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서 끝내 최종 부결되는 운명을 맞았다. 노동·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동약자’를 위한다던 윤석열 정부가 비정규·하청·특수고용 노동자 등 가장 취약한 노동자를 위한 노란봉투법을 거부했다는 자기모순을 여지없이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다. 노란봉투법은 길게는 20년, 짧게는 9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노동자의 죽음 이후 20년간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가 제기돼 왔다. 2009년 정리해고에 반발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들에게 2014년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진 것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운동을 일으켰다.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가족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손배·가압류는 특히 교섭권을 갖지 못한 비정규·하청·특수고용 노동자를 더 옥좼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지난해 6~7월 진행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도크 점거파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정부는 하청노동자 농성장에 경찰력 투입까지 고려했다. 결국 원청은 파업이 끝난 뒤 하청노동자들에게 470억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비정한 현실 속에서 노동·시민사회는 원청의 사용자성과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고,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을 추진했고, 지난 5월 본회의에 직회부된 뒤 지난달 9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20여일 만인 지난 1일 거부권을 행사했고 8일 본회의 재투표에서 재석 291명, 찬성이 177명으로 3분의 2를 밑돌아 부결됐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힌 노란봉투법 부결은 거부권 남발 비판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현재 양곡관리법, 간호법에 이어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등 총 6건의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28일 통과될 것으로 전망되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도 예상된다. 야당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며 해당 법안 재추진 의사를 밝힌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정 노조법 거부권 행사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노정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82개 노동·사회단체는 지난 11일 ‘거부권을 거부하는 비상행동’ 구성했다. 민주노총은 “노동계 모두가 힘을 모아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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