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1일 오전 세종 고용노동부 앞에서 열린 폭염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양동이에 물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건설노조>

“찌는 듯한 무더위에 바람 한 점 없는 지하에서 안전벨트와 못 주머니를 차고 거푸집 작업을 하다 보면 체감온도가 40도를 훌쩍 넘어갑니다. 토시를 하고 긴팔 옷을 입어도 햇볕에 달궈진 철근에 데이기 일쑤입니다. 뜨거운 철근을 어깨에 메면 화상 자국만 남습니다. 안전장비와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숨쉬기조차 힘이 듭니다. 건설현장에서는 안전보다 비용을 중시하는 관행 때문에 변변한 그늘막 하나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20여년을 건설현장 철근공으로 일하고 있는 한경진(45)씨의 하소연이다. 건설노조가 21일 오전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씨는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폭염대책으로는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노동자들 폭염 속 쉬지 못한다”
건설노동자 10명 중 2명만 “폭염으로 10분 쉬어”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31일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겠다며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 가이드’를 발표했다. 폭염 위험단계를 ‘관심·주의·경고·위험’의 4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를 기온만이 아니라 ‘기온·습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위험단계에 따라 사용자에게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조치할 것과 옥외 작업장과 가까운 곳에 햇볕을 가리고 바람이 통하는 그늘 공간을 제공하라는 등의 권고를 담았다. 체감온도가 섭씨 33도 이상인 주의(폭염주의보) 단계에서는 1시간마다 10분 휴식시간을, 35도 이상인 경고(폭염경보)와 38도 이상인 위험단계에서는 15분의 휴식시간을 부여하게 했다. 해당 권고를 발표한 것만으로, 또 사업주가 권고를 잘 지키면 열사병 등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을까.

건설노조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조합원 1천453명을 설문조사했더니 “폭염특보 발령시 1시간 일하면 10~15분씩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는 응답은 22.8%에 불과했다. 23.8%만 “폭염으로 작업이 단축되거나 중단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5.9%는 “시원한 물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햇볕이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은 33.5%에 불과했고 “아무 데서나 쉰다”는 답변이 66.5%였다. ‘에어컨이 설치된 휴게실에서 쉴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52.5%는 “없다”고 답했고 “휴게실이 멀어서 가기 힘들다”는 응답은 23.3%였다. 세면장 상태에 대해서는 45.1%가 “씻을 수 있는 곳이 못 된다”고 답했고, 26.3%는 “세면장이 없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보면 사업주는 폭염에 노출되는 야외작업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과 그늘진 장소, 깨끗한 음료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 이 같은 제도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질병관리청 등 유관부처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자는 156명이다. 이 가운데 26명이 사망했다. 극심한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8년에는 12명이 숨졌다. 여름철 온열질환은 주로 야외에서 작업하는 건설업(76명)과 환경미화 등 서비스업(42명)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고용불안·임금감소 우려로 작업중지권은 있으나 마나

지난 20일 폭염위기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되자 노동부가 다시 나섰다. 5월31일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라며 ‘일터 열사병 주의보’를 발령했다. 물·그늘·휴식 등을 충분히 제공하고 작업자가 건강상 이유로 작업중지를 요청할 때 즉시 작업을 중지하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과 산업안전보건법 26조(작업중지 등) 조치를 버무린 대책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도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작업중지권이라 불리는 제도인데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40대 초반 김아무개씨는 지난 17일 오전 10시께 쓰러졌다. 전날부터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고 손이 저렸다. 눈앞이 캄캄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속이 메스꺼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쓰러진 김씨는 병원에서 열사병 진단을 받았다. 대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는 오전 6시에서 오후 2시까지 일한다. 김씨가 쓰러진 뒤 민주연합노조는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작업을 중단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안산시에 요구했다. 계약갱신을 걱정하는 민간위탁업체에 요구해 봐야 개선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쓰레기를 빨리 치우지 않으면 민원이 쏟아지기 때문에 무더위가 극심해도 잠깐 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며 “민간업체·지자체 모두 개선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가이드라인이 옥외 노동자만을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학교 급식실이나 유통업체 물류센터, 선별진료소, 조선소 선내 용접공 등 옥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업무 환경에 따라 폭염에 노출돼 있지만 관련한 정부 대책은 없다. 200도 안팎의 기름, 밥 짓는 열기와 수증기 등으로 학교급식실은 사우나실과 다름 없다. 제 시간에 밥을 내어야 하는 급식실 노동자에게 힘들다고 쉴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정부는 2005년 폭염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래 지난 16년간 폭염시 작업중지는 오로지 권고로만 규정하고 있다”며 “강제력 없는 안이한 대책만을 내놓으면서 폭염으로 다치고 죽어 가는 노동자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부는 가이드라인에 의존하는 기존 대책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가이드라인과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으로 옥내외 노동자를 어느 정도는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산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으면 작업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열사병도 이에 해당한다”며 "근로자도 대피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폭염시 작업중지권은 전체 사업장에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성 없는 가이드 넘치는데, 실효성 있는 조치는 ‘모르쇠’

그렇지만 노동부는 임금보전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노동부에 폭염·한파에 따른 건설노동자 안전·건강 증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폭염 상황에서 조기출근이나 유연근무 등 여러 조치를 우선 시행하고, 작업중지로 감소한 임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다. 노동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열사병 예방을 위한 가이드에 육체노동강도에 따른 체감온도 차이를 고려하는 내용을 명시하라는 권고만 수용했다. 올해 가이드라인에 폭염 위험단계를 구분할 때 ‘기온·습도’를 살피기로 한 배경이다.

