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로 시행 1년을 맞았다. 재계는 법 시행 이후 50명 이상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실효성을 깎아내린다. 정부는 재계 입장을 반영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놓고 보완(혹은 완화) 입법을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은 효능이 없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 11건을 모두 입수해 살펴봤다. 네 차례에 걸쳐 한계와 성과를 짚고 개선점을 모색한다.<편집자>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공사장 골목의 ‘그’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경남 함안군 수돗물 공급시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A(사망 당시 62세)씨는 지난해 5월19일 오전 7시50분께 토사를 퍼내며 회전하던 굴착기와 담장 사이에 머리가 끼였다. 토사가 무너지지 않도록 흙막이를 용접하던 중이었다. 즉시 병원에 후송됐지만, 불과 40여분 만에 중증두부손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지켜졌다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사고 당시 공사현장은 매우 좁았다. 용접공과 굴착기 기사들이 지나다니며 부딪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현장 한쪽에는 담장이 있었다. 굴착기가 회전할 경우 굴착기 후방과 담장 사이의 공간은 폭 5센티미터에 불과했다. 작업자가 지나간다면 끼일 위험이 컸다. 그런데도 굴착기의 터파기와 흙막이 설치 등 여러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폭 90센티미터의 좁은 통행로에 작업자가 가득 차 있었던 셈이다.

안전조치는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안전한 통행로가 설치되지 않았고, 작업계획서는 있었지만 출입금지 표시나 출입을 통제하는 유도자 배치는 없었다. 검찰은 토공사를 하도급받은 하청 건설업체 현장소장과 굴착기 기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폭 5센티 담장 사이에 협착, 원청 대표 기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원청’도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수도시설 가압장 개선 공사를 하도급받은 ‘만덕건설’의 대표이사 B씨는 지난달 29일 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하청 현장소장의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창원지검 마산지청은 B씨가 △안전보건 경영방침 미설정 △유도자 구비 등 접근통제 안전시설 예산 미편성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업무 평가기준 미설정 △대응조치 매뉴얼 부재 등 안전보건관리체계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중대재해 예방에 필요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는 얘기다.

B씨의 죄목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가 적용됐다. 시행령 4조는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 방침 마련 △안전보건 업무 전담 조직 마련 △유해 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 마련 △재해예방 예산 편성 및 집행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자 및 산업보건의 배치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및 개선 이행 점검 △중대산업재해 발생시 작업중지 등 매뉴얼 이행 점검 △하도급 업체의 안전보건 확보조치 준수 여부 판단기준 마련 등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유형으로 정하고 있다.

‘안전관리자 평가기준’ 기소건 전부 미이행

현재까지 기소된 중대재해 사건을 보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의무’ 위반이 명백히 드러난다. 경영책임자의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는 재계 주장은 억측이라는 반박이 가능한 지점이다. ‘만덕건설 사건’ 같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위반은 검찰이 기소한 11건에 모두 적용됐다. <매일노동뉴스>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공소장을 보면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업무수행평가 기준’을 마련하도록 한 의무 규정을 위반했다고 기재됐다.

원청 대표가 안전보건 책임자에게 안전 문제를 맡겨 두고 어떻게 안전조치를 하고 있는지는 관리·감독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 지난해 2월 노동자 16명이 급성중독을 일으킨 두성산업의 중대재해 사건도 ‘평가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부분이 적용됐다. LDS산업개발·삼강에스앤씨·한국제강·자동차부품사 엠텍 등 이후 기소된 사건에서도 모두 관리감독자의 업무수행을 평가하는 기준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7개 사업장은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시행령 4조3호)하지 않았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이 지난해 11월30일 기소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요양병원 증축공사 사망사고가 대표적이다. 하청노동자는 병원 5층에서 고정앵글을 설치하던 중 앵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추락해 숨졌다. 검찰은 원청 대표가 유해·위험 요인 개선 업무 절차를 마련하지 않아 중량물 인양과 관련한 작업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고 봤다.

