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올초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한다”며 “출발점은 노사법치주의”라고 말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조를 개혁 대상으로 지목했고 노사법치주의 칼날은 주로 노조를 향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한 정부는 올해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이어 나갔다. ‘건폭몰이’ 수사 한복판에 있던 고 양회동 건설노동자는 노동절 분신해 숨졌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에 노동계는 ‘정권퇴진’ 또는 ‘정권심판’ 구호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국회 문턱 넘은 노란봉투법, 거부권으로 무산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3일부터 20일까지 노사정 관계자·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2023년 10대 노동뉴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주요 노동사건 58개 중 응답자가 10개를 중복 선택하고, 올해의 인물은 설문 참여자가 직접 주관식으로 작성했다.

올해 최대 노동뉴스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92표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노동자의 교섭 대상을 원청으로 확대하고 파업을 이유로 개별 조합원에 대한 무분별한 손배 소송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6~7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노조법 개정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금 힘을 받았다.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CJ대한통운 원청이 택배기사의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34표·9위)은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게 했다.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본회의 처리까지 난항을 거듭했다. 5월 본회의에 직회부됐지만 5개월이 넘도록 상정되지 못하다 11월9일 전격 처리됐다. 힘겹게 국회 문턱을 넘겼지만 통과 이전부터 정부·여당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달 8일 국회로 다시 넘어온 법안은 출석 의원 ‘3분의 2’ 벽을 넘지 못해 최종 폐기됐다.

‘노사법치주의’ 확립, 건폭몰이부터 회계공시까지

정부 노동개혁의 큰 축으로 추진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78표로 2위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3월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최대 ‘주 69시간’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노동부는 결국 지난달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정부는 노사관계 정책 방향을 노사법치주의 확립으로 제시하며 그 일환으로 노조회계 공시 의무화도 추진했다. 노조회계 공시가 3위로 63표를 받았다. 올해 10월 노조회계 공시와 조합비 세액공제를 연계하는 내용의 노조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이 시행됐다. 양대 노총은 정부 방침을 노동탄압으로 보고 반대했지만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동참했다. 한국노총은 회계를 공시한 경우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시행령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노사 법치주의의 칼날은 건설노조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건폭’으로 규정하고 단속을 지시했고, 검·경은 채용 강요나 노조전임비를 받는 행위에 형법상 강요·공갈죄 등을 적용했다.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5월1일 분신해 이튿날 숨졌다. 건폭몰이에 항의한 양 3지대장의 분신이 올해 노동뉴스 4위(56표)를 차지했다. ‘간첩 수사’와 전직 간부의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양대 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29표로 10위다.

김용균이 남긴 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적용유예 기간 연장되나

김용균씨 5주기를 앞두고 나온 대법원 판결이 7위(38표)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청 법인·원청 대표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김용균씨 사건과 관련해 원청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는 데 좌절했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경영책임자는 응당한 책임을 지게 됐을까. 법원에서 관련 사건에 대한 선고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여전하다.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내년부터 법을 적용하기로 한 50명 미만 사업장의 적용유예 기간을 연장(55표·5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3년 유예에 이어 2년 연장이 되면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일터 내 안전은 그만큼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서이초 교사 사건이 42표로 6위에 올랐다.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가 숨지는 사건 이후 전국 교사들은 대규모 집회를 수차례 열어 교권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내년 최저임금이 36표를 받아 8위로 뒤를 따랐다.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 9천620원에서 240원 오른 9천860원으로 결정됐다. 2.5% 인상돼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윤석열·이정식 올해 인물 3·4위

올해의 인물에는 고 양회동 건설노동자가 뽑혔다. 34표로 최다 득표했다. 고인은 유서에서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부의 ‘노조 때리기’와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부른 양회동 지대장 분신 사망 이후 노동계는 ‘윤석열 정권 퇴진’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일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31표로 두 번째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각각 30표와 26표를 얻어 3·4위를 차지했다. 직선제 실시 이후 첫 연임 위원장이 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자가 23표로 5위에 올랐다. 경찰의 유혈진압으로 구속수감됐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6위(21표)다. 그는 지난 5월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청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철탑농성을 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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