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과 이규선 경기지부장 모습

모닝부터 그랜저까지 현대·기아에서 출시되는 자동차 와이퍼 3개 중 1개(28%)는 ‘한국와이퍼’에서 만든다. 세계 2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덴소가 100% 출자해서 1987년 설립한 회사다. 일본기업 덴소는 한국계열사인 덴소코리아(한국사업부 총괄·와이퍼부문 영업권)와 덴소와이퍼시스템(와이퍼부문 생산·납품)를 운영하면서 한국와이퍼에서 만든 와이퍼를 현대·기아차에 납품한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 3개 공장을 둘 정도로 제법 규모가 컸던 한국와이퍼는 지난 7월 돌연 회사 청산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와이퍼 노사가 ‘물량 보전을 통한 총고용보장’에 합의하고 ‘위반시 회사가 조합원 1명당 1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한다’는 협약을 체결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와이퍼가 청산 절차를 밟으면서 현대·기아차 와이퍼 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사전에 ‘대체생산’을 공모한 정황까지 드러난 상황이다.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과 이규선 경기지부장은 지난달 7일부터 곡기를 끊고 국회 앞에 앉아 “한국와이퍼 노동자 230명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다. 일부러 적자를 내고 회사를 없애려는 외투기업 덴소의 ‘먹튀’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이대로 사라질 수 없다는 외침이다. 6일로 벌써 30일째를 맞았다.

앞에서는 고용보장 노사합의
뒤에서는 회사 청산 작전 실행

30년 이상 된 중견기업 한국와이퍼에서 경영에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은 지난 2018년부터다. 회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신차에 납품하는 와이퍼 물량을 수주하지 않았다. 회사의 존폐 문제임을 직감한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지난해 ‘고용안정협약서’를 체결했다.

물량 보전을 통해 총고용을 보장하겠다는 게 협약 핵심이다. 한국와이퍼 노사는 2022년 매출액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와이퍼 외 물량을 확보해 매달 노사가 참여하는 고용안정협의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회사는 청산·매각·공장 이전·구조조정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또 “덴소코리아는 와이퍼사업부를 확충하고, 덴소의 개입으로 대체생산체계를 마련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일본 덴소와이퍼시스템과 덴소코리아가 협약이 이행될 수 있게 ‘연대책임’을 지기로 했다. 모회사와 계열회사까지 보증하는 초고강도의 고용안정협약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협약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됐다. 회사는 지난 7월7일 청산 계획을 밝혔다. 전 사원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10년에 걸쳐 적자 경영이 계속되고 있다”며 “덴소코리아는 한국 와이퍼 사업 철수로 방향성을 정했고, 주주인 DNWS(덴소와이퍼시스템)는 한국와이퍼 청산을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내년 1월8일로 회사 청산절차 개시된다. 덴소코리아는 덴소와이퍼시스템을 현대차 하청업체인 DY오토에 매각할 예정인데, 한국와이퍼는 ‘청산’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이었다.

최윤미 분회장은 현대차와 덴소가 공모해 노조를 없애려는 ‘위장 청산’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한국와이퍼 내부문건에는 분기마다 판매량과 직원수를 줄이고 2024년 12월 청산한다는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2020년 작성된 이 문건에는 노조 현황과 파업 대비 재고 관리 방안 등도 포함돼 있다. ‘레인보우 인센티브 검토’라는 또 다른 문건에는 계획대로 직원들을 조기 퇴직시키고 청산에 성공하면 한국와이퍼 임원들에 4억원이 넘는 인센티브를 성공보수로 지급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센티브가 “구조조정 현상금”이라며 “부도덕하고 불법적”이라고 비판했다.

최윤미 분회장은 “당시 청산 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노사 모두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사가 고통을 분담해 청산을 막아 보자는 취지로 고용보장협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그런데 그 시간에도 회사는 뒤에서는 청산 시나리오를 짰고, 노사 간 협약조차 시간 벌기 작전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차-덴소코리아 와이퍼 대체생산 공모 ‘정황’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사용자 불법행위 밝혀낼까

회사가 청산 이유로 내세운 ‘적자’도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노조의 분석이다. 한국와이퍼 재무구조를 보면 매출의 85%가 덴소코리아와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한국와이퍼의 제조원가보다 싼 값에 덴소코리아에 팔린다. 제조원가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원가율은 2021년 129%, 2020년 111%다. 생산하는 데 129원, 111원이 든 제품을 100원에 판다는 얘기다. 이 돈은 고스란히 일본의 덴소로 넘어간다. 덴소코리아는 지난 10년간 기술사용료로 일본의 덴소에 4천400억원을 지급했다. 덴소코리아의 재무재표는 지난 10년간 누적적자 36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이런 문제들이 논란이 되자 고용노동부는 10월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들여다보겠다며 한국와이퍼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청산에 반대하는 노조가 파업하는 동안 현대·기아차에 납품할 와이퍼를 덴소의 해외공장과 덴소코리아 관계회사, 심지어 영업양수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진 DY오토 자회사 등에서 대체생산한 정황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동부 안산지청 관계자는 “덴소코리아를 포함해 여러 사항들을 조사하고 현재 법리 검토 중”이라며 “일어로 된 자료를 사용자쪽 변호인이 대거 제출해 번역하고 검증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대체생산을 주도하는 덴소코리아가 법망을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다. 한국와이퍼 노동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윤미 분회장은 “덴소코리아가 한국와이퍼에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불법적인 대체생산을 주도하고 있지만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책임도 받지 않는다”며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가 처벌받을 수 있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가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
▲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

해산은 주주 권한, 청산은 회사 권한
법원 “근로조건 달린 청산, 노사교섭 대상”

회사가 고용안정협약을 지키지 않은 문제는 법원에서도 다투고 있다. 노사합의 없는 회사의 청산 절차가 단협 위반이므로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노조가 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지난달 24일 노조의 가처분신청은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회사 청산에 대해 노사가 교섭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청산 과정에 근로자에 대한 임금·퇴직금 등 금품 청산절차가 예정돼 있고 청산 과정에서 해고는 물론 청산업무 등의 수행을 위한 채용도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청산 절차는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으므로 단체교섭 사항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조가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유형자산(토지·건물·기계장치 등) 처분 행위와 납품권을 3자에 양도하는 행위의 경우 본안소송으로 다퉈질 필요가 있다고 봤다. 노조는 즉시 고법에 항고하는 한편 해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접수했다.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그동안 분할매각이나 공장 이전에 대한 노조의 합의권을 인정한 사례는 있지만 청산에 대한 합의권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본안소송 통해 충분히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함께 단식 중인 이규선 노조 경기지부장은 “이번 사태는 비단 한국와이퍼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미래차로 전환 과정에 ‘와이퍼’가 당장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되는 사업을 찾아 부품사들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아무 대책 없이 노동자만 길거리로 나앉고 희생된다는 우려다. 덴소로부터 와이퍼시스템을 사가겠다는 DY오토는 와이퍼를 만들던 ‘사람’은 빼고 ‘영업권’만 쏙 빼가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노조는 산업재편 과정에서 이뤄지는 크고 작은 해고들을 ‘사회적 살인’이라고 부른다.

현대차 노동자도 한국와이퍼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안현호 노조 현대차지부장은 “부품사가 산업전환기에 적응하고, 원만한 노사관계가 유지되도록 지원해야 할 현대자동차가 노조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기만적인 청산 절차에 함께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며 “현대차가 책임 있는 자세로 부품사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안정적 부품 수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산업전환법을 논의 중이다. 전환 과정에서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은 빠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이 ‘사라지지 않을 권리’를 위해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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