회 정기연습을 하고 노동현장과 농성장을 찾아 공연을 한다. 각자 다른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꾸준히 모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였고, 그 힘으로 합창단은 지난 2년간 성장할 수 있었다. “노래실력도 실력이지만 여기선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스스로 회비와 시간을 내는,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이 모여 합창단이 유지·발전할 수 있는 거죠.”(이경옥 서비스연맹 사무처장)

그렇게까지 마음을 주게 된 이유는 뭘까. “서로 잘 몰랐던 사람들이 알아 가고, 노래를 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되더라고요. 투쟁사업장 공연에서 사람들이 힘을 얻는 모습에 저도 힘을 얻죠. 어떻게 보면 노동자들이 모이던 이소선 어머니 사랑방 같지 않아요?” 이영희 매니저의 설명이다.

연대와 치유, 그리고 공감의 화음

베이스를 맡은 이찬웅 마필관리사노조 조합원은 안양에서 달려왔다. 새벽에 출근하는 그에게 평일 저녁 연습과 뒤풀이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안 그래요. 원주에서 기차 타고 오는 분도 있는데요. 빠지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죠. 연습이 안 되니까.”

창립멤버인 이씨는 첫 무대였던 이소선 어머니 영결식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사실 그땐 양대 노총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노조에서) 가라니까 그냥 갔지. 그런데 저 작은 분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냈다니 대단하다 싶었어요.”

합창단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에겐 새로웠다.

"우리 사업장도 어렵지만 쌍용차를 비롯해 어려운 사업장이 많더라고요. 서로 얘기를 나누고 조언도 들었습니다. 많이 배웠죠. 합창단 차원에서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집회와 쌍용차지부 대한문 농성장에도 노래하러 갔습니다. 제가 보는 세상이 더 넓어진 느낌이에요."

이경옥 사무처장은 올해 7월 오디션을 거쳐 소프라노로 참여했다.

“지난해 어머니 1주기 추모제에서 합창단 공연을 보고 너무 해 보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 합창단 활동을 했던 기억도 나고, 생전에 어머니가 이랜드 파업투쟁 끝나고 저희한테 밥을 사 주셨던 생각도 나고 해서요.”

그는 오디션도 가까스로 봤을 정도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합창이 재미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날도 노조 회의를 마치자마자 뛰어왔단다.

“집회나 회의를 제쳐 두고 여기서 노래를 부르는 게 맞는 것인지 갈등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발언보다 노래가 투쟁사업장에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스스로도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을 치유하고 활력을 얻어요. 나를 위한 시간 같기도 하고. 음악이 갖는 힘이랄까요.”

이 사무처장은 이어 “혼자가 아닌 옆 사람 목소리를 들으면서 맞춰 가는 게 합창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합창단에서 한국노총 조합원들에 대한 편견을 깼어요. 합창단이 서로에게 힘이 됐듯 여기저기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노동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어머니처럼.”

테너를 맡은 권재현 단원은 "합창단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노래로 뭉칠 수 있다는 것, 이런 방식으로도 하나 됨을 지향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진정성 있는 노래로 노동자를 넘어 사용자까지 울릴 수 있었으면 해요. 노사가 계속 평행선에만 서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는 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 지부장이다. 경향신문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최초로 보도한 언론사로 알려져 있다. 그 인연으로 합창단 가입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권 지부장은 합창단 가입 당시 “내가 먼저 해 보고 만족하게 되면 조합원들에게도 가입을 권유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어떨까. “아직은 아쉬움이 많지만 가능성이 커요. 어제보다 오늘 노래가 더 좋고요. 힘들어도 해 볼 만하다 싶어요.”

그는 내년 공연 때는 조합원들에게 초대장을 돌릴까 생각 중이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잖아요. 직접 보여 주고 싶어요.”

내년 5월 창립 1천일 맞아 정기공연

이날 연습은 밤 10시가 돼서야 끝났다. 그래도 단원들에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다음달 11일 인권재단 사람 송년회 무대에 섭니다.” 이장주 매니저의 공지에 연습실이 왁자해졌다.

“우리 이달엔 매주 만나야겠다.”

“이참에 연습일정을 월 4회로 늘릴까?”

합창단은 내년 5월 첫 정기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창립 1천일에 맞춰서다.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저희가 원래 무대 체질이라 일단 저지르면 잘해요.” 이영희 매니저는 합창단이 발전하려면 다른 이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공연 요청이 들어와도 사람이 부족해서 많이 못 가는 게 제일 아쉽거든요. 앞으로는 합창단에 새로운 단원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재정지원도 좀 있었으면 하고요.”

이장주 매니저는 ‘이소선’ 이름으로 문화와 현장이, 그리고 사람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태일 열사나 어머니와 함께한 사람들의 격려를 업고 현장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이름이 우리를 통해 일상에서 계속 불렸으면 하고 바랍니다.”

전태일 열사 43주기를 맞은 2013년 11월. 노동자들은 ‘이소선합창단’ 이름으로 따뜻한 하나가 되고 있었다.

글=윤성희 기자 / 사진=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인터뷰] 임정현 이소선합창단 상임지휘자

“양대 노총의 하모니가 현장을 행복하게 합니다”


테너 임정현(49·사진)은 2011년 이소선 어머니 영결식 공연 지휘를 맡은 것을 계기로 이소선합창단 상임지휘자까지 맡게 됐다. 그가 기꺼이 지휘봉을 잡은 이유는 뭘까.

“합창단을 필요로 하는 곳, 합창단이 가 있어야 할 현장에 있을 때 가장 기쁩니다.”

그는 각자의 일터에서 모이기 힘든 단원들이 기어코 모여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더 많은 힘을 얻는다고 했다.

“단원들이 근무시간이 달라서 자주 모이기 어려워요. 그래도 휴가까지 내고 참여하는 단원들이 있습니다. 흐뭇하죠.”


- 이소선합창단이 노동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일종의 해방구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에는 갈등이 없거든요. 양대 노총 간 교집합 속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습니다. 서로 공감하고 걱정하는 관계랄까. 양대 노총에서도 합창단을 정식으로 인정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 지금의 노동문화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노동자들이 보다 다양한 문화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노조 문화가 너무 단순합니다. 변할 줄 모르는 거 같아요. 20년 전과 똑같은 구호에 똑같은 율동에….

그러면서도 집에 가면 자녀들에게 오페라·연극을 보여 줍니다. 왜 노동자와 노조라는 굴레에 들어가면 달라질까요. 양대 노총이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는 포부, 이루고 싶은 세상에 관한 포부, 그런 것들이 사회 변화를 앞당기지 않을까요.”


- 노동현장에서 성악가는 찾아보기 어려운데요. 힘들진 않나요.

“현장이 나의 '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 포지션은 '테너 임정현'입니다. 오페라도 지금이야 고급문화라고 하지만 당대엔 대중문화였어요. 사회 문제도 많이 다뤘죠. 클래식이 한국에 이상하게 들어와서 사람들이 현실 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젠 이상하지 않고 ‘멀쩡한’ 클래식 가수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 인식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 콘서트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2월2일부터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쫌'이라는 제목으로 콘서트를 합니다. 노동이 실종되고 비정상적으로 가는 사회는 이제 그만하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공연은 저녁 7시30분부터 시작합니다. 지난해 발매한 음반에 담은 곡 '문상과 창밖' '회귀'를 비롯해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과 캐럴까지 다양한 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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