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모내기를 마친 여름 논에 벼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했던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 농부. 다른 논 벼보다 키가 작은 것 같아 수를 냈다. 벼를 잡아당겨 키를 높인 것. 흡족해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다음 날 뿌리가 뜬 벼는 모조리 말라죽었다. “급하게 서두르다 일을 망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발묘조장(拔苗助長)’의 유래다. 나쁜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는 ‘조장’도 여기서 나왔다.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력을 도입하겠다고 정부가 추진해 온 일을 보면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빠르게 대규모 인력을 들여오려던 정부는 지난 4월 특정활동(E-7)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고,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대신 현지 송출업체가 직접 인력을 추천하게 했다. 그 결과 지난 7월23일부터 9월15일까지 두 달도 안 돼 베트남·미얀마·태국·인도네시아에서 기량검증에 2천300명이 몰렸다. 이 중 1천898명이 기량검증을 통과했다. 그런데 가장 많은 인력을 차지하는 베트남 용접공 1천123명 입국에 문제가 생기면서 연말까지 계획된 인력 공급에 차질을 겪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1일 <매일노동뉴스>가 조선업 노동자 E-7 비자 발급을 둘러싼 논란과 문제를 살폈다.

“코트라 주관하던 업무,
준비 없이 민간 개방해 화 불렀다”

문제는 정부가 시장만 믿은 데서 시작됐다. ‘빠른’ 인력 도입을 위해 정부 혹은 준정부기관이 하던 일을 민간에 맡겼는데,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선용접공 인력 도입은 애초 코트라가 주관했다. 코트라가 송출국가 정부기관에 대상자(선발인원의 3배수) 추천을 요청하고, 송출국가의 추천 인원 중 용접자격증과 경력증명서를 심사해 기량검증 대상을 선발하는 형태다. 송출국가 정부기관이 개입하는 만큼 대상 인원의 검증이 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지난 4월 정부가 “현지 송출업체에서 직접 기량검증 대상자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추천 방식 변화는 현지에서 많은 인력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현지 송출업체로서는 국내 중개업체·수요업체에 연결해 주는 것이 곧 돈이 되는 구조다 보니 모집허가서 없이 인력을 모집하거나 충분한 서류 검증을 거치지 않고, 혹은 서류위조를 독려하며 인력을 소개했다.

지난 8~9월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에서 발생한 베트남 이주노동자 80여명의 무단이탈 사고가 단적인 예다. 전기공·도장공은 용접공과 다르게 서류심사만으로 입국이 가능한데, 현지 송출업체 관계자가 베트남 정부의 조사를 받자 서류 위조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무단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출국가쪽이 직접 대상자를 선정하는 절차가 빠진 뒤 헐거워진 제도는 ‘송출업체(기관)확인서 제출 불가’ 사태를 부르기도 했다.

단시간 내 빠른 기량검증 인원 모집은 성공했지만, 베트남 용접공 입국지연과 같은 뒷탈이 생긴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는 지난 4월 합동으로 기량검증 과정을 점검하도록 해 기량검증 부실화를 대비하겠다고 했지만 부실화를 막지 못했다.

“국내 수요인력, 외국 송출인력 ‘미스매치’ 논란도”

조선소 용접공 E-7 비자를 받으려면 중급 이상 용접공 자격증을 취득한 후 2년 이상 실무를 경험하고 현지 기량검증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애초 이런 요건을 갖춘 현지 인력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인력수요와 외국인력 공급의 ‘미스매치’다. 국내 중개업체 A사의 ㄱ대표는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용접공(E-7 노동자)은 애초 정해져 있다”며 “자격증을 가진 인력 풀이 한정돼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사람이 그 수를 넘으니 그게(인력을 데려오는 것이) 되겠냐”고 지적했다.

용접공으로 일한 경력이 2년이 넘더라도 각종 이유로 서류 증빙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ㄱ대표는 “사회보험 제도가 잘 마련되지 않았거나,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일한 경우 근로기간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지 기량검증 신청을 위해 제출하는 서류 중 하나인 경력증명서가 남발되는 정황도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는 태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모집한 국내 중개업체가 이주노동자 ‘용접공 경력확인서(경력증명서)’를 일한 회사(사용업체)가 아니라 근로자파견업체(아웃소싱업체)에서 발급해 제출했다는 탄원이 지난달 접수됐다. 해당 탄원인은 “파견업체에서 발급하는 경력증명서에는 필수적으로 첨부돼야 할 사회보험 납부 내역조차 없다”며 “파견업체 경력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개업체 B사의 행정사 ㄴ씨는 “(인력)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제도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니, 경력이 없으면 경력을 만들어야 하고 자격증이 없으면 자격증을 위조하는 것”이라며 “송출업체에서는 근로자 한 명 내보내면 돈을 버니 (유혹에) 말려들고, 우리 같은 회사가 (인력중개에 문제가 생길까 봐) 긴장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C중개업체 ㄷ대표는 주한 베트남대사관에서 확인을 거부해 논란이 됐던 ‘송출업체(기관) 확약서’를 두고 “현지 송출업체가 적법함을 확인한다는 내용인데, 이 내용 자체가 원래 기관이나 정부가 확약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황당해했다. 현지 송출업체나 이주노동자가 작정하고 위조하면 중개업체도 알기 어렵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맡긴 탓에 벌어진 일인 셈이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 두고
“바람직” vs “우려스러워”

정부는 지난 4월에 이어 두 차례에 걸쳐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를 두고 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수요업체·중개업체의 고용희망사유서, 고용계약서 등이 제출서류에서 빠졌다.

문배수 행정사(문배수 행정사사무소)는 간소화된 절차에 대해 “E-7 비자에서 가장 중요한 서류가 고용희망사유서인데 회사에서 외국인이 필요한 이유, 한국인을 채용하기 힘든 이유 등을 적어 내야 한다”며 “조선소 용접공의 경우 사유서가 없어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니 뺀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보다 더욱 간소화하고, 정말 실력만 보고 용접공을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중개업체 ㄱ대표도 “모집 자체를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며 “(용접공이)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소화 절차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해외 송출업체 C사의 ㄷ씨는 “비자 발급은 제도적으로, 행정적으로 잘 운영이 돼도, 문제가 발생하는 게 현실”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부실하게 운영되면서 해외 인력시장도 엉망이 돼 버린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ㄷ씨는 “베트남 송출업체는 과태료를 받고, 영업정지를 먹은 데다 인도네시아·스리랑카에서는 사기꾼들이 판치면서 (현지) 근로자 피해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시장이 혼탁해지면서 피해는 노동자가 입는 형국이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면적으로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절차를 간소화하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좋은 점이 있어야 하는데, 인력업체·브로커만 좋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조선소 E-7 비자의 경우 공공부문이 다 주도할 수는 없겠지만, 정비를 할 때가 됐다”며 “E-7 비자를 확대하는 시점에서 민간이 주도하게 하면 이해관계 당사자가 많아지기 때문에 공공부문으로 흡수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뒤에 민간에 개방하는 형태로 가더라도 공공부문이나 업종별 협회가 일단 중간자적인 역할을 더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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