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낮 기온이 섭씨 36도를 넘나든 28일 오전 서울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한 철근공이 땀흘리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이날 폭염 속 건설현장 노동실태 파악을 위해 현장을 방문하고 간담회를 진행했다. <정기훈 기자>

“어디 잘 한번 보세요. 21세기에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사진 좀 잘 찍어 주세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점심시간을 맞아 잠시 지친 몸을 달래고 있던 한 노동자가 카메라를 든 기자들에게 외쳤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간이 휴게실을 들여다보니 10여명이 다닥다닥 붙어 누워 있었다. 콩나물시루가 떠올랐다.

낮 최고기온이 섭씨 36도까지 올라 폭염경보가 발령된 28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미향 무소속 의원과 건설산업연맹 관계자들은 여름철 폭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현장의 노동실태를 파악하고 노동자 보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물·그늘·휴식’은 있지만…

건설노동자들은 폭염에 취약한 대표적인 옥외 노동자다. 안전모와 장갑을 착용하고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 팔에는 토시를 하고 긴 바지를 입는다. 달궈진 철근과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건설현장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으로 156명이 산재를 당했다. 이 가운데 건설업 종사자가 76명으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지난 22일에는 서울 강남구의 건설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철근을 나르다 쓰러져 사망했다. 26일에는 인천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던 50대 노동자가 숨졌다.

26개동 1천772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대규모 건설현장 곳곳에서 ‘혹서기 근로자 휴게실’을 찾아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옥외 작업자를 폭염에서 보호하기 위해 ‘물·그늘·휴식’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규칙적으로 마실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을 비롯해 △옥외 작업장과 가까운 곳에 햇볕을 가리고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충분한 공간의 그늘을 제공하고 △폭염특보 발령시 한 시간당 10~15분씩 규칙적인 휴식시간을 부여하라는 내용이다.

이 현장에서도 휴게실 앞에 ‘충분한 물, 그늘진 곳에서 정기적 휴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제빙기가 설치돼 있었고 포도당 사탕도 구비돼 있었다. 이동형 에어컨에서는 미지근한 바람이 나왔다. 요즘처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날에는 그늘막으로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소속 업체에서 설치한 컨테이너 휴게실에서도 쉴 수 있는데 짧은 휴식시간 동안 오가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한다.
 

▲ 한 건설노동자가 점심시간에 빙과류를 손에 쥐고 있다. <정기훈 기자>
▲ 한 건설노동자가 점심시간에 빙과류를 손에 쥐고 있다. <정기훈 기자>

“사람은 600명인데 샤워장은 한 곳뿐”

이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는 박중용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동남지대장은 샤워 시설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박 지대장은 “한 시간만 일해도 땀이 비 오듯 흘러 속옷까지 다 젖는다”며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면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지대에 따르면 이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만 600명가량인데 샤워장은 한 곳뿐이라서 대부분 땀에 찌든 옷을 입은 채로 귀가한다. 그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5일 건설사를 상대로 무더위가 극심한 오후 2~5시에는 공사를 중지하도록 권고했다. 이런 작업중지는 강제력이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라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작업중지에 따라 노동시간이 짧아지면 건설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강한수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폭염 같은 기후변화를 고려해 공사기간을 산정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돈을 아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미향 의원은 “폭염이 가장 심한 시간에 노동자들을 쉬게 하려면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며 “작업중지권을 발동하지 않는 원인은 작업시간 때문이고 이는 결국 임금 문제”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실질적인 폭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철근작업을 하던 건설노동자가 물을 마시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철근작업을 하던 건설노동자가 물을 마시고 있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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