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표 국회의장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임세웅 기자>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고, 사용자 범위를 넓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무사통과했다. 정부가 대통령 거부권 요청을 시사하면서 정국이 급속하게 냉각할 전망이다.

이동관·검사 살리려 필리버스터 포기한 여당

국회는 9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노조법 개정안을 본회의 안건으로 올리는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상정했다. 재석 266명 중 찬성 167명, 반대 97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이후 안건으로 올라온 노조법 개정안 표결이 시작됐다. 재석 174명 중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통과시켰다. 당초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예고한 국민의힘이 표결장을 빠져나가면서 빠르게 처리됐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포기한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 표결을 피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이날 이 방통위원장,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방통위원장은 언론 검열 행위로 방송법을 위반하고 방송심의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탄핵안이 발의됐다. 손 검사는 고발 사주 의혹이 있고, 이 검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맡고 있다.

탄핵안은 본회의가 시작하며 보고됐다.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처리해야 한다.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탄핵안은 자동 폐기된다. 필리버스터를 하면 본회의가 유지되고, 24시간이 지나기 때문에 표결을 거쳐야 한다. 탄핵안 가결 정족수는 150명이기에 야당 단독으로도 가결할 수 있다. 여당은 노조법과 방송법을 포기하는 대신 본회의를 종료시켜 탄핵을 우선 막은 셈이다.

다만 탄핵소추안을 재발의하면 다음 본회의에서 표결이 가능하다. 국회법은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 발의하거나 제출할 수 없도록 했지만, 탄핵안이 표결을 거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0일 오후 6시까지 여당과 국회의장을 설득해 본회의를 열고, 본회의가 열리지 않으면 탄핵소추안을 철회할 방침이다. 여야는 이달 23일과 30일, 12월1일과 9일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한 상태다. 본회의가 합의대로 열린다면 30일 탄핵안이 보고되고 12월1일 본회의에서 표결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노조법 개정안 표결을 하지 않고 본회의장을 빠져나오며 기자들에게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도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열린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그렇게 나쁜 법이라고 지칭하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친 것은 유감스럽다”며 “결국 방통위원장을 통한 언론장악이 본속셈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쟁점 법안이던 방송 3법도 노조법 개정안과 같은 절차를 거쳐 통과했다. 방송 3법 개정안은 KBS와 EBS 이사회,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숫자를 21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와 시청자위원회 등 외부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야당은 방송을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방송 3법 통과를 주장해 왔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 “헌법에서 규정한 책임 다할 것”

이날 통과한 법안들에 대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법 야당 주도로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사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정부 인사들도 거부권을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법 통과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노조법을 집행하는 장관으로서 법리상 문제, 현장 노사관계의 부정적 영향 등 산업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전체 국민과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저해할 것이 자명한 개정안을 외면할 수 없다”며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거부권을 건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안 법안은 국회로 돌아오고,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이날 국회 본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를 한 적 없다. (민주당) 선거 운동에 방해돼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 3법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여당이던 시절에는 하지 않다가 이제 추진한다. 논리가 맞지 않는 법안”이라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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