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려고 노조에 가입했다” “윤석열 정권 퇴진시켜 달라”

노동절인 5월1일 분신한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유서 중 일부다. 그는 지난해 12월 건설노조에 대한 정권 차원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경찰조사를 받았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혐의가 적용됐다.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고 관철한 행위, 단체협약 체결에 따른 노조 전임비 지급 요구를 정부는 공동공갈이라고 몰아 붙였다. 건설노동자가 만들고 안착시켜 온 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귀를 닫은 정부 앞에 고인과 함께 일한 건설업체 현장소장의 처벌불원 탄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한 그는 이튿날 숨졌다.

죽음으로 ‘정권 퇴진’ 행렬 묶어

노사정 관계자·전문가 100명 중 34명이 ‘올해의 인물’로 양회동 지대장을 꼽았다. 정부의 노조 때리기와 건설노조에 대한 검·경의 대대적 수사가 불러온 고인의 죽음은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를 “윤석열 퇴진하라”는 구호로 한데 묶었다. 정권 초기인데 퇴진 요구는 무리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목소리는 양회동 지대장 죽음 이후 사라졌다. 고인은 숨진 지 50일 만인 6월21일에야 영면에 들어갔다.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외치며 시작한 경찰의 250일 특별단속이 끝난 8월16일. 건설노조에만 20여 차례의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조합원 1천700명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양회동 지대장의 장례는 끝났지만 유언을 가슴에 담은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존재감 없었던 양대 노총 위원장
극심한 노정갈등 속 김동명 2위, 양경수 5위

노정갈등이 극에 달했던 한 해였기 때문일까. 양대 노총 위원장 이름이 올해의 인물 톱5에 올랐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2표, 김동명 위원장은 1표를 받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김동명 위원장이 31표를 받아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양경수 위원장 당선자는 23표로 5위다.

1월17일 28대 한국노총 임원 선출을 위한 선거인대회에서 김동명 위원장은 재선에 성공했다. 당선 직후 그의 일성은 “투쟁의 디엔에이가(DNA) 살아 있고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겠다”였다. 상시투쟁기구를 구성해 현안별·의제별 대정부 대응에 나섰던 한국노총은 6월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상투쟁계획을 결정했다. 위원장은 “여기서 물러서면 또 다른 김준영이 나온다”며 반대파들을 설득했다.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한 지 5개월 만인 11월13일에는 전격적으로 경사노위 복귀를 선언해 주위를 또 놀라게 했다. 그의 발언과 결정 하나하나에 노정관계는 술렁였다.

앞으로 시작할 사회적 대화에서 한국노총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보인다. 복귀 결정이 공무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논의 시작을 위해서였을 뿐 정부에 빚을 진 채 끌려 들어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고용노동부 엇박자 올해도 계속

올해의 인물 3위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30명이 선택했다. 올해에도 윤 대통령의 돌출발언은 이어졌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6일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 외에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해 일이 많을 때는 주 최장 69시간까지 일하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논란이 되자 윤 대통령은 같은달 16일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발을 뺐다. 발표 당사자인 노동부만 멋쩍게 됐다. 10월30일에는 이주노동자 임금이 높아 걱정이라는 업주들 말을 빌려 “ILO 조항 탈퇴”라는 말을 꺼냈다. 5월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은 이달 1일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도 국회로 다시 돌려보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26표를 받아 4위에 꼽혔다. 주 최대 69시간이 가능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내놓았다가 큰 반발에 부딪혔다. 노조회계 공시 제도를 밀어붙이고 노조법 개정안에 대놓고 반대하면서 올해 내내 노동계 비판에 시달렸다.

올해의 인물 5위는 23표를 받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자다. 정권 퇴진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주도하는 등 노정갈등의 전면에 서면서 노·사·정·전문가들로부터 인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재선한 그는 “윤석열 정권과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민주노총 영향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조합원 요구를 실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피 흘리며 연행, 김준영 처장 6위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21표를 받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5월30일 포스코 하청노동자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8미터 높이 철탑에 올라 농성하다 다음날인 31일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봉으로 수차례 얻어맞아 부상을 입었는데도 경찰·검찰은 그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구속했다. 하청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자는 취지의 노조법 개정 필요성을 다시 상기시키고, 투쟁·교섭을 두고 줄다리기가 이어지던 한국노총 내부 분위기를 ‘사회적 대화 중단’으로 끌고 가는 기폭제가 됐다.

노동자는 올해에도 이 사람에게 빚을 졌다. 올해의 인물 7위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다. 7명이 선택했다. 노동자의 핏값으로 한발씩 진보해 가던 산업안전보건 제도는 아들을 잃은 김 이사장의 헌신으로 속도를 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외치는 행렬에 항상 그가 서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의 죽음과 관련해 원청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부 노동정책 메신저' 권순원 원장 8위
학자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순위 올라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대학원장이 6표를 받아 8위를 올랐다. <매일노동뉴스>가 매년 진행하는 조사에서 학자가 이름을 올린 것은 2017년 당시 어수봉 한국기술대 교수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6년 전에는 어수봉 교수가 최저임금위원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 상생임금위원회 좌장,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 등을 맡은 권 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유연화에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최일선에 서며 시선을 받고 있다.

죽고 나서야 임금체불을 인정받은 택시노동자 방영환씨는 올해의 인물 9위다. 5표가 나왔다. 월급제 정착과 임금체불 해소를 요구하며 227일간 1인시위를 했던 고인은 9월26일 분신한 뒤 치료를 받다가 10월6일 끝내 숨졌다. 지난해 5월 임금체불이 없다고 판단한 노동부는 고인이 죽고 난 뒤에야 다시 감독을 해 1천565만원의 체불이 있다고 확인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서이초 교사,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3표를 받아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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