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우리 국민은 과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반대보다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을까?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런데 이와 상반되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와 관심이 모아진다. 노동부 설문조사 표본(3천839명)보다 1천250명이 많은 5천89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에서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반대 비율이 무려 80%에 달했다. 이와 별개로 노동부 설문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부가 ‘주 52시간 상한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적용 예외 업종에 관한 질문을 ‘복수응답’으로 선택하도록 열어놔 설문 결과가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잇따라 나오고 있다.

10명 중 8명 “집중노동 해도 노동시간 안 줄 것”

4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한 대규모 인식조사’에 따르면 ‘노동시간 유연화’에 관해 부정적인 인식이 80%에 달했다. 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가 올해 8월 실시한 것으로,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동아대의 ‘한국 일·수면·건강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만 20~69세 임금노동자 5천89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온라인 자기기입 방식으로 이뤄졌다. 직종은 △관리직·전문가·사무직 △판매·서비스 △숙련·반숙련·미숙련·농림어업으로 나눴다.

연구소는 ‘노동시간 개편안 인식’과 관련한 질문을 △업무량이 많은 주에 집중노동을 했더라도 다른 주에 그만큼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을 우려가 있다 △집중노동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 △연장노동수당 등이 감소해 근로자의 임금이 줄어들 것 등 7개로 세분화했다. 그 결과 ‘집중노동을 했더라도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률이 81.2%(매우 동의 30.3%·대체로 동의 50.9%)로 가장 많았다. 남성(78.3%)·여성(84.5%) 모두 응답률이 높았고, 만 60세 이하 전 연령대에서 80% 이상이 근로시간 유연화에 반대했다.

특히 주당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부정적인 견해(40시간 미만 80.4%·40시간 81.3%·41시간 이상 81.4%·52시간 이상 81.9%)를 내비쳤다. ‘근로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답변한 응답률(76.5%)이 뒤를 이었다. 월 소득이 낮을수록 노동시간 유연화에 반대했고, 전 연령대와 성별에서 골고루 응답률이 높았다. ‘연장노동수당 등이 감소해 임금이 줄어들 것’이란 응답률도 70.4%에 달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 확대를 우려하는 의견도 66.6%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부정 비율 70~80% 육박

반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긍정적인 의견은 절반 이하에 그쳤다. ‘경기변동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위해 불가피하다’에 찬성하는 답변은 54.1%, ‘필요할 때 몰아서 일할 수 있어 업무 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답변은 38%, ‘연장근로를 몰아서 쓰고 이를 저축해 장기휴가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은 37.5%로 조사됐다. 소득이 낮을수록, 남성보다 여성이 노동시간 유연화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연령별로는 사회활동이 활발한 만 30~49세의 노동자들이 ‘장기휴가 사용’에 가장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는 집중·장시간 노동이 건강권과 노동시간 선택권 침해로 이어지는 상황을 드러낸다. 연구소는 “여성·저소득층·육체노동자·작은 사업장일수록 취약성이 더 컸다”며 “조사 참여자가 사무직이 많고, 소득 수준이 높은 편이라 전체 노동자로 넓히면 결과는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한 달간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일한 노동자 비율이 61.2%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2시간 이상인 경우도 19.8%에 달했다. 이번 조사의 참여 표본(노동자 5천89명)은 노동부 조사에 응답한 노동자(3천839명)보다 많다.

‘건강권·선택권 보장’ 전제한 노동부 설문
연장근로 단위 확대 ‘찬성’ 답변 유도할 수도

이러한 결과는 노동부 설문조사와 완전히 상반된다. 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방안에 동의하는 비율이 비동의 응답보다 크게 많았다고 발표했다. 노동부 조사에서는 46.4%(노 41.4%·사 38.2%)가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자고 응답한 비율은 노동자와 사용자 각각 43%, 47.5%로 나왔다. 이를 토대로 노동부는 “다양한 업종·직종별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인식과 일부 업종·직종에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질문 자체에 ‘유도적’ 성격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노동부는 설문 문항 12번에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 이내)을 초과해 근무하는 경우 근로자 동의(노조, 근로자대표 등)를 통해 평소보다 바쁠 때 더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 적게 일해 연장근로시간을 주 평균 12시간 이하로 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주 최대 근로시간 제한·휴식권 부여 등 근로자 건강권 보장’을 전제로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전문가들은 노동부 조사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노동시간 제한과 건강권 보장 등을 전제로 근로자 동의를 강조해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한 것처럼 질문이 구성됐다”며 “국민들이 노동시간 개편을 반대하는 큰 이유가 건강권 보장과 근로시간 선택권인데 이 부분이 해결된 것처럼 왜곡된 답변을 유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심층면접(FGI) 방식으로 실시돼 조사원에 따라 설문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한 여론조사기관 대표 A씨는 “참여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면 문항을 촘촘히 구성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쪽에 유리한 해석이 들어가게 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임금근로시간정책과 관계자는 “대면조사 방식이라 최대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들어간 표현”이라며 “답변을 유도하거나 편향적인 방식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52시간제 예외’ 업종 복수응답으로 응답률 400% 넘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가 필요한 업종을 질문이 ‘복수응답’으로 진행된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노동부 조사에서 참여자들은 △제조업(노 55.3%·사 56.4%) △건설업(노 28.7%·사 25.7%) 분야에서 연장근로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17개 업종이 보기 항목에 들어갔다. 그런데 복수응답이다 보니 보기마다 응답률이 달랐다. 실제 복수응답을 모두 합치면 응답률은 △제조업 247.8% △건설업 251.7% △수도·하수 및 폐기물 처리·원료 재생업 405.8% 등으로 나타났다. 한 명이 여러 항목을 선택한 결과다. 박영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노동데이터센터장은 “본인 업종도 아닌 다른 업종을 복수로 선택하게끔 문항을 설계해 응답 합계 수치가 들쭉날쭉하다”며 “응답 개수만큼의 합계율이 나와야 하는데, 사례수가 얼마 되지 않은 업종에서 복수응답률이 높게 나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복수응답 방식의 설문 자체에 문제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여론조사기관 대표 A씨는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업종을 복수로 선택하게 한 것은 적절하다고 보인다”면서도 “업종 구분과 응답 개수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은 설문의 한계”라고 봤다. 노동부 관계자는 “항목을 복수로 선택하도록 했다고 해서 과다 대표되지 않는다”며 “표본이 수천 명인데, 한 명이 여러 항목을 선택한 것으로 전체 통계 수치가 왜곡될 차원은 아니다. 다른 문항도 성격에 따라 복수응답 방식을 택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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