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

‘단식’이라는 두 글자만 듣고 달려왔으리라.

김형수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송아지 눈처럼 선하고 웃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며 강렬한 눈빛을 쏘아붙이던 유최안 부지회장도 순하디순한 웃음이 흘러넘치는 사람이었다. 470억원 손배(손해배상 청구 소송)를 맞고도, 목숨 건 단식을 하고 있는데도 농성장이 흥겹다. 흡사 신경림 작가의 시 <파장>에 나오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다”는 한 구절 같은 풍경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리들이 ‘못난 놈’들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태생 자체가 70년 전태일 열사의 <바보회>의 핏줄을 잇고 있으니까.

연일 죽음이라는 단어가 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죽고, 빵 공장 기계에 끼여 죽고, 급기야 길에서 압사당해 수백명이 죽었다. 사람의 죽음이 가벼워지고 있는 시대, 목숨 건 단식을 결의했다.

한국와이퍼 280명 불법 대량해고 문제를 들고 국회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섰을 때는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연이은 죽음 앞에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일어나고 있을 해고 문제에 누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지난 7월7일, 한국와이퍼의 원청이자 모기업과 같은 자본계열사인 덴소코리아는 와이퍼시스템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동시간대 한국와이퍼는 청산계획을 발표했다. 그렇게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이 추운 겨울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여기까지면 흔하디흔한 외투자본의 전형적인 먹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와이퍼 노동자는 좀 더 억울하다. 작년 한국와이퍼 노사는 덴소자본이 연대보증 하는 가운데 고용안정협약서를 맺었다. 덴소그룹차원 고용보장이 단협 체결을 통해 확약된 것이다. 하지만 9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고용합의는 휴지조각이 됐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도 문제의식을 느꼈는지 MBC 특별근로감독과 함께 한국와이퍼도 특별근로감독을 했다.

하지만 10월 국정감사 결과로 나온 특별근로감독 실시 결정에는 의구심이 많다. 노동부가 여당이 요구한 MBC 특별근로 감독을 실시하기 위해 야당이 제기한 한국와이퍼 특별근로감독을 구색맞추기식 끼워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의혹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기간 노사 간 자리 주선에 열을 올리다, 심지어 한국와이퍼 단식농성장에 와서 한국와이퍼와 덴소코리아 간의 관계를 증명할 증거를 노조에 요구했다. 스스로 현 감독의 미흡성을 인정한 셈이다. 생색내기식 특별근로감독이 의심된다.

진정으로 노동부가 한국와이퍼 대량해고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처음부터 덴소코리아 특별근로감독을 함께 실시해야 했다.

한국와이퍼 280명 불법대량해고는 ‘사회적 타살’이다. 더 이상 이직이 불가능한 중장년 노동자들의 생계(생명)를 불법적으로 거리(죽음)로 내모는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면서도 이를 바로잡을 국가와 법이 없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묵인해왔던 혹은 오히려 양성해왔던 사회시스템의 문제, 즉 사회적 타살이다. 더 이상 정부와 고용노동부는 사람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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