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경동건설 본사 앞에서 투신이라도 해야 하나. 분신을 할까.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쳐다봐 줄까?”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던 정석채(36·사진)씨의 삶은 2019년 10월30일부로 바뀌었다. 20년 넘게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 정순규씨가 여느 날처럼 일터로 출근했지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날이다. 업무 중 비계에서 떨어진 고인은 사고 다음날 숨을 거뒀다. 하지만 ‘사고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유가족에게 설명해 주는 이는 없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원·하청업체 관계자들은 유족에게 그 흔한 명함 한 장 건네지 않았다. 사고 이유를 묻자 회사쪽 관계자 7명은 “2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목격자는 물론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며 사고 이유를 단정 지었다. 믿을 수 없었다. 석채씨는 진실을 밝힐 자료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뛰어다녔다. 50번 가까운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안전보건공단이 사고 현장을 조사한 재해조사 의견서도 받을 수 없었다. 언론사에 3만번 넘는 제보를 하고,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도움을 받은 뒤에야 진실의 퍼즐을 하나씩 맞출 수 있었다.

6일 <매일노동뉴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석채씨가 견뎌 낸 1년7개월의 시간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정석채씨 개인 이야기지만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후 투쟁을 선택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지난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모임공간에서 이뤄졌다.

“명함도 건네지 않던 회사 관계자”

2019년 10월30일 오후 2시께 석채씨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에서 일을 하던 그는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바퀴가 김해공항 활주로에 닿기도 전에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 수십 통이 걸려와 있었다. 그날 뇌사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 어쩌다 사고가 발생했는지 알려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랑 같이 일했던 분이 계셨어요. 20여년 동안 알고 지냈고, 엄마랑 동생이랑 식사도 하고 사적으로 뵙기도 했던 분이에요. 그러면 ‘괜찮으시냐. 많이 놀라셨겠다’ 하고 말하는 게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아버지 지갑에서 안전(교육) 이수증을 빨리 달라고 하더라고요.”

경동건설과 JM건설 관계자의 석연찮은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고 이유를 묻자 병원을 찾아 모여 있던 회사 관계자 7명은 2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동시에 답했다. 머리에 커다란 자상, 멍투성이 몸, 찢긴 옷, 안전모의 긁힌 자국은 2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생겼다고 믿기 어려웠다.

경찰은 그의 아버지가 4.2미터 높이에서 핸드 그라인더로 벽에 튀어나온 철심을 제거하던 중 비계 안쪽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인 11월1일 새벽 석채씨와 어머니는 유족 조서를 쓰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 이 말을 들었다. 사측이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직감했다.

“경찰쪽 처음 조사처럼 비계 안쪽에서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족이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기에 119신고녹취록을 확보했어요. 사정사정했죠. 이걸 주시면서 구급대원이 하시는 말이 작업복이 많이 찢겨 있었다고….”

2019년 10월30일 오후 1시5분 고인을 발견한 신고자는 “몇 미터에서 추락했어요?”라는 구급대원의 질문에 “1미터, 1미터, 한 2미터, 2미터요”라고 답했다. 목격자도, 확보한 CCTV도, 차량 블랙박스도 없다고 했지만 119 신고자는 추락위치를 ‘가늠해’ 말했다.

아버지가 사망선고를 받은 직후 사고 현장을 찾았지만, 회사 직원이 막아 들어갈 수 없었다. 같은달 3일 세 번째 방문 끝에 확인한 현장은 119 출동 당시 사진, 그리고 아버지가 재해 전 찍어 놓은 사진과는 확연히 달랐다.

“안전조치 미흡 사실을 은폐하려 비계를 벽쪽으로 밀어넣고, 사고가 났다던 수직사다리를 철거했어요.”

사고 당시 설치된 비계 발판과 벽 사이 간격은 45센티미터로 성인 한 명이 충분히 떨어질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 뒤 비계가 안쪽으로 옮겨져 벽과 비계 발판 사이의 간격이 크게 좁혀졌다.

“50여건의 정보공개 요청했지만….”

