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법무부가 조선산업 인력공급을 원활히 하겠다며 확대한 E-7-3 비자(일반기능인력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약속한 입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취업사기라고 비판했다.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은주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한 국가에서 올해 상반기 입국한 이주노동자 A씨는 본국에서 계약 당시 월 통상임금 270만원을 받고, 연장·야간·휴일근로시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지급받는 내용의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또 다른 노동자 B씨도 월 노동시간 209시간을 기준으로 기본급 191만4천440원과 고정수당 78만5천560원 등 270만원을 받는 내용의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서에는 “위 금액을 보장하며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수당지급”이라고 써 있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 들어와서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계약서에 서명을 강요받았다. 기본급 201만580원(시급 9천620원×209시간)에 월고정수당 37만4천460원, 연차수당 7만6천960원을 더해 월평균 임금 246만2천원을 받는 계약이다. 그나마도 고정수당 숙박비와 식사비 등 명목으로 고스란히 반납하는 구조다.

조선업 최근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 E-7-3 비자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최근 조선소에 취업한 이주노동자들 다수가 이런 이중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제시 비정규직노동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이중계약과 관련한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이 많은데 8시간 270만원 수준의 계약을 맺고 해외의 전문인력이라며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실제로는 포괄임금제 방식으로 잔업과 특근을 다 해서 270만원대를 맞춰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계약은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구체적인 기망 행위가 있었던 만큼 사기죄에 해당한다”며 “이주노동자를 뽑는 국내 업체들이 송출 당시의 계약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할 수 있겠지만 비자발급 등을 위해 서류를 제출하는 주체는 해당 업체이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입국 뒤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사실상 종속됐기 때문에 송출 당시와 다른 근로계약은 강요에 의한 계약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임금체불 같은 소송도 가능하다.

국가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E-7-3 비자의 구조상 법무부가 비자 발급을 비롯한 관리를 맡고 있고, 송출 당시의 계약서도 제출받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업체가 법무부가 정한 기준을 어기고, 사실상의 허위 계약서를 제출하는 등 행위를 감독하지 않는 것은 행정부작위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최 변호사는 “이주노동자는 사업주가 아니라 국가, 한국 정부를 믿고 신뢰해 입국하는 것이고 한국 정부가 정한 기준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라며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법무부가 비자 취소를 비롯한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가 된 E-7-3 비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도로 지난해 4월부터 조선소 인력공급을 확대한 비자다. 이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에게는 규정상 지난해 국민총소득(GNI)의 80%를 줘야 한다. 단 중소·벤처·비수도권 중견기업은 GNI의 70%를 줘도 된다. 조선소 하청업체를 겨냥한 셈이다.

금속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E-7-3 비자 이주노동자수는 지난해 1천17명이었고 올해 8월에는 5천470명으로 5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4천921명에서 7천648명으로 2천500명 남짓 증가했다. 최근 조선소에 유입된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은 E-7-3 비자를 받은 셈이다.

송출·입 관계자 “구인업체들 연장근로 없이 270만원 불가능하다 해”

그러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E9 비자는 고용노동부가 주관해 관리하고 있지만 E-7-3 비자는 법무부 소관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E-7-3 비자는 우리부 소관이 아니다”며 “E-7-3 비자 입국 이주노동자를 채용한 사업장 목록도 법무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감독을 할 자료도 없다는 이야기다.

노동부 통영지청 관계자는 “관련한 신고가 들어와도 노동부는 이주노동자와 국내업체 간 근로계약이 우리 법제에 비춰 문제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송출 당시와 입국 뒤 계약이 달라진 점에 대한 문제제기는 해당 비자를 관할하는 부처가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은 국내 송입업체쪽에서도 나온다. 비자발급을 위한 행정업무와 송입업무를 함께 진행하는 김아무개 행정사는 “비자발급 이외에 계약 실질 등에 대해 법무부가 관리하는 게 없다”며 “해당 부서원수도 적고, 애초에 입국한 이주노동자 규모가 법무부에서 관리를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법무부에 E-7-3 이주노동자 이중계약 관련 질의를 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김 행정사는 “구인을 하는 조선 하청업체를 만나 보면 모두 연장근로 없이 270만원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설명했다. 최소 270만원을 주겠다는 입국 전 약속은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E-7-3 비자 관련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부당해고 문제도 있다. 지난 3월 E-7-3 비자로 입국해 S중공업에 취업한 이주노동자 2명은 6개월 수습기간이 끝난 9월께 자진퇴사 방식으로 해고됐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S중공업은 이들의 업무능력을 문제 삼았는데, 업무능력에 따른 해고면 입증책임이 사용자쪽에 있어 이들에게 퇴직동의서를 강제로 받았다”며 “이 가운데 1명은 해고 당일 출국을 시켰는데, E-7-3 비자는 해고나 퇴직시 바로 출국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질적인 브로커 문제도 있다. 이들은 송출·입 과정에 개입해 수수료를 챙긴다. E-7-3 비자 기준 브로커 수수료는 800만~1천200만원 정도다. 이 정도 수수료를 내고 한국에 들어와도 이중계약이나 부당해고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부산외국인근로자센터 관계자는 “최근에도 한국 입국을 위해 8천 달러(1천만원 상당)를 브로커에게 건네기로 하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이중계약에 시달려 브로커와 갈등을 빚은 사례도 있다”며 “5천달러를 선지급하고 한국에 들어와 나머지 3천 달러를 월급에서 공제하기로 했는데 송출 당시 계약과 달라 3천 달러를 줄 수 없다고 버티니 브로커쪽에서 비자 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E-7-3 비자 관리를 노동부로 이관해 고용허가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은주 의원실 관계자는 “대거 E-7-3 비자를 발급해 놓고 관리·감독에 법무부가 손을 놓고 있다”며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주도 정책으로 환원해 노동부가 관리를 맡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어고은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