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드디어, 혹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다. 지난 한 해 몇 차례나 사망사고 현황과 그에 기반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 평가나 논평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시행 후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망사고 통계를 근거로 현실을 해석하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섣부른 결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1년이 지났고 ‘2022년 산재 사망사고 611건, 사망자 644명’이라는 성적표를 남겼다. 아직 잠정통계일 뿐이고 평가하기에는 데이터도 부족해 여전히 섣부른 측면이 있지만 이미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역시나 가장 빠른 반응은 경제지 부류의 해석이었다. ‘법 적용 사업장서 사망자 되레 늘어’ ‘중대재해법에도 … 50인 이상 사업장은 사망자 늘었다’ 등 중대재해처벌법이 사망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개중에는 앞뒤 다 자르고 ‘중대재해 사망 되레 증가 644명 … 시행 첫해부터 법 실효성 의문’이라는 파격적인 타이틀로 무리수를 두는 매체도 있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21년 대비 54건·39명 감소라는 수치보다는 50명(억)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8명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주장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정작 적용대상인 사업장에는 효과가 없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로만 해석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대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대형사고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50명 이상 사업장의 사망사고 건수는 4건 줄었지만 화재·폭발·무너짐 같은 대형사고로 한꺼번에 다수의 노동자가 희생되면서 사망자수가 증가한 것이다. 한편 실질적으로 산재 사망사고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규모별 추세는 어떤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2021~22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기의 침체와 회복이 큰 폭으로 요동쳤기 때문에 단순한 사고건수와 사망자수의 비교가 아니라 사망사고 만인율 등의 데이터가 나온 후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한편 50명 미만 사업장 사망사고의 유의미한 감소(50건·47명 감소)는 중대재해처벌법과 무관한 것일까?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도급인의 안전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여기에는 규모와 상관없이 하청업체의 산재예방 능력과 활동을 관리할 책임도 포함돼 있으며, 50명 미만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망사고라 하더라도 권한과 책임 여부에 따라 원청의 경영책임자도 처벌받을 수 있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이러한 도급인의 의무 규정 효과와 실제 적용사례들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니 나는 여전히 산재사망통계를 평가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229건을 수사했고 22.7%만 처리가 완료됐다. 검찰송치 34건, 검찰 기소 11건, 판결 0건인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를 논하는 것은 애초에 성급한 일이다. 더구나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악의적인 폄훼와 왜곡이라니. 진지한 고민과 성찰 없이 한없이 무거운 한 사람의 죽음을 644분의 1로 계산하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빨리 기소되고 판결이 나오면 전반적으로 기업들에 주는 메시지가 컸을 텐데, 사례들이 안 나오면서 긴장도가 떨어지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렇다. 지금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행정부는, 사법부는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사업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어떤 메시지를 줘야 하는가.

지난 한해 경영계는 집요하게 중대재해처벌법을 공격했고 다시금 중요한 국면에 이르렀다. 사법부는 곧 기소 1호 사건 위헌심판제청 신청에 대한 판단을 내놓을 것이며, 노동부의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 논의도 시작됐다. 무엇보다 정부는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을 통해 ‘자기규율 예방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했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노골적으로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하며 ‘처벌 완화’ 나아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대통령이다.

노동부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근간은 ‘엄중한 결과책임’이다. 기업의 일상적 안전보건관리는 자율적으로 수행하도록 지도·감독하되 중대재해라는 결과가 발생했을 때 원인과 책임을 따져 엄중히 처벌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구조가 바로 이것이며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위해 필수적인 기반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메시지들이 이 근간을 흔들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이미 ‘자율규제’를 ‘처벌 완화’로 받아들이고 있고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은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직후 통신회사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에피소드를 들었다. 현장에 출동한 설치기사가 고소작업에 장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작업 일정을 뒤로 미루자 고객은 당장 작업해 달라며 항의전화를 했다고 한다. 잔뜩 화가 난 고객에게 설치기사는 말했다. “고객님, 이제 고객님의 불편보다 노동자의 목숨이 중요한 세상이 됐습니다.” 그 대답을 하며 참으로 뿌듯했다는 그에게 작금의 상황은 어떤 메시지로 다가올까?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법 자체가 아니라 고객에게 당당히 ‘노동자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노동자의 목소리일지 모른다. 그 목소리를 빼앗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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