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지난해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분회장 최윤미)와 총고용 보장 합의를 체결한 ㈜한국와이퍼블레이드(한국와이퍼)가 1년도 채 되지 않은 7월 폐업 계획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공개적으로 폐업을 추진할 경우 노조의 반발이 예상되자 노조를 안심시킬 방패막이로 고용안정 합의를 악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덴소가 100% 출자한 기업으로 와이퍼 블레이드·암을 생산하고, 와이퍼를 조립한다. 만들어진 제품은 덴소 계열사 덴소코리아를 통해 현대·기아차로 납품한다. 직원은 300여명이다.

노동자 파업에 고용안정협약 맺더니
노조 “애초 합의 지킬 생각 없었던 것”

3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와이퍼는 지난 7일 설명회를 열어 회사 청산 계획을 밝혔다. 같은날 전 사원에게 사측이 보낸 문자를 보면 “10년에 걸쳐 적자 경영이 계속되고 있다”며 “DNKR(덴소코리아)은 한국 와이퍼 사업 철수로 방향성을 정했고, 주주인 DNWS(덴소와이퍼시스템)는 당사(한국와이퍼)의 청산을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회사 운영은 올해 12월31일까지로 내년 1월8일 회사 청산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에 노조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18년부터 3년간 신차 수주가 없는 탓에 물량감소에 따른 폐업과 구조조정이 우려되자 한국와이퍼분회는 지난해 8~9월 부분파업을 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한국와이퍼 노사는 지난해 10월 ‘2021년 고용안정 협약서’를 체결했는데 사측이 이를 9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다. 당시 협약의 핵심 내용은 “와이퍼 이외의 아이템 중 일부를 가져와 총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으로, “회사는 청산·매각·공장 이전·구조조정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모회사 덴소와이퍼시스템과 계열회사 덴소코리아가 협약이 이행될 수 있게 연대책임을 지기로 했다. 하지만 합의는 종잇장이 됐다.

최윤미 분회장은 “애초 덴소 자본은 고용보장 합의를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지난해 합의를 맺을 당시 100억원가량의 물량을 일본 덴소와이퍼로부터 올해 8월 이관받기로 합의했는데 8월이 되기 직전 청산을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석연찮은 낌새는 있었다. 한국와이퍼 노사는 매달 열리는 고용안정협의회에서 물량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는데 제품 불량, 제품 선별 등을 이유로 지난 4~5월 물량이관 시점이 늦어졌다. 최 분회장은 “5월부터는 덴소코리아 하청업체에서 물량을 이관하는 게 쉽지 않아 (제품이) 단종될 때 새로운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언제 될지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며 “계속 뒤로 미루는 느낌이 들어 이상했다"고 덧붙였다.

노조 패싱하고 조기퇴직 신청 접수

회사의 노조 패싱은 계속되고 있다.

개별 노동자에게 전체 문자를 보내 노조에 협의하지 않은 채 ‘조기퇴직제도’ 시행 계획을 밝힌 것이다.

최윤미 분회장은 “조기퇴직제도에 많은 조합원이 응하게 해 노조 해산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며 “26일 10차 교섭자리에서 사측이 한 말은 8월 한 달 시간을 줄 테니 조기퇴직을 신청하고, 올해 12월31일까지 일하라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분회는 회사의 조기퇴직안은 노조의 조직력 약화를 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와이퍼 전체 노동자 300여명 중 분회 조합원은 255명이다. 조기퇴직을 신청할 경우 청산 철회를 요구하는 노조 단체행동에 참여하기 어렵게 된다. 사측은 여름휴가가 끝난 8월 둘째주부터 3주 동안 노동자와 개별면담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최 분회장은 “조기퇴직안에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취하안이 들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개한 조기퇴직안을 보면 보상 등에 대해 나이대별 차등을 뒀는데, 내부 분란을 만들기 위한 제안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체결한 고용안정 협약서에는 사측이 합의 내용을 일부 불이행할 경우 조합원 1인당 1억원의 금액을 노조에 손해배상한다는 내용이 있다.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부장은 “결국 지난해 고용안정 합의는 자본철수 시간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우리 노동자들을 농락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사례가 국내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국와이퍼쪽은 고용안정 협약 파기와 관련해 “현재로서는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합의 미이행시 1인당 1억원 손배”
“기획 청산 방지 법안 마련해야”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합의 없이는 청산하지 못하게 돼 있으니, 청산 금지 가처분신청이나 합의 위반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등 다양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측은) 경영사항에 대한 노사합의 조항들이 합의력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많이 하는데, 대법원 판례를 보면 분명히 노사가 경영상황에 대해 합의를 체결한 경우 효력이 있다고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장 변호사는 “2020년 자일대우상용차(대우버스)가 공장 이전하려면 노조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베트남 이전을 추진해 가처분 신청으로 저지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선례가 많이 쌓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현 에스트라오토모티브시스템) 사례를 봐도 노사 단체협약상 불가능한 분할매각을 사측이 일방 추진했다가 노조가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 분할매각을 중지시킨 적이 있다.

오기형 부장은 재발을 막을 해결책으로 프랑스의 플로랑주법(la loi Florange)을 제안했다. 오 부장은 “플로랑주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게 폐업 전 인수자를 찾도록 의무화하고 청산 전 과정에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규정한다”며 “불시에 뒤통수를 치는 것 같은 전격적인 기획 청산은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 자본의 일방 폐업을 직접 경험한 오해진 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장은 “노조가 아무리 단체협약이나 합의서를 만들어도 본사에서 하루아침에 (사업) 철수하면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며 “노조가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뿐 아니라) 이해당사자와 직접 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료사진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자료사진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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