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벌이는 임금교섭이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 사용자협의회가 이례적으로 사실상 임금 동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올해 임금인상 요구안으로 정규직 8.1% 인상, 무기계약직 포함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 임금인상률의 2배 인상안을 제출한 상태다.

사측, 사실상 임금 동결 통보

지난달 21일 상견례 뒤 첫 중앙교섭이 이뤄졌던 지난 7일 논란이 불거졌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박병원 사용자협의회 회장은 미리 준비해 온 7쪽 분량의 ‘사측 교섭방향’을 읽어 내려갔다. 박 회장은 세계경제 침체와 우리나라의 낮은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언급했고, 금융권과 산업 전체의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통계치를 들이밀었다. 은행의 당기순이익 감소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금융권 경영상황이 악화되고 여전히 임금도 높다는 것이다. 거론된 수치가 가리키는 방향은 뻔했다.

“부실채권과 순이자 마진 하락, 가계대출 부실로 금융권 순익이 악화된 만큼 솔선수범해서 임금인상을 자제하자”던 박 회장의 상견례 발언은 이날도 반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임금인상 자제"의 의미에 대해서는 "임금 동결이라는 말은 너무 과격해서…"라고 말했다. 임금인상 자제가 곧 임금동결을 뜻한다고 밝힌 것이다.

노사정 일자리 협약, 교섭 발목 잡나

첫 상견례 때와 달라진 것은 임금동결 요구의 근거로 지난달 30일 한국노총과 경총·고용노동부가 체결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협약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일자리 협약에 명시된 "노사는 기업 실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고임금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한다"는 문구를 인용했다.

이날 박 회장이 밝힌 ‘사측 교섭방향’에는 “올해 금융권의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최근 대두된 통상임금 문제와 노사정 일자리 협약 문제가 임금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는 특히 “노사정이 합의한 일자리 협약은 금융권에도 고용창출과 임금인상 자제 등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며 “산별교섭에서는 임금인상을 논하기보다 우선 노사정 합의사항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현안사항인 통상임금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사정 일자리 협약과 관련한 박 회장의 발언은 김문호 노조 위원장이 “아무런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체결한 노사정 협약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섭에서 절대 거론하지 말라”고 항의한 뒤에야 중단됐다.

통상임금 문제 쟁점으로

교섭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전망은 통상임금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사용자협의회가 먼저 운을 뗐다. 사용자협의회는 경총의 자료를 근거로 통상임금 추가 비용이 38조5천억원 발생한다든지, 기업의 추가비용 부담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말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금융권의 경우 정기상여금이 임금총액 대비 20% 이상을 차지해 해결이 어렵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노조도 통상임금 논란을 비껴 가지 않았다. 노조는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의 임금협약 요구안을 추가로 제출했다.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과 제 수당을 산입하는 내용이다. 노사 간 견해차가 커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정년연장을 비롯한 중앙노사위원회 안건은 다루지도 못한 상태다. 정년연장과 관련해 사용자협의회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등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에 금융 노사가 먼저 얘기하기는 부담스럽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 노사의 세 번째 중앙교섭은 18일 열린다. 교섭이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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