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전문가넷이 창립 1주년을 맞아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기념식과 심포지움을 열었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안전보건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에 대한 현행 형사처벌 정도가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대재해 전문가 10명 가운데 9명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처벌 조항이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경영책임자 처벌 조항을 없애고 과징금 등 행정제재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 정부 기조와 배치된다.

형사처벌 “과도하지 않다” 절대적 응답
“산재예방 인식 확산에 기여” 1위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학자와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등 전문가 612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평가’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7.4%가 현행 형사처벌 정도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적절하다’는 39%, ‘과도하다’는 12%에 그쳤다.

조사 결과는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전문가넷 창립 1주년 기념식에서 공개됐다. 응답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사망 예방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5점 만점(3점 보통)을 기준으로 조사한 설문 13개 항목에서 응답자들은 ‘산재사망 예방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에 가장 높은 점수(4점)를 줬다. 이어 △시민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 △사업장의 안전보건 활동의 증가 항목이 3.7점으로 공동 2위에 올랐다.

이어 3위에 △최고경영자의 안전보건의지 증가 △안전보건 관련 예산과 인력의 증가(각 3.6점), 4위에 △안전문화의 향상 △노동자와 시민안전의 연계성에 대한 인식향상(각 3.5점) 순으로 나타났다. 5위에는 △시민안전 관계법령 이행과 점검의 증가 항목(3.4점)이 기록됐다. 모든 항목에서 평균 점수가 보통인 3점 이상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도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정부 정책이 단기·만성과로, 장시간 노동, 불규칙한 노동시간으로 이어진다는 응답이 80% 이상을 기록했다. 산재에 미칠 영향(80% 이상)도 높다고 봤다.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해 87.6%가 반대표를 던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확보’를 묻는 질문에는 검찰 기소 현황과 경영계의 위헌 주장, 수사 장기화가 악영향을 줬다고 응답자들은 평가했다. 특히 정부의 시행령 개정 예고와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부정적 역할을 했다고 봤다. 개정 방향과 관련해서는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77.1%로 월등히 높았다. 중대시민재해에 대해서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81.4%)이 반대를 훨씬 앞질렀다.

‘더딘 수사와 낮은 처벌 수위’ 비판
중대시민재해 적용 범위 확대도 제안

한편 이날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1년의 평가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은 수사 속도와 처벌 수위가 낮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적용대상 229건 중 34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이 중 11건만 검찰이 기소한 상태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현재 기소까지 평균 8~9개월 정도 걸려 일반 범죄 사건보다 느린 편”이라며 “사건 내용은 대부분 단순한 것으로 보이는데 수사 속도가 늦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사건 중 절반과 기소건 모두 중소기업에 쏠린 점도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본적인 안전조치의무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 드러난 사건도 기소되지 않아 검찰의 수사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수사 개선을 위해 수사 전담 근로감독관을 조직화하고 경찰과의 협조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집행의 전 과정을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기소 또는 유죄 판결만이 아니라 수사와 내사를 포함하는 전 과정을 모니터해야 한다”며 “경영책임자 출석 현황 등을 파악해 법 집행 전 과정을 실효성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짚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으로 화두가 된 ‘중대시민재해’의 적용 범위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법률이 열거하는 물질이나 시설 또는 수단에 포함되지 않으면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중대시민재해를 안전관리 의무 중심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에 ‘안전관리 위반 원인’이라는 문구를 넣어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밖에 박다혜 변호사(노동자권리연구소)와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이 지정토론에 나서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과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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