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사정이 노동시간과 정년 의제를 두고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산업전환, 불공정 격차 해소, 노동시장 유연화·안정성, 노사관계 부문에서 구체적 사회적 대화 의제를 간추리기 위한 작업도 준비한다.

2개 의제별위원회 설치해 노동시간·정년 논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김문수)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본위원회를 열고 사회적 대화 의제와 논의방식 등을 심의·의결했다. 특별위원회 1개와 의제별위원회 2개를 구성하기로 했다.

의제별위원회로는 일·생활 균형위원회, 인구구조 변화 대응계속고용위원회를 뒀다. 일생활균형위는 노동시간을, 계속고용위는 정년 문제를 다룬다. 위원회 명칭을 두고 노사가 샅바싸움을 오래 가져갔을 정도로 첨예한 의제다.

일생활균형위는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성, 건강권 보호, 일하는 방식 개선 등을 논의한다. 노동시간과 관련해 노사 공방이 벌어지는 주요 무대다. 한국노총은 포괄임금제·특별연장근로·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와 같은 장시간 노동으로 유인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기조로 삼고 있는 정부와 재계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이상 노동이 가능한 갖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계속고용위는 정년연장 방안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중고령층 노동시장 참여 확대 방안, 청년·고령자 상생 고용 방안, 중고령자 전직·재취업 지원 확충 방안을 의제로 삼는다.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한국노총과 직무·성과급 도입을 전제로 한 재고용에 무게를 싣고 있는 정부·재계가 맞붙는다.

지속가능·미래세대특별위서 추가 대화 의제 발굴
파견업무 확대·쟁의행위 제한 등 ‘킬러 의제’ 포함할 듯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산업전환 △불공정 격차 해소 △유연안정성 및 노동시장 활력 제고 △대화와 타협의 노사관계 4개의 큰 주제를 논의한다. 다소 두루뭉술해 보이는 의제이지만 한국노총과 정부·재계의 진짜 싸움은 여기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노총이 강조해 온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과 플랫폼·프리랜서 등 취약계층 보호, 정부·재계가 주장하는 파견허용 업종 확대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사업장 점거 금지 등의 구체적 얘기가 여기에서 오갈 수 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특별위에서 다루는 4가지 의제는 굉장히 긴급하고 중요한 사안이지만 구체적인 원인과 해법은 (노사정이) 다르다”며 “우선 의제를 선정하는 데에서부터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특별위에서 논의를 진행하면서 구체적 의제를 뽑아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2014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설치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사정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아 각 단체 부대표급 위상의 인물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가동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상위 의제로 삼아 논의했지만 당시 정부의 목표는 저성과자 해고제 도입,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에 있었다는 평가다. 특위 논의 결과 2015년 9월15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합의문과 달리 정부가 이듬해 1월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을 발표했다. 결국 2년에 걸친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로 이어졌다.

이번에 설치할 특별위도 부대표급이 위원으로 참여할 것이 유력시된다. 여기서 구체화한 의제는 분과위·전문가위 등을 설치해 실무 논의를 이어 갈 것으로 점쳐진다.

이날 본위원회에 앞서 노사정은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 선언문을 도출했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큰 틀의 원칙을 담고, 노동시간·정년과 특별위 안건인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논의 방향을 풀어 설명해 놨다. 이를테면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는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와 유연성이 함께 조화되는 근로시간제도 전반의 개선방안을 강구한다”고 부연했다.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미래세대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지속가능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포괄하는 폭넓은 논의를 통해 과제를 마련한다”고 정했다.

특별위를 통해 추가 사회적 대화 의제를 지속해 발굴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노사정은 선언문에서 “급격한 환경변화와 구조적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기업 생산성과 근로조건이 조화롭게 향상되는 역동적이고 활력 있는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개선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필요한 추가 과제를 발굴한다”고 밝혔다.

특별위·의제별위 위원 위촉 절차 착수
경사노위 “2월 중 가동이 목표”

본위원회 인사말 순서에서는 사회적 대화에 나서는 노사정 대표자들의 기대와 속내가 엿보였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400만명에 달하는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 800만명으로 추정되는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공생의 한국 사회로 가는 길”이라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미래세대의 간절함, 중장년 노동자들의 절박함,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불안한 현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문수 위원장은 “이제 투쟁보다는 대화 위주의 리더십을 발휘해 한국노총이 국가위기 극복과 노동복지 증진을 주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은 “근로시간 운영의 유연성을 확대해 기업들이 업무량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합리적 제도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고령인령 활용에 기업부담을 줄이고 신규채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고용 중심의 계속고용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미래 시장과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에 따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노사정이 함께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사노위는 앞으로 특별위·의제별 위원회 가동을 위한 후속 작업에 들어간다. 특별위·의제별위 위원을 구성하기 위해 노사정 의견을 수렴한다. 2월 중에 각 위원회를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한편 경사노위는 기존 본위원회 위원 위촉 기간 만료 등에 따라 청년·비정규직 대표, 소상공인 사용자 대표, 공익위원 등 6명을 새로 위촉했다. 청년노동자 대표로는 한다스리 공공연맹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노조 위원장, 비정규 노동자 대표로는 박현호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 소장이 들어갔다. 소상공인 사용자 대표는 유기준 소상공인연합회 수석부회장이 위촉됐다.

공익위원은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권혜원 동덕여대 교수(경영학)·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17명으로 구성되는 본위원회는 노동자 4명, 사용자 5명, 공익위원 4명, 정부 4명 등 모두 17명으로 구성된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논의에 일절 대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대 노총은 문재인 정부 경사노위 가동 초기 비정규직·청년 위원 선정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연대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에는 한국노총이 위원 추천에서부터 의제 선정까지 다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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