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인천 연수구 이마트에서 축산 소분과 상품진열 업무를 하는 강인숙(56)씨는 ‘쓱배송(당일 시간대 지정배송)’ 배송 차수가 전보다 늘어나 동료들과 돌아가면서 온라인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1차로 들어온 주문서에 따라 고기 그램수를 맞춰 소분·포장하고, 밀려드는 2~6차 주문을 소화하고 나면 오후 5시 퇴근시간이 임박한다. 강씨는 “온라인업무만 하는 사람을 1명 더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할인행사가 있을 때는 특히 주문량이 많은데 주문이 늘어도 인원은 그대로”라고 한숨을 쉬었다.

언택트 시대 온라인 주문 확대로 업무가 늘어나는 건 담당 직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점포에서 고객응대나 진열·소분 등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도 온라인 주문량 증가에 따라 노동강도가 높아졌다. 온라인 주문을 피킹(집품)·패킹(포장)하기 ‘전’ 주문서에 맞춰 제품을 소분하고, 피킹·패킹 ‘후’ 상품이 빠진 만큼 다시 채워 넣는 건 기존 오프라인 노동자들이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노동자가 노동의 ‘밀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일하는 사이, 새로운 일자리는 특수고용직이나 단기계약직 같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법 밖의 노동자’를 우선 보호하면서 산업 변화에 맞는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온라인사업 확대로 노동자 일감 준다?
“현장 모르는 소리”

24일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에 따르면 이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018년 3만816명에서 2021년 2만7천47명으로 3천769명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파견·용역·하도급 등 ‘소속 외 근로자’는 9천53명에서 1만848명으로 1천795명 늘어났다.<표 참조> 자동화·무인화 추세에 따라 계산원 감소도 두드러진다. 지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마트 캐셔는 2018년 12월 6천657명에서 2022년 3월 5천523명으로 1천134명이 감소했다. 전체 145개 점포에서 10명 이상 줄어든 점포가 52곳, 20명 이상 줄어든 점포는 8곳이나 된다.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분위기에 오프라인 소비 심리가 회복하고 있지만 유통업계 온라인시장 확대와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1년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2020년에 비해 오프라인 매출 비중은 53.5%에서 51.7%로 줄어들고, 온라인은 46.5%에서 48.3%로 늘어났다. 전년 대비 온라인 매출 증감률을 보면 2017년(13.2%), 2018년(15.9%), 2019년(14.2%), 2020년(18.4%), 2021년(15.7%)로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했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4월 온라인쇼핑 동향’을 봐도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6조4천571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9% 증가했고, 온라인쇼핑 중 모바일쇼핑 거래액은 12조2천831억원으로 15.7% 증가했다.

유통업계 종사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문제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성혁 서비스연맹 연구원장은 “수년 내 온라인 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이라며 “주 형태가 온라인 판매가 되고 오프라인은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인원 감소로 인해 업무강도가 세지는 경향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연맹이 2020년 12월 발표한 ‘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 고용인원은 2015년 7만2천188명에서 2020년 6만173명으로 1만2천15명 감소했다. 김성혁 원장은 “온라인 매출 증가에 동반해서 업무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다기능업무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강도 증가, 고용불안 심화에 임금 감소까지 ‘삼중고’

백화점에서도 온라인 판매 확대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연동’돼 높아지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 판매 직원으로 일하는 박우진(39·가명)씨는 지난달 한 고객의 “핸드워시를 사면 사은품을 주지 않냐”는 질문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전에 관련 프로모션 내용을 전혀 듣지 못한 탓이다. 고객은 휴대폰으로 공식온라인몰 행사 내용을 보여주며 “직원이 이런 걸 모를 수 있냐”고 따졌다. 본사 차원의 마케팅·프로모션이 온라인에 집중되면서 이런 일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고객응대나 제품 테스트, 교환·환불 같은 사후처리를 박씨가 담당해도 온라인에서 구매가 이뤄지면 판매수당은 받지 못했다. 코로나 시기 일은 줄지 않았는데 판매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감소로 임금이 10~15%가량 깎였다. 박씨는 “최근 매장 고객수가 늘어나면서 수당 감소는 회복되고 있지만 인원이 최소화된 상태여서 혼재된 오프라인·온라인 업무로 노동강도는 더 높아졌다”고 호소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위원장 김소연)가 지난 4월 백화점·면세점에서 근무하는 6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8명(79.9%)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판매 확대로 임금 감소를 겪었다. 월평균 감소액은 35만8천원 정도다. 임금은 줄어드는데 업무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응답자 81.2%는 “샘플링, 시연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71.3%는 “온라인 판매와 연관된 업무가 추가됐다”고 답했다. 인력축소로 인한 노동강도도 높아졌다. 응답자 절반이 넘는 55.2%가 인원 감소를 경험했다. 혼자서 근무를 했다는 응답자도 73.8%였다.

