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월19일 한국노총이 9·15 노사정 합의 파기선언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제 활력이 저하되고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지 못하는 가운데 격차 확대로 이중구조는 고착화되고 있어,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 합의 서문 중. 2014년 12월19일)

“경제 활력이 감소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심화되고 있으며,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 노동시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경제사회노동위원회,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 선언 서문 중. 2024년 2월6일)

다른 듯 같은 두 문장이 10년 터울로 탄생했다. 노사정이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기 앞서 기본원칙을 합의, 선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10년이 지났지만 문제의식이 사실상 동일하고 임금, 근로시간, 정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논의 의제도 상당히 겹친다. 오랜 기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자, 해법을 두고 과거와 비슷한 갈등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기도 하다.

2024년 사회적 대화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2일 <매일노동뉴스>가 2016년 1월 한국노총의 노사정 합의 파기 및 노사정위 철수로 이어진 2014년 기본합의부터 2015년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9·15 노사정 합의) 과정까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을 되짚어 봤다.

기본합의 서문·원칙·방향, 10년 전과 판박이

2014년 12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합의했다. 논의의 기본원칙은 장기적 전망·관점과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었다. 안건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임금·근로시간·정년 문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와 효율성 제고 등이다.

경사노위가 지난 6일 본위원회를 열고 채택한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 선언문과 상당 부분 겹친다. 6일 노사정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의제를 폭넓게 발굴”하자며 기본원칙에 합의했다.

2개 의제별위원회를 꾸려 장시간 근로 해소와 노동시간 유연화 등 근로시간제도, 정년연장 등 계속고용 제도를 논의한다. 1개 특별위원회에서는 지속가능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산업전환, 합리적인 노사문화 구축을 위한 법 제도, 플랫폼 등 노동시장 사각지대 약자 보호 등 불공정 격차 해소 방안을 논의한다.

10년 전과 오늘 큰 틀의 문제의식은 물론 논의 의제도 중첩된다. 시간이 흘러도 노사 이견이 큰 쟁점사안이고, 풀리지 않은 문제란 뜻이다.

특히 구체적 의제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특별위원회에서는 “미래세대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지속가능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와 재계가 파견제도, 기간제와 관련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의제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해당 의제는 노사정 대화를 모두 삼켜버릴 만큼 파급력이 커 대화를 미룰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유연화나 파견 확대와 같은 문제는 갈등 의제로, 노동계는 산업전환이나 불공정 격차 해소에 집중하자고 이야기해 나갈 계획인데 경영계는 노동시장 활력제고라는 명목으로 주장할 수 있다”며 “다만 너무 민감한 의제는 제외하고 논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본격적인 논의는 총선 이후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3개 위원회 위원 구성부터 의제·운영계획 구체화 등 노사정이 조율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휴지통에 버려진 9·15 노사정 합의
당정 노동개혁법안·양대 지침 일방 추진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성과를 내려면 정부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9·15 노사정 합의에 대한 세부 평가는 차치하고, 합의가 파기된 데에는 당정의 실책이 컸다.

합의 다음날인 2015년 9월16일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 등 5대 노동개혁 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뿌리산업 파견 확대나 실업급여 수급 요건 강화, 휴일연장근로 가산수당 지급기준 상향 등이 담겼다. 파견법이나 기간제법 개정은 노사정 합의문에서 노사정이 실태조사를 거쳐 법안에 반영하기로 한 사안이었다.

노사정은 휴일근로시 가산수당 할증률을 합의문에 담지 못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라는 당시 법원 판결 흐름과 달리 통상임금의 8시간 이내 근무는 50%로, 8시간 초과근무는 100%로 한정하는 내용을 일방 추진했다.

정부는 쉬운 해고로 불리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를 담은 이른바 양대 지침을 이듬해 1월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놨다. 이 역시 노사정 합의문에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명시돼 있었다.

이 같은 흐름에 당시 한국노총은 반발했지만 당정은 핸들을 꺾지 않았다. 결국 한국노총은 2016년 1월 노사정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노사정 합의가 정부 정책 추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전락한 결과다.

정부 정책 들러리 된 사회적 대화의 말로
전문가들 “주요 의제 공론화 과정 거쳐야”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전문가들은 2015~2016년 흐름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다.

배규식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김영삼 정권 말기, 박근혜 정부 때 노사정이 합의한 것을 정부가 뒤집었는데 그걸 반복해선 안 된다”며 “정부가 (관철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합의하면 사회적 대화는 하나마나다. 현 정부도 나름 입장이 있고, 계획하는 과제가 있겠지만 그게 충분히 안 된다고 해도 노사정이 동의할 수 있는 정도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요 의제들이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 안에만 머물지 않기 위한 공론화 과정도 강조했다. 배 전 상임위원은 “우리의 사회적 대화는 너무 상층 중심으로, 지역에서는 어떻게 대화가 이뤄지는지도 알기 어렵다”며 “중요한 주제에 대해 토론회나 공정회를 자주 열고 공론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노사의 입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양보하고 조금씩 수위를 낮춰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득이 될 안을 찾아가야 한다”며 “이때 노사를 각각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달 6일 노사정 합의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성희 노동부 차관은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 해법을 모색하기로 한 때부터는 정부 입장을 너무 앞세우면 노사는 결국 다 정부 주도로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갖게 된다”며 “정부가 뭘 할 계획이라는 걸 앞세우는 게 도움은 안 된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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