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한국노총(위원장 김동명)이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한 지 5개월 만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복귀한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포함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노사문제에 대한 노사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노총은 13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복귀에 대한 대통령실의 요청으로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동부 근로시간 제도 설문결과 발표하자
대통령실 “일방 추진할 수 없어, 한국노총과 논의”

한국노총의 기류 변화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부터 감지됐다. 김동명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30년간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온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하고, 노동정책의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존재를 인정하라”며 “이것 말고는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다. 이제, 선택은 정부의 몫”이라고 공을 정부에 넘겼다.

대통령실은 이틀 만에 답했다. 이날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김동명 위원장 요구와 연결시켰다. 노동부는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노사정 대화를 통해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한국노총 참여를 요청했다. 그러자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노총은 오랜 시간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를 책임져 왔으며,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근로시간 제도 문제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순 없다. 근로시간 제도는 물론 노동시간 이중구조, 저출산 고령화 등 중요한 노동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 단절은 노사정 모두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며 “한국노총이 조속히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 근로시간 등 여러 현안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곧바로 사회적 대화 복귀를 발표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저출생·고령사회 문제, 중동전쟁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저성장 쇼크의 장기화 등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 경제 위기 등에 따른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양 사태 이후 5개월 만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5월 경찰이 포스코 하청노동자의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7미터 높이 철탑에 오른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무력진압하자, 6월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사회적 대화 중단을 결의했다.

의제 선정부터 난항 겪을 듯

한국노총의 사회적대화 복귀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포함한 정부의 ‘노동개혁’ 향방이 주목된다.

노동부는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주 52시간제가 상당 부분 정착됐으나 일부 업종과 직종은 여전히 애로를 겪고 있다”고 설문조사 결과를 해석했다. 이어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방안을 노사와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 단위 연장근로 한도 제한 방식인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의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주 52시간 상한제를 허물 것이라는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는 기존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처럼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도 포함된다.

조만간 노사정이 한자리에 앉을 전망이지만 논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성희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의견을 보면 100%가 지지하는 안은 없다”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하라는 노사와 국민들의 의견이라고 본다. 경사노위에 한국노총도 참여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첫 신호탄이었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놓고 노사정 논의를 하자는 것인데, 연장근로를 현행보다 늘리는 형태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노동계로서 부담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이같은 결정은 내부 반발에도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한 산별 관계자는 “중집에서 의결한 사항은 탈퇴와 관련한 사항을 위원장에 위임하는 것이지 복귀에 관련한 사항이 아니었다”며 “이런 식으로 복귀를 결정하는 것은 한국노총 조합원을 기망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절차적으로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일단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고 의제 세팅은 새로 요구할 것”이라며 “오늘은 사회적 대화에 복귀한다는 것만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노동부 설문조사 결과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답정너 설문에 시간과 국민혈세 낭비”라며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가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국민을 우롱하는 식의 설문조사”라고 비판했다.

업종별·직종별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대화하기 전 방향부터 정한 정부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전 국민 설문조사는 노동자 3천839명, 사업주 976명, 만 19세 이상 국민 1천215명 등 총 6천3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면접원이 사업장에 방문해 대면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6월26일부터 8월31일까지 진행됐다.

이번 설문조사는 올해 3월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거센 여론 반발에 부딪히자 국민여론을 수렴한다는 이유로 실시했다. 정부는 당시 주 단위로 제한하던 연장근로 한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안을 발표했다. 주 최장 69시간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동부는 “주 52시간제에 대해 국민의 48.2%가 ‘장시간 근로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한 반면, 54.9%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이 곤란하다’고 응답했다”며 업종별·직종별 근로시간 관리단위 변경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노총은 평소 강온 양면전략을 쓰는데, 이 시기에 타당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의 설문조사 결과가 논의할 만한 근거를 갖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입장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근로시간 제도 관련 사안에서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주어진 의제를 방어하는 사회적 대화라면 큰 의미가 없다”며 “그것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사노위는 이날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 결정을 환영한다”며 “한국노총이 근로시간 등 시급한 노동현안들을 주도적으로 적극 논의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노동부도 “그간 사회적 대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노동계 대표 조직인 한국노총의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미래세대의 좋은 일자리를 위해 근로시간 제도 개편,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계속 고용 등 산적한 노동 현안에 노사정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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