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해 일터에서 611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64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인 2021년에 비해 사고 건수는 8.1%(54건) 줄고 사망자는 5.7%(39명) 감소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50명 이상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256명으로 법 시행 이전보다 3.2%(8명) 증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 사망자 왜 늘었나?
300명 이상 사업장 사망자 10명 중 3명 화재·폭발로
대형사고 77% 증가

1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는 611건으로 644명이 숨졌다. 법 시행 이전인 2021년과 비교하면 사망자는 사망자 39명, 사고 건수는 54건 감소했다. 사고 건수가 줄어든 것에 비해 사망자수 감소가 적은 이유는 2명 이상 목숨을 앗아 간 대형사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화재·폭발·무너짐 등 대형사고는 모두 13건으로 2021년보다 5건 늘었는데 이로 인한 사망자수(39명)가 77.3% 증가했다.

대형사고는 주로 300명 이상 대기업에 집중됐다. 300명 이상 사업장에 사고사망자는 모두 47명으로 2021년에 비해 30.6%(11명) 늘었다. 이 가운데 화재·폭발 사고 사망자가 29.8%(14명)의 비중을 차지한다.

대기업의 대형 중대재해 증가는 50명 이상 사업장 사고사망자수가 늘어난 직접적인 배경이다. 지난해 50명 이상 사업장에서 230건의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해 25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1년 대비 사망자는 8명(3.2%) 늘었지만 사고 건수는 4건(1.7%) 줄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안전관리학)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전체 사고 건수가 줄어든 것은 긍정적”이라며 “추락이나 끼임사고는 단기간 안전조치로 개선이 가능하지만 폭발·붕괴 사고는 노후화된 시설을 해결하는 등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고예방에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지난해 떨어짐 사망사고는 2021년보다 47건(14.9%) 줄어든 268건, 끼임사고는 9건(9.1%) 감소한 90건으로 집계됐다. 반면 화재·폭발 사고는 57.1%(16건) 늘어난 44건, 무너짐 사고는 76.2%(16건) 증가한 35건이다.

화재·폭발 중대재해는 주로 시설이 노후한 국가산업단지에 집중됐다. 2월 여수산단에서 열교환기가 폭발해 4명이 목숨을 잃었고 4월에는 SK지오센트릭 울산공장에서 청소 중 화재로 2명이 숨졌다. 최근 3년 새 대산과 울산, 여수 등 국가산단에서 화재·폭발 사고만 7건이 발생해 13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사그라졌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 업종에 걸쳐 화재·폭발 사고가 발생한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지난해 9월에는 대전 아울렛 화재사고로 7명의 노동자가 눈을 감았다. 또 같은해 8월 감천항 바지선 폭발사고, 11월 대구 LPG충전소 폭발사고로 각 2명이 숨졌다.

사망자 10% 이상 감소한 50명 미만 사업장
원청 경영자 책임 강조한 중대재해처벌법 ‘낙수효과’

지난해 중대재해 발생 현황에서 큰 변화는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나타났다. 여전히 중대재해의 60.2%가 이들 중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되고 있지만 지난해 사고는 50건(11.6%), 사망자는 47명(10.8%) 감소했다. 특히 5명 이상, 50명 미만 사고사망자는 67명으로 2021년 대비 14명(17.3%) 줄었다.

소규모 사업장 산재사망자는 건설·제조·기타 업종 등 전 산업에서 모두 줄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경기가 되살아나고, 취업자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점을 고려한다면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감소의 실질적인 효과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강태선 교수는 “원청 경영책임자의 하청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인한 낙수효과”라고 해석했다. 최고경영자의 산재사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언론보도가 증가하면서 중소사업장 경각심도 커졌을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소규모 건설경기가 침체한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건설업 사고사망자는 341명으로 전년 대비 18명(5%) 감소했는데 특히 1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전년 대비 19명(19%)이 줄어 가장 감소 폭이 컸다. 1억~50억원 이상 건설현장에서는 오히려 사망자가 0.7%(1명) 늘었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50명 미만 사업장 사망사고가 줄어든 것은 여러 영향이 있겠지만 건설경기 침체도 빼놓을 수 없다”며 “사고사망만인율 등 사망사고 전반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299건 중대재해 수사, 구속수사는 0건
“윤 정부, 처벌 완화 시그널로 재해 증가”

노동부는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으로 229건을 수사했다. 이 가운데 177건이 여전히 수사 중이다. 사건처리율이 22.7%에 불과하다.

노동부가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에 넘긴 사건은 모두 34건, 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모두 11건에 그친다. 내사종결 처리된 사건은 18건으로 44.4%는 “법 위반 없음이 명확하다”는 이유로 종결됐다. 그 외는 ‘법 적용 대상이 아님’ 3건, ‘지배·운영·관리 범위 외’ 3건, ‘개인지병으로 사망 등 기타’ 4건이다.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33건 가운데 50%는 300명 미만 중소기업이거나 120억원 미만 건설현장이다. 대형 로펌을 동원해 법률 방어에 주력한 1천명 이상 대기업들은 4건에 그쳤다. 공사금액이 800억원 이상인 사업장도 1건에 불과하다.

최태호 노동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지난 18일 기자브리핑에서 “기업이 유해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등 사전적 예방 노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최고경영자(CEO) 처벌을 면하는 부분에 집중해 활동이 이뤄진 것 같다”며 “빨리 기소되고 판결이 나오면 전반적으로 기업들에 주는 메시지가 컸을 텐데, 사례들이 안 나오면서 긴장도가 떨어지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추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상반기까지 감소 추세를 보이던 중대재해가 윤석열 정부에서 처벌 완화 시그널을 준 7월 이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기획재정부를 앞세운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메시지가 영향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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