노동부가 새로운 대책을 내놓지 않으니 노동계는 알아서 살 길을 찾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노동부 대책이 옥외작업장 등으로 한정돼 있어 학교급실실·선별진료소 등은 제외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하는 노동자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스스로 제작한 ‘폭염으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한 지침’을 산하 사업장에 내려보냈다. 섭씨 30도 이상 환경에서 중작업을 하면 반드시 작업중지를 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작업중지에 따른 임금감소 등의 피해를 노동자가 받기 때문에 작업중지가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취지로 사업주가 작업중지를 하기 전에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중지를 하라는 노조 지침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경북 포항에서 작업 중 사망한 KT 하청노동자의 휴식시간은 3시간이었다. 정오에서 오후 2시까지 쉬고, 30분씩 2번을 더 쉬는 것으로 계약했다. 이런 식으로 무더위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정하면 현장에 있는 시간은 똑같은데 임금은 그대로인 상황이 된다. 조성애 국장은 “무급인 휴식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하는 조치가 있어야 폭염시기 휴식이 제대로 지켜진다”며 “정부 대책에 이 같은 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폭염으로 공사기간이 연장될 경우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폭염으로 작업중지·공기연장이 되더라도 발주자나 원청 건설사가 노동자 임금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건설현장은 중층적 다단계 하도급 구조하에서 공사기간 단축 관행에 시달리고 있다”며 “일을 빨리 마칠수록 이윤이 남기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작업중지는커녕 휴식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노동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하절기 사업주는 휴게시간을 더 제공해야 한다”며 “노조도 적절한 휴게장소와 쉴만한 그늘을 가진 장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사업주에게 적극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폭염시 작업중지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명선 실장은 “건설현장의 경우 폭염시 작업중지를 위해 공기연장을 요청할 수 있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얼마나 되겠냐”며 “폭염시 반드시 작업을 중지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열사병 증상이 나타나면 작업중지를 하라는 취지의 정부 대책은 사후적인 조치에 불과하고 예방책으로 볼 수는 없다”며 “어느 정도 상황이 발생하면 작업중지를 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현장 노동자들이 실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정남·신훈·어고은·정소희 기자

[옥내는 안전할까]
“옆 동료 쓰러져도 밥해야”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경기도 시흥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하는 홍은숙(48)씨는 최근 연이은 폭염으로 일하다 구토증세나 어지럼증을 느낄 때가 많다. 그는 180~200도 고온의 튀김이나 볶음·구이 조리를 할 때면 “땀이 비오듯 흘러서 속옷까지 젖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등교인원이 줄어 노동자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수(식수인원)은 감소했지만 노동강도는 되려 높아졌다.

음식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조리와 식기구 세척 같은 기본 업무는 변함이 없다.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하는 시차배식은 쉴 틈 없는 노동을 유발한다. 한 번에 조리하던 것을 두 차례에 나눠서 하게 되고, 배식시간이 길어지면서 현장 뒷정리할 시간도 부족하다. 철저한 방역을 위해 식기구 전부를 열탕소독하면서 불 앞에 있는 시간은 늘어났다. 거리 두기를 위한 가림막 설치와 관리, 소독작업도 노동자들 몫이다.

정해진 배식시간에 맞춰 조리를 완성해야 하는 홍씨에게 작업중지권은 ‘그림의 떡’이다. 조리노동자들은 폭염이 이어지는 동안만이라도 고온의 튀김요리 등을 오븐요리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홍씨는 “동료가 옆에서 쓰러져도 아이들 밥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방두봉(50)씨는 열배관을 점검하는 노동자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자회사인 지역난방안전에 소속돼 있다. 그의 일터는 한여름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맨홀 안이다. 온수가 흐르는 관은 단열재로 쌓여 있지만 밸브 등은 노출돼 있는 탓에 고온 환경을 만든다. 배관에 발을 딛고 지름 수십미터짜리 밸브를 온힘을 다해 여닫는 일을 하루 수십 번 한다. 안전발판이나 고정사다리를 놓고 일할 수도 없다. 맨홀 안 배관 등 시설물은 공사 소유라 자회사 노동자들이 기타 시설물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낙상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신경을 곤두세워 일해야 한다. 방진복을 입고 일하기 때문에 온몸을 쥐어짜듯 땀이 쏟아진다.

최근 하절기 대책으로 제빙기·쿨매트·쿨시트 제공을 회사에 요구했지만 수요조사만 했을 뿐 실제 지급은 되지 않고 있다. 작업중지권은 행사할 수 없다. 자회사인 지역난방안전은 사업을 낙찰받기 위해 과업달성률이 중요하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어 회사에 안전대책을 요구할 통로도 사실상 닫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업지원 서비스업 중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립해야 하는 사업장은 상시노동자 300명 이상이어야 한다. 지역난방안전은 240명가량이 일한다. 방씨는 “한달 내 해야 할 작업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공사가 회사에 주는 돈을 깎는다”며 “위험해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이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