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모습. <강예슬 기자>

인천국제공항 1여객터미널 앞 서울·인천을 비롯해 각지로 가는 버스들이 모인 곳. 금요일 오전, 예년 이맘때면 트렁크를 끌며 대화를 나누는 승객들로 북적였겠지만 사람도, 버스도 찾아볼 수 없었다. 코로나19 장기화 탓이다. 승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인천공항 노동자들이 유례없는 보릿고개를 견디고 있다. 송환대기실에서 일하는 도급업체 노동자들도 그중 하나다. 입국이 불허된 외국인 승객이 한국을 떠날 때까지 관리하는 송환대기실 노동자들은 하늘 길이 막히자 잠시 멈춤 상태가 됐다. 간접고용 하청노동자로 1년 단위 계약을 갱신하며 수년을 일한 송환대기실 노동자는 격월로 무급휴직을 하며 기약 없는 기다림 중이다.

지난 18일 <매일노동뉴스>가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항 안 필수업무나 다름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인 이들은 재난시기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업무 중 사고가 날까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인력업체인 탓 고용유지지원도 배제”

“최근에 또 한 명이 이달 말일까지만 일하겠다고 했어요. 무급휴직이 길어지면서 생활이 좋지 않다 보니까….”

김혜진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송환대기실분회장이 한숨을 지었다. 입국불허자를 관리하는 노동자는 42명이었지만 최근에만 5명이 퇴사했다.

송환대기실 노동자들은 지난 4월부터 순환무급휴직을 하고 있다. 23명(정원 42명 기준)이 무급휴직을 하고 19명만 근무하는 형태다. 고용불안은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매년 11월30일 근로계약을 갱신해 왔지만, 올해는 아직 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청인 인천국제공항 항공사운영위원회(AOC·여러 항공사들이 모인 기구)와 인력업체 A사의 도급계약 만료일은 12월31일이다. 노동자들은 원청이 만료일 한 달 전 별다른 통보를 하지 않았으니 계약이 1년 더 연장되리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발생한 고용위기와 생계위기는 하청노동자에게 쏠린다.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은 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소속된 도급업체 A사가 인력변동이 없어야 한다는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인력업체로 등록된 탓에 특별고용지원업종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김 분회장은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대출로 생활하고 있지만 1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그것도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10년 넘게 송환대기실에서 일한 김종식씨(45·가명)는 “일부 항공사는 도급비를 부담하지 않으려 입국불허자를 항공사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환대기실 노동자가 순환무급휴직에 들어가면서 이미 한 차례 도급비는 반토막 났다. 그런데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입국불허자를 처리하면 부담해야 할 도급비를 더 줄일 수 있다. 전체 도급비 중 5%는 균등하게 분담하지만 95%는 각자 싣고 온 입국불허자수에 따라 항공사별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비용을 아끼려는 항공사 시도는 인천국제공항 안 보안 구멍을 만들고 있다. 이날도 항공사가 자체 처리하겠다고 한 입국불허자가 탑승구역에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업무 중 발생한 사고,
원청·하청 아무도 책임 안져”

일부 송환대기실 노동자들은 퇴사마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고용불안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것이다. 송환대기실 노동자가 관리하던 입국불허 승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피의자 신분이 된 탓이다.

최근 어렵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는 정진혁(55·가명)씨는 신원조회에 걸려 이직을 할 수 없었다. 정씨는 “신원조회를 하면 검찰 송치 중이라고 뜨니, 기약 없이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이가 빠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2여객터미널 사무실에 올라가면 사고가 났던 곳이 보여 자꾸 생각이 난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사건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야 했던 제3국입국불허승객 ㄱ씨는 옷을 벗는 등 소란을 피웠고, 항공사는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 탑승 전까지 ㄱ씨 관리를 A업체 직원 세 명에게 맡겼다. 노조에 따르면 환승호텔로 옮겨진 ㄱ씨의 난동은 이후에도 잠잠하다 계속하길 반복했고, 급기야 돌연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고통은 노동자가 모두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조사 과정 중 원청과 하청업체 모두 변호사 선임 등의 지원을 해 주지 않았다. 또다른 피해자 최진수(45·가명)씨는 “회사는 사건이 잘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라, 중간중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크해 보라는 말만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난동 승객이 있어도 의사(닥터)가 있어서 그때그때 ‘이 승객은 이러저러하니 조치를 취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몸으로 감당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미흡하게 대처할 수도 있는데, 책임은 모두 우리가 진다”고 주장했다. 난동을 부려도 민간업체 노동자인 송환대기실 노동자는 강제로 승객을 제압할 수 없다.

최진수씨는 “현재 가지고 있는 출입증은 내년 3월까지 쓸 수 있고, 이후 상주직원용 임시출입증(3개월)을 2회 연장해 사용할 수 있다”며 “내년 9월까지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출입증이 발급되지 않아 직장을 잃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검찰은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국가가 입국불허자 송환 책임져야”

이들은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희망했다. 출입국관리법 76조에 따르면 입국이 금지되거나 거부된 사람을 태우고 온 운수업자가 외국인 송환 책임과 비용을 직접 책임지도록 돼 있다. 항공사운영위원회가 도급업체에 해당 업무를 맡기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도급업체 노동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배경이다.

양문영 인천공항지역지부 조직부장은 “1년에 한 번씩 계약이 갱신되고, 원청이 항공사 모임으로 형태가 불분명해 공항에서 필수업무를 수행함에도 고용불안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송환대기실 운영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박주선 국민의당·윤영일 민주평화당 의원이 각각 입국불허 책임이 운수업자에게 없을 경우 국가가 송환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과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 장에게 송환대기실 설치·운영을 맡기는 내용이 포함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분회장은 “원청도 (인원감축에 대한) 별다른 말이 없고, (하청)회사도 기존 인력을 유지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 당장 고용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되지 않고 항공사가 (송환대기실을) 임시 폐쇄할 것이라고 결정하면 저희는…”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국가의 송환책임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은 준비된 상태고, 발의 시점을 보고 있다”며 “다음주 정도에는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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