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로 지난해 5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건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고양시 소재 건설사 ‘온유파트너스’ 대표 A(53)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다음달 6일 진행할 예정이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기존에 예정됐던 다른 사건 선고가 밀리며 이번 사건은 사법부의 첫 판단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1월27일 법이 시행된 이후 기소된 12건 중 현재 4건만 재판이 진행 중이다. 당초 지난달 3일 선고가 예정돼 관심을 끌었던 ‘한국제강 사건’ 선고는 재판부 배당 오류가 뒤늦게 확인되면서 이달 24일 변론이 재개된다. 지난해 2월 노동자 16명이 급성중독을 일으킨 두성산업 사건도 다음달 26일 8차 공판이 예정돼 있다. 나머지는 공판기일이 미지정되거나 사건이 재배당된 상태다.

기소 석 달 만에 열린 ‘첫 재판’서 결심
원·하청 책임자, 금고 8월~징역 2년 구형

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김동원 판사)은 지난달 28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온유파트너스 대표 A씨 등 6명에 대한 1차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이 기소한 지 3개월여 만이다. 이날 재판은 사건이 합의부에 잘못 배당돼 단독부로 재배당한 뒤 두 차례 기일이 변경된 끝에 열렸다.

첫 기일이지만 피고인들이 혐의 대부분을 인정함에 따라 곧바로 검찰 구형이 이뤄졌다. 검찰은 원청업체인 온유파트너스 대표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원청 법인에는 벌금 1억6천만원을 구형했다.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원청 현장소장은 징역 8월, 원청 공사현장 안전관리자는 금고 8월이 구형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하청업체 B사의 현장소장에게는 징역 1년, B사 법인에는 벌금 1천만원을 구형했다.

원청 대표 A씨는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하청노동자 추락사와 관련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11월30일 재판에 넘겨졌다. 상시근로자 40명으로 알려진 온유파트너스는 요양병원 증축공사를 약 81억원에 도급해 이 중 철골공사 등을 B사에 하도급했다. 사고 현장은 공사금액이 50억원 이상이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 상시근로자 50명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하청노동자, 앵글 인양 중 5층 높이서 추락
위험요인 개선·확인, 매뉴얼 마련 의무 위반

하청인 B사 소속 노동자인 C씨는 지난해 5월14일 오후 1시46분께 병원 건물 5층(약 16.5미터 높이)에서 약 94킬로그램의 고정앵글 5개를 안전대 없이 운반하던 중 추락했다. 안전난간을 해체해 작업한 탓에 도르래 슬링벨트에 묶인 고정앵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 반동으로 함께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작업장 상태에 대한 사전조사가 실시되지 않았고, 추락 방지를 위한 작업계획서도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작업지휘자가 지정되지 않아 작업자 스스로 작업방식을 선택해야 했고, 안전대를 걸 수 있는 부착설비도 없었다.

검찰은 A씨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4조)이 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A씨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를 마련하지 않아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추락·낙하 위험을 평가해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계획서를 수립하지 못하게 했다고 봤다.

또 중대재해에 대비한 매뉴얼이 없어 재해자에게 안전대가 미지급되고 안전대 부착설비가 전혀 설치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업무수행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날 “언제든지 추락에 의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이 있음에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게 작업을 중지하거나 즉시 추락위험을 제거하도록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피고인들, 검찰 공소사실 대부분 인정
원청 대표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 다해”

A씨측은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다만 ‘작업자들이 2022년 5월14일 고정앵글을 인양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내용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사전에 예정된 작업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일부 다른 점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과실을 모두 인정한다는 취지로 A씨측 주장을 정리했다.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A씨가 소규모 공사만 하다가 처음으로 공사대금 50억원 이상의 현장을 맡게 돼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강화하지 못한 부분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안전보건과 관련한 예산과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다”며 “피해자 유족들 역시 처벌을 원치 않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등 노력한 점을 고려해 달라”고 강조했다.

A씨는 최후진술 내내 울먹였다. 그는 “경영자로서 위험성 평가 교육을 직접 이수해 안전관리 매뉴얼을 구축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소규모 기업의 한계로 인해 여러 협력업체가 함께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처한 위치가 벼랑의 끝인지 아니면 이미 추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버텨 보려고 한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건설업에 기소 집중 ‘후진국형 재해’
법조계 “위험·관리 통제 방법 고민 필요”

이번 사건과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사건은 주로 건설현장(7건) 사고다. 모두 하청노동자 사망사고로, 추락·끼임·구조물 충격 등 ‘후진국형 재해’로 파악됐다. 검찰은 발주자가 아닌 공사를 도급받아 총괄·관리한 시공사 대표를 도급사업주로 판단했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상시근로자 60~340명, 공사금액 72억~381억원 규모의 중소 건설사에 기소가 집중됐다. 규모를 보면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대기업은 전무하다.

이와 관련해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건설현장은 다른 중대재해 사건보다 먼저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이 상대적으로 더 명확하다”며 “여러 개의 법 위반이 적발된 만큼 건설업에서 사업주가 어떻게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대기업 기소가 전혀 없는 것에는 “위험한 사업장이 무방비로 방치되지 않도록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를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중소 건설사가 최소한의 능력도 되지 않는다면 적격사업주 여부를 평가하는 등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온유파트너스 기소’와 관련해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 마련 의무를 명시적으로 확인해 기소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검찰은 중량물 인양작업과 관련한 사전조사와 작업계획 수립이 진행되지 않은 것이 안전대 미지급, 부착설비 미설치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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