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로 시행 1년을 맞는다. 재계는 법 시행 이후 50명 이상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실효성을 깎아내린다. 정부는 재계 입장을 반영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놓고 보완(혹은 완화) 입법을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은 효능이 없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 11건을 모두 입수해 살펴봤다. 네 차례에 걸쳐 한계와 성과를 짚고 개선점을 모색한다.<편집자>

“사업 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지 않아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안전관리자 등이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사현장의 전반적인 안전관리·감독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도록 했다.”

지난해 2월23일 제주대 기숙사 철거공사 하도급을 받은 50대 노동자 A씨의 추락 사고와 관련해 검찰이 지난달 30일 임대형 민자사업 신축공사를 맡은 원청 B사 대표이사 C씨를 불구속 기소하며 밝힌 공소사실의 일부다. A씨는 약 6미터 높이의 굴뚝 상단 부분을 철거하던 중 무너진 구조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검찰은 C씨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지 않아 기본적인 안전관리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지금까지 기소된 사건을 보면 검찰 시각은 명확했다. 검찰은 공통적으로 경영책임자들이 안전보건 담당자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안전보건 관리 업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법률의 실효성이 없고 집행에 혼선만 빚어진다는 재계 지적은 ‘억지 주장’이라고 법조계와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처벌’보다 ‘자율규제를 통한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시행령 개정 움직임도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경영책임자 전원 기소·하청노동자 원청 책임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법 시행 이후 이달 기준 34건의 고용노동부 송치사건 중 11건(2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불기소 처분은 급성중독이 발생한 대흥알앤티 사건 1건이다. 노동부가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수사한 229건 중 내사종결로 마무리된 사건은 18건이다. 수사 중인 사건은 177건으로, 사건처리율은 22.7%에 불과하다.

한국경총 보고서에 따르면 수사 기간은 평균 237일(약 8개월)이다. 노동부가 평균 93일(약 3개월), 검찰이 평균 144일(약 5개월)간 수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재계는 경영책임자 특정이 어렵고,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아 수사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법률이 모호해 경영책임자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소된 사건을 들여다보면 검찰의 방향성은 확고했다. 기소된 11건에서 원청 경영책임자 전원이 기소됐고, 다수는 건설업 재해(8건)로 하청노동자 사망사고(8건)가 대부분이다. 원청 정규직 사고는 한 건의 기소도 없었다. 검찰은 하청노동자가 입은 중대재해의 책임을 모두 경영책임자에게 물었다. 지난해 7월 자동차부품 제조사에서 발생한 기계 협착 사망사고의 경우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를 뒀더라도 경영책임자가 기소됐다. 기업의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 여부를 기준으로 기소 여부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로 재판에 넘겨진 업종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건설업 8군데에서 추락이나 끼임 등 사고가 일어났다. 제조업 사고는 3건이다. 원청과 계약한 이주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 등 3건 이외에는 모두 하청노동자가 재해를 입었다. 노동자 16명이 유해화학물질 급성중독을 일으킨 두성산업 사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고사망 사건이다.

사망사고 중에는 추락 4건, 기계 협착 3건, 깔림 사고 3건으로 후진국형 산업재해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규모를 보면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대기업은 전무하다. 중견기업 1건을 제외하면 모두 중소기업이다. 50명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공사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공사 규모를 보면 72억~381억원의 공사장이 적용됐다.

건설공사의 경우 최초 ‘발주자’는 중대재해 책임에서 벗어났다. 해당 공사를 도급받아 총괄·관리한 시공사에게 도급인의 책임을 물었다. 최초 발주자는 건설공사 기간 공사의 시설·장비·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읽힌다. 지난해 1월 대검이 비공개로 발표한 벌칙해설서와 일맥상통한다.

‘안전보건관리체계와 의무 위반’ 중점 기소

눈여겨볼 부분은 검찰이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원인을 어떻게 판단했느냐다. 검찰은 기소한 11건 모두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마련’과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중대재해처벌법(4조)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키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건은 여기에 더해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를 다하지 않은 점이 추가됐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부분이 공소사실의 핵심 내용인 셈이다. 지난해 2월 하청노동자가 추락사한 삼강에스앤씨의 경우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관리책임자 등이 안전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봤다. 또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를 마련하지 않고, 용역 위탁시 안전·보건 관리비용의 기준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고양시 덕양구 상가신축공사의 철근 낙하 사고도 마찬가지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조치가 되지 않았다고 봤다. 기소 사건 대부분에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을 적용했다.

시행령 4조 적용, 9가지 의무 위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를 적용한 부분을 통해 검찰 시각을 유추할 수 있다. 시행령 4조3호에 따르면 경영책임자는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뤄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시행령 4조는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 방침 마련 △안전보건 업무 전담 조직 마련 △유해 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 마련 △재해예방 예산 편성 및 집행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자 및 산업보건의 배치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및 개선 이행 점검 △중대산업재해 발생시 작업 중지 등 매뉴얼 이행 점검 △하도급 업체의 안전보건 확보조치 준수 여부 판단기준 마련 등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유형으로 마련하고 있다.

기소 사건에서는 경영책임자의 관리 소홀로 재해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확보’되지 않아 안전보건 담당자의 안전조치 ‘의무’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로 중대재해가 일어났다고 검찰은 해석했다. 안전보관리책임자 등을 ‘행위자’로 처벌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구조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대검 벌칙해설서도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경영책임자가 경영 차원에서 근본적인 관리체계를 구축하도록 함으로써 안전관리 역량을 높이고 세부적인 안전보건 조치의무가 실효성 있게 이행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하청 사망, 원청 대표 책임 실제로 기능”

법조계는 공소사실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를 반영했다고 평가한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는 하청노동자의 사망사고에 원청 대표이사가 법적 책임을 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며 “기소 사건을 보면 원청 대표의 의무 위반이 분명히 존재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원청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는 법률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 11건 중 하청 대표는 일부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됐을 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에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공소사실에는 중소기업이니 덜 엄격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사업장이 무방비로 방치된 사실이 드러나 있다”며 “중소기업이 안전보건관리를 제대로 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보건 담당자가 아닌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은 부분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공소사실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관리·감독’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견해도 있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검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 존재하고, 그 결과 중대재해가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의 안전조치의무 이행을 감독하는 체계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확보의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계가 줄곧 주장하는 ‘법률의 모호성’도 억측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재계에서 모호하다고 집중 공격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의무’로 열거한 9가지 항목을 산업안전관리체계 및 안전조치 의무와 연계해 보면 절차들이 매우 분명한 의미로 살아난다”며 “공소사실은 이들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번거로울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은 어떻게 해서든 대표이사의 처벌만은 피해 보겠다는 재계의 노골적인 요구를 그대로 받아안은 것”이라며 “정부가 노동자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에 매몰되지 않도록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고, 국회는 사업자와 국가의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