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1. “그녀는 하루 종일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노동을 한다. 일거리가 밀려 야간작업을 할 때면 정말 살고 싶은 마음이 안 난다. 연거푸 이틀 밤, 사흘 밤을 꼬박 새워 가며 일할 때는 정신이 아득해 저도 모르게 눈이 저절로 감긴다. 집에서 쉬는 날이라고는 한 달에 이틀뿐.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해도 그녀의 한 달 임금은 평균 3천원. 왕복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

#2. “도대체가 집, 회사, 집, 회사. 집에 들어가면 몇 시야! 어젠 새벽 2시에 들어갔어.”

“저는 어젠 차 안에서 두세 시간인가 대기를 하는데 밥때가 지나가는데도 누구 하나 밥 먹으라는 사람도 없는 거예요. 그러고 현장 타설 마무리될 때까지 또 두 시간인가 세 시간인가 대기했죠. 대기한다고 수당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고요. 24시간 대기를 해도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3만원짜리 탕떼기라니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위의 두 노동자가 누구인지 짐작했으리라. 첫 번째는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1970년 평화시장 시다 노동자, 두 번째는 2013년 레미콘 특수고용노동자의 이야기다.

지난 14~16일 수도권 레미콘 특수고용노동자 3천600여명이 못 살겠다며 운행을 중단했다. 이들의 요구는 세 가지다. 적정 운송료 쟁취, 조출·야간·연장수당 지급, 노비계약서인 도급계약서 철폐다. 레미콘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여다보면 2013년 이들의 삶이 1970년 노동자의 삶에서 그리 많이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적정 운송료 쟁취. 새벽 3시에 출근하고 밤 10시에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인 레미콘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은 276만원. 여기서 1억원이 넘는 차량 할부금·보험료·소모품비 등을 제하고 나면 순소득은 115만원. 비현실적이기로 악명 높은 보건복지부 고시 2013년도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55만원보다도 소득이 낮다. 평균 50대 가장인 레미콘 노동자 상당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에 해당하는 ‘일하는 빈민’과 다름이 없다.

둘째,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에 대해 수당 지급. 이미 근로기준법에 정해져 있는 권리이건만 레미콘 노동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이들이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건설현장 요구에 맞추느라 새벽 3시 출근, 밤 10시 퇴근을 밥 먹듯이 하며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지만, 이들의 보수는 1회 운행당 3만원으로 고정돼 있다. 성수기라 해도 운행률이 50% 수준이다 보니 차량 할부금이라도 내려면 한 탕이라도 더 해야 되기에 장시간 노동을 안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교통사고 치사율이 가장 높은 것이 일반 차량의 2.4배인 레미콘이다. 2008년부터 산재보험 특례가입이 되지만 근로자와 달리 보험료의 절반을 레미콘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회사의 압력으로 적용제외(탈퇴) 신청을 하고 있어 적용률이 29%에 불과하다.

셋째, 도급계약서 철폐. 레미콘 노동자와 레미콘회사가 맺는 도급계약서에는 ‘을’의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레미콘 회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장거리 운행이나 다른 공장 지원업무 지시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레미콘 운반 및 각종 사고, 제3자에 대한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레미콘 기사가 진다. 일체의 노조활동·단체행동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하면 손해배상을 한다. 레미콘회사의 지시·도급계약 사항을 위반할 때 즉시 계약해지한다. 노예계약서나 마찬가지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계약서이건만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인 레미콘 노동자에겐 버젓이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1970년의 전태일과 “열심히 일만 해도 항상 가난한 레미콘 노동자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일어서서, 레미콘을 멈춰 노동조건을 바꿀 것이다”며 레미콘 번호판을 목에 걸고 동맹휴업에 나선 2013년의 레미콘 노동자들. 노동법이 뭐라 하건, ‘노동자’라는 이름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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