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13일 드디어(?)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개편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 발표한 일명 ‘주 최대 69시간 노동제’로 불리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놨다 호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서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수행한 조사다. 개편안은 주당 12시간 한도의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확대해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대국민 조사 결과의 핵심은 “주 52시간제(법정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가 상당 부분 정착되었지만, 일부 업종과 직종에서는 여전히 애로를 겪고 있으며,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노사와 일반 국민 모두 동의한다는 응답이 비동의한다는 응답보다 크게 많았다”는 것이다. 국민의 의견을 전폭 수용하겠다며 주 52시간 상한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국한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대상 업종·직종 등 세부방안은 후속 실태조사와 노사정 공감대를 통해 구체화하겠다는 입장 또한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에 동의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 개편안 발표 당시 강경했던 여론을 생각하면 다소 의아한 지점이다. 어떻게 물었는지, 면접자의 태도나 질문 방식은 어땠는지 다양한 요인에 따라 설문조사의 응답은 큰 변이를 보이기에 일단 공개된 설문지에서 해당 설문 문항을 찾아봤다.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 이내)을 초과해 근무하는 경우 근로자 동의(노조, 근로자대표 등)를 통해 평소보다 바쁠 때 더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 적게 일해 연장 근로시간을 주 평균 12시간 이하로 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주 최대 근로시간 제한, 휴식권 부여 등 근로자 건강권 보장 전제)”라고 기술된 문항을 보니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가 된다. 노동자들이 기를 쓰고 개편안에 반대했던 이유는 단기간이라도 과도한 집중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또 불규칙한 업무스케줄이 일상화되면 시간 결정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더 빼앗기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 최대 근로시간을 몇 시간으로 제한할 것인지, 근로자 건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으면서 마치 건강에는 무리가 없는 선에서 개편하는 것처럼, ‘근로자의 동의’를 강조해 마치 노동자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질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물었는데도 근로자, 사업주, 국민 응답자의 대략 30% 정도가 비동의로 응답했다니 이 정도면 정말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에 우리 국민은 여전히 의구심이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노동부는 일부 업종·직종의 노·사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필요한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로 한정하지 않고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 근로시간 규정으로 인한 애로사항 경험이 있다는 사업주는 전체적으로는 14.5%에 불과했다. 업종별로 보면 사업시설(32.6%)과 제조업(27.6%)에서는 높아 업종별 편차가 컸다는 것이다. 제조업의 경우 애로사항에 추가인력 채용, 수주(주문) 포기, 포괄임금 활용의 순으로 대응한다고 응답했다. 추가인력 채용은 노동부도 예전부터 강조한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 효과 아닌가. 그리고 노동자가 주당 52시간 이상 일해야만, 즉 과로해야만 받을 수 있는 주문이라면 마땅히 포기하는 게 맞지 않나. 사실 주 40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인데 52시간은 많다. 대부분 업종에서 문제가 크지 않지만 일부 업종에서 30%가량 사업주가 현 노동시간 제도로 애로사항을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면 노동시간제도를 바꿔 더 불규칙하게 일할 것이 아니라 해당 업종에서 인력충원이 쉽게 이뤄지도록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긴급한 발주와 같은 무리한 관행이 없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여러 언론에서 벌써 주 52시간제를 일부 업종·직종에서 완화하며 최대 주당 60시간 이내 한도로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 기사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60시간 이상은 무리’ 언급을 의식했는지 특정 주의 최대 근로시간으로 적절한 시간을 물어본 문항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을 60시간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주40시간 노동이 표준노동시간이 된 지 100년이 넘었고 우리나라의 법정 노동시간이 된 지도 20년이다. 최대 69시간이니, 60시간이니 할 것 없이 현행 주 52시간을 앞으로 더 줄여 갈 의지가 필요하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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