그날 일을 가장 잘 아는 회사가 사실을 감추니, 석채씨는 눈 앞이 깜깜했다. 50여건의 정보공개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가 혼자 힘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자료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제출한 재해 관련자 기소 의견서뿐이었다. 재해가 발생하면 회사가 작성해야 하는 산업재해 조사표도 언론을 통해 문제제기를 한 뒤에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산업재해 조사표를 요청하니 ‘제3자 관련된 부분이라서 사업자쪽 의견을 받아야 한다’고 답변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숨진 지 7개월이 지난 뒤였다. 검찰에 제출한 기소 의견서에 부산지방노동청은 “고인이 2.15미터인 외부 비계 2단 작업발판 위에서 발판과 난간대 사이로 나와 수직사다리로 내려오는 도중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에 추락했다”고 기재했다. 고인이 소속돼 일하던 하청업체 JM건설쪽이 작성한 산업재해 조사표상 사고 원인과 동일했다. 당시 사업주는 “작업 후 외부비계에 설치된 수직사다리(2M)로 내려오던 중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진 사고로 추정됨”이라고 재해발생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부산노동청은 원청인 경동건설과 하청 JM건설 관계자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의견을 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재해조사 의견서는 구할 수 없었다. 석채씨는 지난해 10월 강은미 의원의 도움으로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동건설의 산재사고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혼자 힘으로 받을 수 없던 재해조사 의견서도 확보했다.

국감이 끝난 후에도 사실을 아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모두 그러모았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재판기록 및 속기록’ 열람신청을 했다. 열람신청은 불허됐지만, 경동건설쪽 변호인 의견서는 얻을 수 있었다.

수백장을 넘겨 본 그는 아버지가 현장의 안전·관리 감독자였다는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찾았다. 안전·관리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음을 입증하고, 회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취지로 사측이 제출한 자료였다. 해당 문서에 표기된 서명은 평소 아버지 필체와 달랐다. 필적감정을 맡긴 끝에 필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혔다.

“고용노동부랑 안전보건공단 모두 경동건설 편이에요.”

산재 사고를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업주에 맞서 싸운 그는 노동부와 관련기관, 검찰 모두 믿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재해자가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하고 넘어갔을 일이 너무 많았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우리는 꼭 이깁니다.”

끝없는 좌절 속 그는 난생처음 원형탈모를 겪었고, 수면제나 술 없이 여전히 잠을 자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그를 붙잡은 것은 같은 처지에 있는 재해 유가족의 말이다. 경기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고 김태규씨 유가족은 지난해 국감을 통해 석채씨 소식이 알려지자 연락을 해 왔다. 김태규씨의 어머니는 석채씨에게 문자메시지로 이런 위로를 전했다.

“아드님이 끝도 보이지 않은 싸움에,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하고 묻고 싶겠죠? 질문에 답을 하자면, 우리는 꼭 이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거니까요.”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해 준 말 같아서 더 와닿았다”며 “저장해 두고 틈날 때마다 꺼내 본다”고 했다.

그의 바람은 단 하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이달 16일 있을 부산지법 1심 선고를 앞둔 그는 부산지법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원·하청 관계자 모두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달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경동건설 현장소장과 JM건설 이사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경동건설 안전관리자에게는 금고 1년을, 원·하청 법인엔 각각 벌금 1천만원을 구형했다.

그는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싸울 것”이라며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살아가려면,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노동청이 찾아낸 현장 안전규정 위반은 미끄러짐 방지 장치·안전고리 연결구·경고판 미설치 세 가지다. 하지만 석채씨가 발로 뛰며 찾은 안전규정 위반 사항은 안전 난간대 누락과 쌍줄비계 미설치, 안쪽벽 난간대·발끝막이판·벽이음·생명줄·안전망 미설치 등 여덟 가지다. 그는 경동건설이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위조한 의혹, 안전규정 위반 등을 모두 반영해 경동건설의 과실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석채씨는 “이렇게 거리에 나가 울부짖는 이유는 저 아닌 다른 재해 유가족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때문”이라며 “어떤 루트를 통해서라도 유가족께서 연락을 주신다면 개인적으로라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개하라” 요구 이어지는 ‘깜깜이’ 재해조사 의견서

재해조사 의견서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재해 당사자나 유가족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경동건설 하청노동자 정순규씨 아들 정석채씨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의 도움을 얻고 난 뒤에야 재해조사 의견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전보건공단이 객관적·중립적으로 재해조사를 마치고, 고용노동부가 수사를 한다고 해도 깜깜이로 진행된 재해조사 과정 탓에 불신은 더욱 커진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재해조사 단계에서 재해조사 내용이 확보되지 않으면 공소유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피해자쪽 입장에서 조사가 미진했다고 느끼는 것이 있을 수 있고, 그럴 경우 문제를 제기하고 ‘더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해야 하는데 정보가 없어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 정순규씨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지금은 재해조사를 진행해도 어떤 것들이 조사됐고, 결과가 어떤지 일반적으로 알 수가 없으니까 그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재해조사 의견서가 공개돼서, 그 사고와 관련된 이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재해조사 의견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면서도 “산재사고가 실시간으로 공개될 경우 아무리 비식별화 과정을 거치더라도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공단이 재해조사 의견서를 공개할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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