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 협력업체에서 노조활동을 하다가 운송계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된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장이 최근 법원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마트산업노조>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홈플러스 상품을 고객에게 배달하는 온라인 배송기사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온라인 배송기사는 운송업체와 운송계약을 맺고 지입차량을 운행하는 특수고용직이다. 법원은 온라인 배송기사가 노조법상 노동자라는 것을 전제로, 회사가 운송계약을 해지한 것은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배송기사에 대한 법원의 노동자성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마트와 이마트 등 유사한 형태로 온라인 배송하고 있는 동종업계에 파장이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노조활동하다 계약 위반 이유로 계약해지
사측, ‘부당노동행위’ 중노위 판정 불복해 소송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훈 부장판사)는 홈플러스와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서진물류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최근 판결했다.(본지 2021년 8월27일자 4면 “홈플러스 물류업체 부당노동행위 ‘끝장 소송’” 참조)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장은 2019년 5월 홈플러스 협력업체인 서진물류와 물건 운송계약을 체결하고 홈플러스 안산점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배송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서진물류는 이듬해 3월 운송계약을 위반했다며 이 지회장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노조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상품운송 도급(운송)계약을 위반하고 무단 방송촬영을 해 고객 민원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지회장과 노조는 계약해지가 불이익 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라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기지노위는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이 지회장의 원직복직을 주문했다. 이에 회사는 복직 시기를 조율했지만, 이 지회장이 지입화물차량을 처분한 뒤 다시 차량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두 번째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중노위도 같은 판단을 내리자 사측은 2020년 12월 소송을 냈다.

재판의 쟁점은 온라인 배송기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볼 수 있는지였다. 이 지회장이 노동자로 인정돼야 계약해지의 부당성을 다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측은 이 지회장이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사전에 이 지회장이 노조활동을 하는 점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원 “겸업 어렵고 운송료 의존”
“배송기사 권리신장에 도움될 것”

하지만 법원은 이 지회장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회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지회장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배송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다른 일과 겸업하기 어려워 소득을 운송료에 의존했다”며 “이 지회장은 회사가 미리 정한 기준에 따라 운송료를 지급받았고, 기본운송료의 액수나 인센티브 비율도 모두 회사가 정했다”고 판시했다.

특히 이 지회장이 회사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봤다. 회사는 배송기사의 유니폼 착용과 홈플러스 배송시스템을 통한 업무보고 등을 평가해 일정 기준 이하의 경우 계약을 해지했다. 재판부는 배송기사가 받은 임금과 인센티브도 물품을 배송한 대가라는 사실과 배송업무는 운송사의 사업 운영에 필수적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이를 전제로 재판부는 계약해지가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이 지회장이 홈플러스의 계약조항을 위반해 중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는 것이다. 배송기사와 운송업체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해 단체행동을 했을 때’ 계약해지 사유로 된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배송기사의 노조활동에 회사가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으로 봤다.

이수암 지회장은 이날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로 판정한 만큼 이번 판결은 당연하다”며 “회사는 여전히 배송기사를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보고 ‘그림자’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로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을 대리한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온라인 배송기사는 다른 운송업무 담당 노동자보다 업무의 관리·감독을 강하게 받는다”며 “이번 판결이 배송기사의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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