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비정규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유일하게 개선할 수 있는 길은 노동 3권 행사예요. 진짜 사장과 교섭이 안 되면서 노동 3권이 철저히 무력화되고 파괴됐던 것이죠.”

김선영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소식을 9일 오후 국회 앞에서 들었다. 반가움이 앞서면서도 김 지회장은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하겠다고 하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노동자는 계속 싸울 것”이라고 다시 투쟁을 외쳤다.

이날은 노조 지회가 원청인 현대차와의 교섭을 요구하며 서울 강남구 오토웨이타워 앞 천막농성장을 차린 지 556일, 국회 앞 농성을 시작한 지 274일째다.

노조법 개정안의 다른 이름인 ‘노란봉투법’의 기원이 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있은 지는 14년 만이다. 2014년 법원이 정리해고에 반대해 파업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시민은 노란색 봉투에 성금을 모아 전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노조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

현대차 판매노동자, 노조설립 후 6년째 교섭 못 해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용자 범위 확대’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

하청·특수고용 노동자가 실질적 권한을 가진 원청 사용자와 교섭 자리에 마주 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법이 시행되면 택배노동자들도 원청과 ‘사회적 합의’가 아닌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는 2017년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수수료 체계를 개선하고자 노조를 설립했지만, 노동자의 과로사가 이어지던 2021년에야 원청을 사회적 대화의 장으로 불러낼 수 있었다. 사회적 여론으로 압박해 원청을 불러냈지만 사회적 합의는 노사가 체결하는 단체협약과 같은 구속력이 없어 약속을 이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1월 CJ대한통운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하고, CJ대한통운 사측에 택배노조와의 교섭에 나서라고 했다. 하지만 원청은 “당사와 계약관계가 없는 택배기사들과의 사이에 단협을 체결할 수 없다”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극단의 노사 갈등, 거액의 손해배상
원청의 대화 거부에서 시작

하청·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노조법 개정안 통과에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박탈됐던 하청노동자의 노동 3권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라며 “실제 사용자가 뒤로 숨으면서 교섭이나 파업이 불법화되고, 하청노동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되는 상황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8월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조선하청지회장과 유최안 부지회장, 이김춘택 사무장 등 5명의 조합원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자들이 지난해에 옥포조선소 1도크에 건조 중인 선박 바닥에 1평 남짓한 철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두는 쟁의행위를 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시위의 발단은 원청의 대화 거부였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는 조선업 불황기 삭감된 임금의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지만 기성금을 올려 줄 권한이 있는 원청은 대화를 거부했다.

정리해고 철회 파업도 합법된다

근로조건 결정이 아닌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으로 노동쟁의의 개념을 확대한 것도 주목된다. 현행법에서는 단협 불이행이나 부당노동행위 구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면서 파업하면 불법으로 간주되는데, 노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달라진다. 1996년 YS정부의 ‘노조법 날치기 통과’ 이후 사라졌던 권리분쟁이 쟁의행위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민영화나 정리해고 등 권리분쟁에 대한 이유로 파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교섭을 통해 노사관계를 건강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노동자 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측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 권한을 원천 봉쇄한 것은 아니지만 “손해배상 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할 수 있게 한 것도 진전이라는 평가다. 윤 활동가는 “쌍용차 사례를 보면 사측은 2009년 8월 투입된 헬기와 기중기 파손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A 간부에 대한 책임을 물었는데, A 간부는 그해 6월 구속돼 현장에 없었다”며 “공동정범이라며 조합원 모두에게 책임을 지웠던 부진정연대책임을 없애 인과성을 면밀히 따져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측이 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노조 와해 시나리오에 활용했던 것을 감안하면 진척”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안전보건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권두섭 변호사는 “위험작업이 외주화돼 현장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 상당수는 하청노동자”라며 “시설에 대한 권한을 가진 원청과 하청노동자 교섭이 이뤄지면 중대재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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