노조는 온라인 판매 기여 노동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단체교섭을 통해 한국시세이도지부는 온라인 판매 기여분으로 월 5천원을 고정수당으로 지급받기로 했고, 록시땅코리아지부는 연 30만원을 받기로 했다. 김소연 위원장은 “꼭 금전적 보상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인력충원이나 업무조정이 필요하고, 브랜드 철수나 매장 축소시 고용안정 또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새 일자리는 특고·단기계약직으로 채워져

기존 오프라인 노동자들이 ‘삼중고’에 시달리는 가운데, 온라인부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홈플러스 이커머스부서에서 ‘피커(Picker·집품 작업자)’로 일하는 오변순(55)씨는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앉아 있을 새가 없다. 6개 박스가 실린 카트에 주문물품을 싣고 15번 이상을 왔다 갔다 해야 한 차수가 종료된다. 이렇게 세 번의 차수를 마무리하면 하루 업무가 끝난다. 근무시간 동안에만 2만보를 걷는다. 오씨는 “늘어나는 물량만큼 인원을 충원하지 않고 연장근무를 시킨다”며 “물이나 쌀 같은 걸 많이 들다 보니 허리나 무릎이 다들 아프다”고 전했다.

주재현 홈플러스지부장은 “주먹구구식으로 확장을 하다 보니 작업환경이 열악하다”며 “환기시설이나 냉방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들도 있고, 좁은 후방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사고 위험도 높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쓱닷컴에서 일하는 피커들의 경우 새벽배송으로 인해 전에 없던 야간조가 생겼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홈플러스 이커머스부서 ‘피커’의 작업 현장 모습. <취재원 제공>
홈플러스 이커머스부서 ‘피커’의 작업 현장 모습. <취재원 제공>

새로 생겨난 일자리가 특수고용직·단기계약직 같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약 5천명으로 추정되는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기사는 운송사와 위수탁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다. 마트와 운송계약을 맺은 운송사가 작은 운송사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다. 본사 방침에 따라 휴무일이 들쭉날쭉하고 열흘에 한 번 쉬는 날도 있지만 배송차량과 영업용번호판, 유류비, 차량관리비 등 제반비용은 전부 기사 본인 부담이다.

롯데마트 온라인 배송기사들의 경우 이달 말 대량해고 위기에 처해 있다.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부 방침에 따라 운송사가 배송차량 718대 중 약 24%인 171대를 감차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열 경쟁으로 무분별한 사업확장에 나선 뒤 경쟁에서 밀려나자 그 책임을 배송기사에게 전가하는 형국이다. 롯데마트지부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온라인사업 확대로 증차와 모바일부서 채용이 이뤄졌는데 갑작스러운 축소 방침에 따라 모바일부서 사원들도 타부서로 발령이 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 바깥에 놓인 종사자들부터 보호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혁 원장은 “온라인 배송기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특수고용직 택배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며 “유통 관련 법을 적용할 것인지, 물류 관련 법을 적용할 것인지 관계 부처들은 서로 떠넘기기를 하고 있는데 최소한의 보호장치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한 종사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유통산업발전법에 종사자 혹은 일자리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며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서비스법)이나 공동주택관리법에 택배·경비 노동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것처럼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산업발전만이 아닌 종사자 보호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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