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이 일이 해결돼야 그나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계속 시달리고, 생각나고…. 매번 해 왔던 말이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죠. 피해자들도 그래야 툴툴 털고 일어나고,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어요.”

전아무개씨의 시간은 지난해 5월에 멈춰 있다.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업무 중 코로나19에 감염됐고 그의 남편과 자녀 모두 확진되는 아픔을 겪었다. 전씨의 남편은 코로나19 합병증을 겪으면서 1년반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뇌병변 장애 1등급을 받기도 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지만 전씨를 포함한 집단감염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풀릴 길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산업안전보건법 51조 위반 혐의로 쿠팡을 고발한 사건을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이 수사하고 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이 조항에는 “사업주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노동부, 부천지청에 지난 15일 회시

그런데 22일 <매일노동뉴스>가 취재해 보니 고용노동부는 최근 쿠팡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석하고 부천지청에 이를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 15일 부천지청에 쿠팡이 방역당국의 구체적인 지시를 불이행한 바가 없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아니라고 회신했다. 비공개 질의회시에는 “코로나 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 코로나 방역조치에 대한 사업주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는 방역당국이 내린 구체적인 조치를 실제로 이행했는지를 판단해야 하고, 방역당국의 구체적인 조치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면 그 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노동부 산업보건기준과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 51조는 안전사고를 상정하고 만든 조항으로 눈에 보이는 위험이 있을 때 즉각적으로 사업주가 작업을 중지하라는 뜻”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병원체·감염병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 내용이 없는데 일반적인 상식에서 방역당국의 전문성을 인정해 (지침을) 따르도록 하고, 따르지 않으면 안전보건조치를 다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쿠팡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따라 방역당국의 조치를 이행했으면 면책이 된다는 취지로 본 것이다.

“노동부 해석은 월권, 감염병예방법도 위반”

대책위와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는 반발했다. 이들은 22일 오전 부천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염병예방법과 결부해 산업안전보건법 해석을 내리는 것은 월권”이라며 “지차체 등의 방역 조치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률 위반에서 면책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정병민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산업안전보건법 51조는 사업주가 인지한 위험에 대해 적절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해 재해를 예방하도록 한 조항”이라며 “감염병 발생 사실을 인지한 회사가 전파 가능성을 노동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쿠팡 부천물류센터 확진자가 최초 발생한 것은 지난해 5월23일로 다음날 방역당국은 쿠팡에 이를 통보했지만 쿠팡은 반나절에 걸친 소독 작업 후, 오후조 근무자들을 작업장에 투입했다. 근무는 같은달 25일 오후 7시까지 계속됐고 초기 대응 미흡은 152명이 집단감염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정 변호사는 최근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노동부 해석을 반박했다. 대법원은 “크레인 충돌방지 관련 안전조치가 관련법에 구체적이고 명백한 규정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안전보건규칙에 위험 방지 조치를 개별적으로 열거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사업주에게 해당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며 “해당 안전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연일 코로나19 확진자가 7천명 넘게 나오는 상황에서 쿠팡 물류센터는 여전히 위험지대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A씨는 “물건과 물건 사이 간격이 굉장히 좁아서 노동자 두 명이 서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접촉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불안한 상황을 전했다.

고양물류센터는 지난 8일부터 10명이 넘는 노동자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지부는 “쿠팡이 22일 폐쇄를 예고했다가 노조의 문제제기로 지난 21일 저녁 8시38분 물류센터를 폐쇄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노조측의 주장일 뿐 직원 안전을 위한 예방적 조치로 물류센터 운영을 일시 중단한 것”이라며 “접촉의심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선제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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