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김해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대흥알앤티의 국소배기장치 모습. 대흥알앤티 노동자 13명은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독성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에 중독돼 급성간염을 일으켰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흥알앤티지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로 시행 1년을 맞았다. 재계는 법 시행 이후 50명 이상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실효성을 깎아내린다. 정부는 재계 입장을 반영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놓고 보완(혹은 완화) 입법을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은 효능이 없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 11건을 모두 입수해 살펴봤다. 네 차례에 걸쳐 한계와 성과를 짚고 개선점을 모색한다.<편집자>

“트리클로로메탄을 10% 이상 함유한 혼합물에 한해 유해화학물질(유독물질)로 볼 수 있는데 피의자는 세척제에 트리클로로메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그 함량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유해화학물질’인지 몰랐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중략) 피의자가 세척제가 ‘유해화학물질’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했음에도 표시나 점검 등을 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노동자 13명이 독성간염을 일으킨 경남 김해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대흥알앤티의 대표 A(66)씨에게 검찰이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이유서에 적은 내용이다. 검찰은 A씨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다고 보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형식적 조치만으로 ‘면죄부’를 받았다는 비판이 인다.

‘국소배기장치 성능 개선’ 이유로 법망 피해

대흥알앤티는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유일하게 불기소된 사업장이다. A씨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보건조치 미이행)만 적용돼 기소됐다. 똑같이 노동자 16명이 독성간염에 걸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와 대조적이다. 트리클로로메탄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상 관리 대상 유해물질로 분류돼 있다.

같은 사고지만 다른 판단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 시각을 보면 향후 법 적용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법조계는 검찰이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만 강조해 실질적인 ‘이행’은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경영책임자가 세척제에 유해물질을 사용했는지 몰랐는데도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다했다고 판단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시행령 규정을 법문대로 해석해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대흥알앤티의 불기소 이유를 보면 이 같은 비판의 근거가 드러난다. 환기시설인 국소배기장치의 ‘유해·위험요인 확인과 개선 절차’ 이행 여부가 기소 여부를 갈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3호는 이러한 절차를 마련하고 반기 1회 이상 점검해 조치하도록 정하고 있다.

결정적인 불기소 이유는 ‘국소배기장치 성능 개선’이다. 대흥알앤티는 2021년 7월 한국안전기술협회에 의뢰한 자율 안전 진단에서 집진장치 오류로 인한 위험성이 지적됐다. 이에 따라 국소배기장치 유속 증가를 위해 청소나 보수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검찰은 이를 두고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봤다.

업무수행평가 기준·의견 청취·예산 배정 ‘합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4조5호)의 ‘안전보건 책임자의 업무수행평가 기준’ 마련도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매년 위험성 평가를 통해 일부 위험요인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대흥알앤티가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시행령 4조7호)’도 거쳤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노사가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국소배기장치 성능 저하가 논의된 사실이 근거가 됐다. 정기회의록에 근로자위원 서명이 없었는데도 검찰은 사측이 충실히 의무를 이행했다고 본 셈이다.

재해 예방을 위한 ‘예산 편성과 집행(시행령 4조4호)’ 역시 혐의 없음(증거불충분) 결론이 나왔다. 대흥알앤티가 작업환경 개선 비용으로 9억7천여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이유에서다. 대흥알앤티는 2020~2021년 위험성 평가에서 집진장치 오류로 인한 위험성 부분이 지적되자 △국소배기장치 청소 △공기공급 입구 확인을 위한 터치모니터 설치 등으로 시설을 일부 개선했다.

▲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흥알앤티지회
▲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흥알앤티지회

기소건 위반사항, 대흥알앤티만 전부 ‘미적용’

대흥알앤티 불기소 처분 판단에 적용된 법률 조항은 기소된 다른 11개 사건과 상당 부분 배치된다. 같은 독성간염 중독 사업장인 두성산업이 대표적이다. 두성산업 대표는 △유해·위험요인 확인과 개선 절차 △업무수행평가 기준 마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두성산업 대표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며 “관리감독자가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도 마련하지 않는 등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직업성 질병은 아니지만 다른 10건의 기소 사건도 모두 ‘업무수행평가 기준’ 의무 규정 위반이 적용됐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담당자에게 안전 문제를 맡긴 채 책임을 피했다고 본 것이다. 7개 사업장도 ‘유해·위험요인 확인과 개선 절차’ 의무 미이행이 적발됐다. 대흥알앤티는 기소된 사업장 대부분이 위반한 의무 규정을 전부 피했다고 볼 수 있다.

납품업체 대표 “MSDS 놔둬라?” 법정 증언

실제 재판 과정을 보면 검찰이 단편적으로 법 적용 여부를 판단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예컨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기재’ 내용을 두고 상반된 해석이 나온다. 검찰은 MSDS에 트리클로로메탄 성분과 함량에 대한 기재가 없었으므로 대흥알앤티 대표가 유해화학물질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흥알앤티에 세척제를 납품한 업체 대표는 지난해 11월16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흥알앤티는 세척제를 한두 달 정도 사용하니 MSDS는 (필요 없으니) 놔두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겨울철에 트리클로로메탄이 든 세척제를 납품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대흥알앤티가 MSDS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검찰이 일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이행’에만 매몰된 탓에 불기소 처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박다혜 변호사(노동자권리연구소)는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있어 주로 국소배기장치 성능 미달과 관련한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에게 부여하고 있는 의무를 단순히 특정한 실무적 조치에 관한 관리상 책임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정 조치 이행, 경영책임자 책임 제외 안 돼”

검찰이 간과한 부분은 또 있다. 대흥알앤티가 유해화학물질을 상시로 취급하는 사업장이라는 점이다. 박 변호사는 “대흥알앤티에서 사용하는 세척제 성분은 수시로 변경된다”며 “경영책임자가 세척제 성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에 실패했는데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어떤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바탕으로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를 따져야 한다”며 “일부 시설에 대한 특정 실무적 조치만을 두고 관리상의 책임을 다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가 전혀 달성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대흥알앤티 노동자들은 불기소 처분으로 인해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김유길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흥알앤티지회장은 “단순히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준수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며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하는 바람에 회사는 완전히 면죄부를 얻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대흥알앤티 대표와 두성산업 대표 등에 대한 다음 재판은 22일 오후 속행된다.

▲ 대흥알앤티 홈페이지 갈무리
▲ 대흥알앤티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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