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광주 서구 신축아파트 건설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지난달 25일 계단 벽면에 페인트칠을 하기 위한 평탄화 작업을 하다 1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 고인은 재해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무도 고인이 사라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얄궂게도 고인이 발견된 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건설현장 추락사는 너무 잦아 알려지지 않고 사라지는 죽음이 더 많다.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 재래식 재해로 꼽히는 건설현장 추락사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882명 중 절반(51.9%)에 해당하는 458명이 건설노동자다. 이 중 51.5%는 추락사했다. 과거 죽음에서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고 때마다 재해조사 의견서가 작성되는데 비슷한 재해는 반복된다. 재해조사 의견서가 재발방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재해조사 의견서 중 대표적 건설업 추락사고 6건을 살펴봤다.

“공정 편의 우선하는 건설현장
작업자 안전 놓쳐”

추락사고 6건의 피해자 7명(5명 사망, 2명 부상)은 나이가 39세부터 65세로 다양했다. 건설현장에서 하는 일은 물론 재해 경위도 모두 달랐다. 유일한 공통점은 안전난간대나 추락방호망 등 안전장치가 재해를 막을 만큼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용자가 처음부터 재해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거나, 공정 과정상 편의를 이유로 설치돼 있던 안전시설물을 서둘러 해체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재해조사 의견서는 이들의 사건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경기도 하남 한 공사현장에서 보통인부로 일하던 여성노동자 A씨는 지난해 10월5일 47.4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A씨는 사고 당시 거푸집 작업이 끝난 옥상에서 거푸집 고정 핀을 줍는 등 자재정리 중이었다. 사고는 오전 11시10분께 용변을 해결하고자 4면이 벽으로 둘러쌓인 공간인 자재반입구로 들어갔다가 발생했다. 안전난간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던 탓에 엘리베이터 피트(승강장 아랫부분에서 승강로 바닥면까지 공간)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한 것이다. 원·하청 회사의 안전관리자와 재해 당시 함께 있던 동료를 조사한 재해조사 의견서는 이전에 설치돼 있던 안전난간대가 사고 당일 “임의 해체됐다”고 추정했다.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바닥 콘크리트에 구멍을 내 볼트를 체결하는 방식의 안전난간대를 해체하려면 공구가 필요하다”며 “누가 임의로 잠시 해체했다기보다는 골조 마무리 공정으로 영구해체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남은 후속 공정 작업자들의 안전보다 주요 공정, 가설자재 해체·반출 일정 등을 우선 고려해 발생한 재해라는 것이다.

서울 광진구 오피스텔 건설현장에서도 자재반출구 인근 건물 기둥에 거푸집 설치 작업을 하던 건설노동자가 고정돼 있지 않은 안전난간대 일부와 함께 개구부 아래로 추락했다. 재해조사 의견서에 따르면 안전난간대와 개구부 위 작업발판 모두 건설사 관계자가 아닌 형틀목공 반장에 의해 설치된 것이었다. 거푸집 작업 이전 사고 위치에서 작업해야 했던 철근공은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왜 작업발판과 안전난간대 설치가 이들에게 맡겨졌는지는 따져 보지 않았다.

강한수 위원장은 “거푸집 노동자 이전 철근공도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위험천만하게 작업했을 것”이라며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어떤 조치도 마련하지 않고, 철근·형틀목수 노동자에게 작업을 맡겨 놓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작업과정상 문제 짚어,
안전보건공단에 조사 권한 줘야”

재해조사 의견서는 대개 사고의 직접 원인을 담는다. 직접 원인은 안전난간대 미설치다. 재해조사 의견서대로 안전난간대가 설치되지 않아 추락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 원인이면 추락을 예방하는 방법은 ‘안전난간대 설치를 잘하자’로 해법이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구조적 원인을 담는 형태로 재해조사 의견서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강한수 위원장은 “직접적인 사고원인만을 중심으로 재해조사 의견서를 작성해서는 안 된다”며 “위험하게 작업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제반 상황을 확인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작업한 방식이 잘못됐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사망사고는 더 이상 줄일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 보고서의 질적 제고를 위한 방안연구’에 따르면 현재 재해조사 의견서를 포함한 중대재해조사보고서 621건 중 떨어짐 방지대책 미실시, 개인보호장구 미착용 등 단순한 기술적 관리 원인을 기술한 보고서가 98.4%(611건)로 가장 많았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재해조사 의견서 내용의 충실도를 위해서는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고 구조적인 요인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며 “재해조사 의견서 작성과 관련해 안전보건공단 조사 권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현재 안전보건공단은 사고현장에서 조사 권한이 없어, 구조적·간접적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재해조사 초점은 1차적으로는 기술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조사하는 것이 돼야 하지만 2차적으로는 정석대로 했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그럼에도 왜 정석대로 하지 못한 것인지에 관한 부분까지 조사돼야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