중대재해의 위험을 대비한 ‘매뉴얼’이 없었던 사업장도 6곳으로 확인됐다. 시행령 4조8호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작업중지 등 대응조치와 구조조치, 추가 피해방지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자동차부품회사에서 일어난 기계 협착사고에서 이러한 부분이 적발됐다. 지난해 2월 춘천교육지원청 이전 공사현장 추락사와 제주대 기숙사 신축공사현장 구조물 낙하사고 등도 마찬가지다.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미이행은 다른 규정에서도 중첩해 드러났다. 기소 사건 11건 중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시행령 4조1호) 5건 △도급 용역 위탁시 산재 예방 조치 능력 및 기술에 관한 평가기준 절차 마련(시행령 4조9호) 4건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시행령 4조7호) 3건 등으로 분포됐다.

지난해 7월 기계 금형 내부 청소 중 머리가 협착돼 이주노동자가 숨진 울산의 자동차부품업체 사고도 주목할 사건이다. 이 사고는 유일하게 시행령 5조2호가 적용됐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관계법령 의무이행 여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관리·감독’ 부재, 형식적 조치만 취해

기소된 11건 모두 ‘안전관리·감독 부재’가 드러났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하청회사와 안전보건 관리책임자가 전부 기소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는 ‘행위자’의 안전조치의무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기에 검찰의 공소사실로 법 시행 취지가 충분히 드러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책임자에게 권한을 줬다면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기준에 따라 반기 1회 이상 관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를 실효성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대부분 사업장에서 형식적인 중대재해 예방 조치에 그친 부분도 진단 항목에 올랐다. 권 변호사는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사업장도 세 번째로 많았다”며 “이는 회사 대표가 노동자를 재해 예방에 참여할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지시의 대상으로 여기는 조직문화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재계와 정부가 주장하는 ‘법률의 모호성’은 공소사실만 봐도 ‘어불성설’에 가깝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계는 법률이 시행됐지만 중대재해가 줄지 않아 뚜렷한 효과 없이 현장의 혼란만 가중한다며 처벌요건의 명확화 등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총은 사업주 처벌을 현행 하한(1년 이상 징역)에서 상한(7년 이하 징역)으로 바꾸고,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 기간을 최소 2년 이상 연장하자고 주장한다.

의무 법률에 구체화 “모호가 아니라 번거로운 일”

하지만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안전보건확보의무는 ‘절차적인 의무’로 구체화돼 있다고 반박한다. 제주대 기숙사 신축공사 추락사·굴착기 협착 사고·자동차부품사 협착 사고 등 검찰 공소사실에 이 같은 경향성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의무와 연결돼 있어 이를 지키지 않으면 산재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을 점검하는 일련의 절차적인 의무”라며 “(시행령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단지 번거로운 의무임을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안전보건법(36조)에 위험성 평가 실시 등이 규정돼 있는 터라 이미 구체화돼 시행 중인 상태인데, 법이 모호하다는 재계 주장은 억측이라는 지적이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또한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책임자가 예산을 편성하고 비용을 들이면 해결될 문제라는 견해다. ‘사업장의 유해·위험 확인 및 개선’이 모호한 절차라는 재계 주장도 반박했다. 권 변호사는 “고용노동부 고시인 사업장 위험성 평가에 관한 지침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절차이므로 재계 주장은 이유가 없다”며 “공소장에서 절차 마련 위반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중 두 번째로 위반이 많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동안 위험성 평가 및 개선 절차를 매우 형식적으로 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현재 법률이 사업장에 적용되면 중대재해 감축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관리상의 조치를 이행할 경우 구체적인 안전보건 조치의무가 실효성 있게 이행될 것이란 의미다.

원청 대표가 모두 기소된 점도 의미가 있다고 법조계는 평가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자동차부품 제조사 사고와 같이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가 선임됐더라도 실질적인 권한 행사를 따져 대표이사가 전부 재판에 넘겨졌다”며 “공소사실을 보면 하청이 법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원청이 기소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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