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4주기 추모위원회와 정의당 주최로 7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재판, 실태를 말하다 토론회. <정기훈 기자>

“경동건설은 저희 아버지가 1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고 했지만 시신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온몸에 피멍과 골절상을 입었고, 오른팔은 뼈가 어긋난 채로 팔을 뚫고 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부어오른 목이 보였습니다. 아, 이래서 아버지가 의식을 잃으셨구나. 산소 공급이 안 돼 뇌사가 왔구나.”

부산의 경동건설 신축공사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하청노동자 고 정순규씨 딸 승남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법정에서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경동건설 현장소장은 ‘법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며 “경동건설로부터 ‘죄송하다’ 이 말이 꼭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승남씨는 지금도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못한 상태다. 지난 6월 부산지법은 고 정순규씨 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JM건설 관계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됐지만
법적 책임지는 경영책임자는 없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노동자 사망사고에 법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비판이 높다.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재판, 실태를 만하다’ 증언대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현장에 대한 증언들이 쏟아졌다. 증언대회는 정의당과 고 김용균 4주기 추모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정순규씨 사건은 CCTV나 목격자가 없어 진상규명에 난항을 겪었다. 그런데도 경동건설측은 1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조사기관에 따라 추락 높이는 달라졌다. 부산고용노동청은 2.15미터, 안전보건공단은 3.8미터, 부산경찰청은 4.2미터로 추정했다. 정승남씨는 “정확한 사고원인을 모르면 재수사를 해야 하는데 사측의 산업재해조사표를 그대로 제출하는 상황들이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노동부가 작업중지명령을 내린 뒤 고인이 사망한 현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정승남씨는 “부산노동청장 직인이 찍힌 ‘작업중지 명령서’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고 당시에는 없었던 비계안전 그물망과 안전난간대가 설치됐고, (비계)관을 고정하는 클램프도 새 것으로 교체돼 있었다”며 “비계만 제대로 설치됐어도 아버지는 살 수 있었는데 경동건설은 재판과정에서 ‘본인 부주의’를 주장하며 망인을 두 번 죽였다”고 토로했다.

기업은 ‘죽은 사람 탓’ 법원은 그대로 수용

기업은 산재사망의 원인을 ‘죽은 사람 탓’을 돌리고 법원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비판이 특히 높았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2019년과 2020년 발생한 5건의 중대재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울산지검은 5건의 사건에서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안전보건관리 실행책임을 사업부 대표에 위임해 노동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 중 4건은 사업부 대표가 재판에 넘겨졌는데 검찰의 구형이 징역 1년(병합 사건은 2년)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재판 과정에서 사측 변호인은 사망노동자나 동료 노동자 개인 과실로 몰고 가는데 검찰이 사망사고의 원인과 위법 사항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기는커녕 은폐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비판했다.

노동자들이 세척제에 포함된 유해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에 급성중독돼 간독성 증상을 보인 대흥알앤티도 중대재해처벌법 혐의를 받았지만 검찰은 결국 불기소 처분했다. 김준기 금속노조 대흥알앤티지회 사무장은 “재해자들이 ‘내 몸이 증거’라고 하지만 법은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말한다”며 “사고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회사에서 실망한 노동자들이 퇴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익찬 변호사(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최초로 검찰에 송치된 삼표시멘트는 여전히 기소도 되지 않고 있고 중대시민재해 사건의 경우 송치 여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검찰에 사건이 가기 전 단계에서도 여러 차례 보완 수사 지시가 내려오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모든 증거를 토대로 기소의견으로 송치되는 이상, 검찰의 기소가 늦어지는 현상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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