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내용의 ‘정년연장법’을 통과시킴에 따라 입법절차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앞으로 남은 절차는 환노위 전체회의·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다. 법이 통과되면 ‘60세가 되기 전 나이를 이유로 한 해고’는 부당해고가 된다.

하지만 고령자의 고용보호와 노후 생활안정이라는 입법취지가 온전히 자리매김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사오정’(45세가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를 양산하는 희망퇴직·명예퇴직·정리해고 제도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한 60세 정년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사오정·오륙도' 퇴출되는 노동자=이날 환노위 전체회의로 넘어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공공·민간 부문의 모든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고, 오는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 1월부터, 300인 이하 사업장은 2017년 1월부터 적용된다.

지금까지 정년 60세는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이었다. 현행법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단일정년제를 운영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 정년은 57.2세에 그치는 실정이다. 정부 통계를 봐도 상당수 노동자들이 53세를 전후해 퇴직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이날 소속 사업장 344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사업장 정년과 실제 퇴직정년이 차이가 나느냐’는 질문에 응답 업체 50.6%가 ‘그렇다’고 답했다.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승진 누락이나 명예퇴직 압박 등으로 회사에서 버티기가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42%로 가장 많았다. 일할 능력이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조기에 퇴출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의 ‘후선역제도’가 대표적이다.

영업 실적이 부진한 직원을 후선에 배치하고 보수를 깎는 ‘후선역제도’는 금융권 내에서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노동자에게 모멸감을 안겨줌으로써 스스로 회사를 떠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노동자를 수익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성과주의 문화가 사실상의 강제퇴직 제도를 만들어 냈다”며 “이 같은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정년 60세 의무화의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득 보다 실' 임금피크제=정년연장법은 ‘임금체계 개편’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업주는 노동자 과반수로 구성된 노조나 근로자대표와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 이를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할 경우 노사 일방이 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임금체계 개편의 방식은 노사 자율에 맡겼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을 깎는 임금조정(임금피크제)뿐만 아니라, 현행 연공급제 방식의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바꾸는 방안 등을 노사가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경영계는 그동안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오래 근무한 노동자에게 많은 급여를 주는 연공급제가 기업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해온 만큼, 정년을 연장하려면 임금삭감은 필수라는 논리다. 문제는 임금피크제 역시 직원 퇴출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학습지업체 대교가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임금피크제가 대표적이다.

대교노조에 따르면 대교는 일정 기간 안에 승진을 하지 못한 직원을 임금피크제 대상으로 분류하고, 매년 임금을 70%·60%·50% 등으로 깎았다. 40대 초반의 직원도 임금피크제 대상에 포함됐다. 정년연장의 보조수단인 임금피크제가 노동자를 내쫓는 수단으로 악용된 경우다. 대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 개별 노동자 개개인에게 동의서 받았다. 노동조합이 무력한 상황에서 엉터리 임금피크제 도입에 제동을 걸 수단은 없었다.

◇노동계 "정년연장 환영하지만…"=이는 앞으로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노사의 줄다리기가 철저하게 힘의 논리를 따르리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의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재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근속년수는 5.34년,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중은 19.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근속년수가 가장 짧다. 구조조정이 수시로 이뤄지고,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기준 노조조직률은 10.1%로 노동자에 대한 보호막도 얇아지고 있다. 노동계가 여야의 정년연장법 합의 소식에 환영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는 이유다.

한국노총은 “정년연장 대상 노동자들이 고숙련자인만큼 숙련직무위주의 임금체계로 개편돼야 한다”며 “제도를 악용한 임금 깎기는 역효과만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명예퇴직·권고사직 같은 만성적인 고용불안 구조가 제거되지 않으면, 정년연장은 허울뿐인 정권 홍보수단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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