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성·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마트산업노조 주최로 11일 서울 서대문구 마트산업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 노동실태 및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이 발언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 임종성·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마트산업노조 주최로 11일 서울 서대문구 마트산업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 노동실태 및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이 발언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경기 김포시에 위치한 쓱닷컴 네오물류센터 근무하는 온라인 배송기사 A(52)씨는 지난 4월부터 ‘일요일 휴무’를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3년차 배송기사인 A씨는 원래 일요일 휴무가 고정돼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쓱닷컴이 일요일 새벽배송을 시작하면서 일요일에 일을 하면 대신 평일에 쉬게 됐다. 쓱닷컴 방침에 따라 노동조건이 달라졌지만 A씨가 업무위탁을 맺은 당사자는 이마트가 아니라 운송사다. 택배노동자와 업무나 계약형태가 유사하지만 산재보험·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택배노동자와 달리 혜택을 받지 못한다. A씨는 “가구당 묶음배송이 1건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20킬로그램 쌀과 1.5리터 생수페트병 여러 개가 포함된 16개 라벨(바구니)을 배송한 적도 있다”며 “택배노동자보다 열악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언택트(비대면) 소비 증가로 온라인배송 물량이 급증했지만 성장의 한 축인 온라인 배송기사들에 대한 처우개선 논의는 미진하다. 산재보험·고용보험은 물론이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서비스법) 적용 대상도 아니어서 법·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온라인 배송기사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3.9%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
중량물 제한 없어 여기저기 골병

마트산업노조는 지난 6월9일부터 3주간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기사 3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온라인 배송기사는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월평균 급여가 ‘200만원 이상 35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사람이 75.3%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 절반(50.3%)이 “현재 임금수준으로 생계유지 어렵다”고 답했다.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부가세·유류비·화물공제회비·지입료·관리비·차량관리비·자동차보험비 등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중 8명(83.9%)이었다. 응답자 60%는 월 26일 이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휴게시간이나 식사시간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응답자 56.2%가 식사시간이 ‘20분 이하’라고 답했고, 휴게시간도 ‘20분 이하’라고 답한 사람이 49.1%로 절반에 가까웠다.

코로나19 이후 배송 건수나 가구당 배송물량 중량은 늘어났다. 총 배송 건수에서 “변화가 없다”고 답한 사람은 35.8%였다. 한두 번 겪음(36.1%), 자주 겪음(35.8%), 항상 겪음(19.4%)으로 나타났다. 가구당 배송물량의 중량 증가도 자주 겪음(45.4%), 항상 겪음(34.4%), 한두 번 겪음(18.2%)이었다.

코로나19로 물량이 늘어도 수입은 비례해 증가하지 않았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노동자와 달리 온라인 배송기사는 가구당 묶음배송을 1건으로 적용받기 때문이다. 온라인 배송기사 B씨는 “동료 기사의 경우 음료수 1.8리터 짜리 86개를 배송하다 허리를 삐었다”며 “중량물 제한이 없어서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살아야 한다”고 증언했다.

온라인 배송기사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306명(94.4%)이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고, 어깨·손 등 통증(88.6%), 허리 통증(84%), 다리와 무릎 등 통증(79.6%), 두통과 눈의 피로(71.0%) 순이었다. 증상별로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병원 또는 약국을 방문했느냐는 질문에 ‘바빠서 병원을 방문하지 못 했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증상별 최소 56.7%, 최대 66.1%), ‘조금 아파서 참았다’는 응답이 두 번째(최소 20%, 최대 43.3%)였다.

“실질적 지휘·감독하는 마트가 직고용해야”

온라인 배송기사가 겪는 문제는 불합리한 계약구조와 다단계 하청에서 기인한다. 대형마트는 직접적 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하고, 운송사는 실질적 역할이 미미해 ‘권한’이 없다고 하는 식이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산업안전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배송노동자 몫으로 전가된다. 허영호 노조 조직국장은 “복잡한 계약구조는 대형마트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구조일뿐 업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며 “배송노동자 직고용을 통해 오히려 업무효율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배송노동자의 노무제공 과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며 상당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대형마트는 근로계약을 포함해 어떠한 계약도 배송노동자와 체결한 점이 없다는 점을 들어 아무런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실제 계약의 내용과 업무수행의 실질을 살펴보면 배송노동자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배송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며 대형마트의 상당한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근로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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