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태 자동차산업과 노동분야 연구활동가

한국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필자에게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안타까운 존재였다. 대담한 연좌 파업으로 노동자들을 부속물로 종속시킨 컨베이어 시스템을 전복해 강력한 작업장 교섭력의 기반으로 만들고, 거대 기업 GM을 굴복시켜 첫 단체협약을 쟁취했던 UAW였다. 하지만 1947년 이후 계속된 일당 지배와 1979년 이후 크라이슬러 사태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산업의 쇠락에 따른 양보교섭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17년 터진 지도부 수뢰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움은 극에 달했다. ‘미국 자동차산업보다 자동차노조가 먼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구나.’

그러나 올해 UAW는 최초로 조합원 직선으로 선출된 새 지도부가 대담한 요구를 내걸고 사용자를 압도하는 투쟁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얻은 것보다 더 큰 성과를 쟁취하면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UAW는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한때 세계 노동운동의 희망으로 추앙받았던 한국 노조운동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로이터파 장기 집권의 종식과 새로운 지도부의 등장

설립 후 처음 십여 년 동안 UAW는 미국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노조 중 하나였지만, 1947년 대의원대회에서 로이터파가 모든 최고 지도부 자리를 차지한 후 권력과 이권을 무기로 조직을 장악하면서 일당 장기집권이 계속됐다.

1947년 월터 로이터 위원장이 결성한 집행간부회(Administration Caucus)는 지배 정당으로 기능했다. 1947년 이후 사실상 모든 집행위원과 대부분 지역 임원과 직원은 집행간부회 출신이었고, 집행간부회는 작업 현장의 가장 낮은 선출직까지 영향을 미쳤다. 집행간부회가 최고 임원을 선출하는 노조 대의원대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일당 지배가 계속됐다.

수십 년에 걸친 일당 독재와 회사와의 유착으로 노조는 작업 현장에서 관리자와 싸우는 조합원을 보호하지 않는 조직이 됐고, 대기업에 대항하는 힘도 잃었다. 집행간부회의 일당 독재를 끝내지 않고서는 UAW의 민주화도, 부활도 불가능했다.

법무부가 UAW 부패를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오랫동안 활동해 온 몇몇 활동가들이 그 기회를 포착했다. 이들은 2019년 개혁파 조직인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노동자의 단결(Unite All Workers for Democracy·UAWD)’을 결성하고, 최고 임원들을 조합원 직선제로 선출하도록 규약을 바꾸는 활동을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2021년 12월 실시된 조합원 총투표에서 63.6%의 찬성으로 임원 선출방식이 조합원 직선제로 변경됐다.

UAW의 개혁가들은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노조주의(social justice unionism)’를 내세우며 투쟁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합원 중심의 의사결정을 강화해야 한다며 민주적인 노조를 강조했다. 지도자가 전투적 파업과 새로운 조직화를 지지하는 조합원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도부 선거에 적극 참여했다.

첫 직선제 선거에서 신생 개혁조직인 UAWD가 집행간부회를 누르고 승리했다. UAWD가 지지한 숀 페인 위원장을 비롯해 마가렛 목 사무총장, 두 명의 부위원장 등을 포함해 집행위원회 절반을 차지했다. 드디어 집행간부회의 장기집권이 끝난 것이다.

지난 9월26일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피켓시위를 벌였다. <UAW>
지난 9월26일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피켓시위를 벌였다.

위원장 선거는 결선 투표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쳤지만, 조합원 투표율은 14%에 불과했다. 노조에 무관심하거나 회의적이거나 심지어 절망하고 있던 조합원들을 설득해 노조를 되살리는 것은 새로운 지도부의 몫이었다.

새로운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요구에 응답해 교섭 목표를 대담하게 설정하고 투명성과 민주주의로 조합원을 다시 운전석에 앉혔으며, 창의적인 쟁의 전술로 사용자를 압도해 큰 성과를 쟁취함으로써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대담한 교섭 목표, 투명성과 민주주의

스텔란티스, 포드, GM ‘빅3’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북미에서 총 2천50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올해 상반기 수익만 총 210억달러에 달한다. 2019년 이후 빅 3 CEO의 보수는 평균 40% 증가했으며, GM의 CEO 메리 바라는 2022년에만 2천900만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UAW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 빅3 차량 가격은 34% 올랐지만, 생산직 노동자의 최고 임금은 6% 오르는 데 그쳤다.

한편으로는 물가 상승으로 생활고가 가중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영 실적이 호전되고,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 시장 교섭력이 강화되면서 정당한 보상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가 커져 왔다. 그러나 전 지도부는 이를 외면했다. 조합원들은 공정한 계약을 위해 회사는 물론 노조를 상대로도 싸워야 했다.

새로 선출된 개혁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요구에 부응해 임금 40% 인상, 임금 및 복리후생 등급제(tier) 폐지, 생활비 조정(Cost Of Living Adjustment, COLA) 복원 등 대담한 요구 사항을 제시했고, 이는 조합원들의 기대와 투쟁력을 높였다.

숀 페인 위원장은 잠정 합의 전에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던 UAW의 관행을 깨고 매주 교섭 상황을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방송했다. 평조합원 활동가들에게 각자의 사업장에서 조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노조의 새 지도부는 협상에 대해 투명하고 전투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조합원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연좌 파업 대신 연립(stand up) 파업

U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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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자동차회사 사용자들은 기록적인 수익에도 불구하고 대량해고와 공장폐쇄 위협으로 노동자 생계와 지역사회를 볼모로 삼는 기존 전략에 충실했다. UAW는 1937년 연좌 파업(sit-down strike)과 대비되는, 창의적인 스탠드업(stand up) 파업(‘일하지 말고 일어서서 나가라’)으로 사용자를 압도했다. 스탠드업 파업은 모든 사업장이 아니라 선택한 사업장에서만 진행하는 파업으로, 사업장을 점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 밖으로 나가는 파업이다. 그리고 교섭 진행 상황에 따라 파업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전술로 노조는 최대의 영향력과 유연성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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