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양그룹 계열사 대양판지에서는 이미 2년 전 사측 주도로 설립된 노조에 대한 고용노동부 설립신고 직권취소에 이어 부당노동행위 ‘가해자’들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금속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기업노조 가입을 종용하는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복수노조 설립으로 금속노조 교섭권도 여전히 제약을 받고 있다. <2023년 11월14일자 4면 “‘금속노조 가입하지 마라’” 면접서 지시, 대양판지 ‘또’ 부당노동행위“ 기사 참조>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사측이 이른바 ‘페이퍼노조’나 ‘친사용자노조’를 설립해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제한하는 문제는 대양판지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사용자가 유불리에 따라 교섭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하에서는 부당노동행위가 근절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설립 취소돼도 새 노조 세워 교섭권 약화

1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대전충북지부 대양판지지회는 사측과 2022년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탓에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2023년 교섭은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지난 2월22일부터 이어진 2022년 임협은 7월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지만 여전히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전 교섭에서의 사측 태도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는 양상이다. 노동부 설립신고 직권취소 이후 지회는 2021년 5월 비로소 사측과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기업노조와 먼저 타결한 협상결과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했다. 2020·2021년 임단협 교섭 회의록을 보면 사측은 “기업노조와 타결한 임금인상률 이상의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상견례 이후 1년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69차 교섭 끝에 지회는 협상을 종료할 수 있었다.

윤상한 대양판지지회장(장성공장)은 “2022 임협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지회에서 여러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사측은 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하지도 않고 있다”며 “지난 5월 기업노조가 합의한 내용이 가이드라인처럼 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회사 주도로 설립된 노조(3노조)에 대한 설립신고 직권취소가 이뤄지기 직전 대양판지에는 또 다른 기업노조(4노조)가 만들어졌다. 이후 지회는 3노조 설립 취소에 따라 3노조가 체결한 2020년 단협도 무효이므로 사측에 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속노조는 노동부에 관련해 질의를 보냈는데, 노동부는 3노조의 교섭대표노조 지위와 단협 효력이 모두 상실된다고 판단하면서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전반에 중대한 하자가 존재해 절차를 처음부터 새로이 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회는 2020년 당시 창구단일화에 참여한 3개 노조 가운데 2개 노조가 자진해산(1노조) 혹은 설립취소(3노조)된 만큼 지회의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인정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훈 대양판지지회장(청주공장)은 “당시 지회가 기업노조보다 조합원수가 더 많았는데 사측은 개별교섭을 택했다”며 “2020년 빼앗긴 권리를 구제할 방법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노조 협상 결과가 가이드라인
빼앗긴 권리 ‘온전한 회복’은 요원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라 ‘어용노조’로 인한 피해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은 대양판지지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으로 알려진 유성기업과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합병)에서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과 설립무효 법원 판결 이후에도 온전한 교섭권이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의 경우 대양판지지회처럼 사측이 기업노조와의 개별교섭을 진행해 교섭권을 제약받는 상황이다. 유성기업지회 설명을 종합하면 2021년 1월, 사측과 10년치 임협(2011~2020)과 2020년 단협을 체결한 뒤 2021~2022년 임금·단체협상은 개별교섭으로 진행됐다. 조합원수를 따졌을 때 지회가 기업노조보다 인원이 많아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는데도 사측이 개별교섭을 택하고, 기업노조와 먼저 타결한 협상 결과를 사실상 가이드라인처럼 제시해 이를 넘어서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김성민 유성기업영동지회장은 “지난해 한 달가량 부분파업을 통해 기업노조가 타결한 것 이상을 얻어냈고 그 성과는 전 직원에게 돌아가도록 했지만, 파업에 따른 임금손실분과 협약상 금전적 이익에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길도 요원하다.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지난해 4월 삼성물산측과 2021년 임단협을 체결했다. 지회는 과거 페이퍼노조 설립으로 인해 박탈된 10년간 교섭권도 회복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6월 서울고법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노조 활동기간에 응하지 않은 금속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사측이 응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사측 상고로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된 상태다.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장은 “이번 판결이 교섭권을 박탈한 기간 동안 교섭을 소급해서 이행해야 한다는 취지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실제 교섭을 시작했을 때 장기화에 따르는 부담은 지회의 몫”이라며 “사후적 판결로는 빼앗겼던 권리를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당노동행위에 본질적으로 취약, 노동 3권 침해”

2011년 복수노조 설립 허용으로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한 문제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용자에게 개별교섭을 택할지, 교섭대표노조를 정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제도라고 현장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9조의2(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르면 하나의 사업장에서 노조가 2개 이상인 경우 교섭대표노조를 정하게 되는데, 사용자 동의가 있으면 개별교섭이 가능하다. 때문에 사용자는 유불리에 따라 ‘입맛에 맞지 않는’ 노조가 다수노조가 될 경우 개별교섭을 택하고, ‘입맛에 맞는’ 노조가 다수노조가 되면 창구단일화를 통해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는 식으로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

윤수빈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호남사무소)는 “노조가 교섭할 수 있는 권리는 노조가 작든 크든 똑같이 가져야 하는 헌법상 기본권인데, 창구단일화는 교섭대표노조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승자독식제도라는 점도 문제”라며 “사용자 입장에서는 반민주적 노조를 세우고 조합원수가 1명만 많아도 소수노조의 교섭은 물론 노조활동을 사실상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당노동행위에 본질적으로 취약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유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쳐 쓸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러한 판단은 제도 폐기 요구로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2020년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교섭하려면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도록 강제한 노조법 29조의2가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같은해 4월에는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2012년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는 합헌으로 결정된 바 있다. 2020년 9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현재 ‘대안반영 폐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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