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특정활동(E-7)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해 외국인력 도입을 확대하면 인력난을 겪는 조선업종 문제가 해결될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브로커 개입과 이주노동자가 비자 발급을 위해 지급하는 높은 수수료 문제가 또다른 복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E-7 비자를 발급받는 데 드는 비용이 코로나19 이전에 700만~1천만원이었다면, 최근에는 1천500만원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에 들어올 때 비용이 크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이탈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조선소 E-7 비자 발급 구조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조선업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새 시장 열렸다”
들끓는 브로커, 수수료 치솟아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수수료가 오르는 이유는 정부가 E-7 비자 인력 모집을 민간에 맡긴 것과 관계가 깊다. 국내 중개업체는 조선소 원·하청의 수요 인력을 확보하고, 현지 송출업체는 현지 인력을 확보해 거래하는 구조다. 찾아야 할 현지 인력이나 확보할 수요 인력의 규모가 클수록 중간에 브로커가 낄 확률이 커진다.

문해수 행정사(문해수 행정사사무소)는 “최근 조선소 용접공이 생기면서(자격 요건이 완화되면서) 한국 브로커들한테 전화가 많이 온다”며 “필리핀이든, 태국이든 (조선 용접공 모집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있다거나 한국에 연결(콘택트)된 회사(수요업체)가 있다, 혹은 콘택트된 회사는 없지만 인력은 충분히 있다고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문해수 행정사는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주관했던 때보다 시장이 혼탁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브로커도 이윤을 남겨야 하니 중간 단계가 많아질수록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오기 위해 내야 할 수수료는 높아지는 구조다. 필요 서류가 없어 만들어야 하는 경우라면 비용이 더 오른다. 물론 돈을 벌려고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런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니, 고스란히 채무로 남는다. 더 많은 돈을, 빨리 벌고자 하는 유인이 커진다는 뜻이다.

박기홍 금속노조 전략조직부장은 “웃돈을 주고 왔으니, 그 웃돈을 기간 내에 빨리 벌고 나가야 하는 문제는 계절근로자들에게도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계절근로자의 경우 전문성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 대신 인력업체가 외국인력을 모집한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 개입으로 인한 수수료가 높아지고 이는 이탈을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베트남이나 태국 노동자처럼 국내 이주노동자 체류자수가 많은 경우 이미 국내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사업장 이탈 후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거나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조선업 손해”

정부는 무분별한 저임금 외국인력 고용 방지를 위해 조선소 전기공·용접공·도장공의 임금을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 80% 이상(연 3천219만원, 월 268만원)으로 정하고 있지만 조선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를 붙들어 두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소 안 노동강도가 매우 강한 터라 역시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업·어업 이주노동자 임금을 감안하면 많은 수준이 아니다.

A중개업체 ㄱ대표는 “외국인력은 작업환경에 민감하다”며 “조선소에서는 한여름 7~8월에 용접하면서, 철판 위 삼겹살도 구워먹을 수 있는 환경인데 일이 힘들면 이탈할 수 있다”고 전했다. B중개업체 행정사 ㄴ씨는 “비전문취업(E-9) 비자는 단순 노무고, E-7은 특정활동 비자인데도 임금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며 “최저임금을 받아도 연장근로를 하면 (GNI 80%) 그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ㄴ씨는 “농·축산업이나 어업 이탈률이 높은 이유는 제조업에 가면 더 편하고, 임금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며 “돈 많이 준다고 하면 유혹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탈은 발생하고 있다. 최민수 금속노조 전남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파워공 소속 업체에서도 이주노동자가 한두 명씩 출근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린다”고 귀띔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소 하청부문에서 일하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E-9, 재외동포(F4) 비자로 들어와도 마찬가지인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자기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1천500만원씩 수수료를 내고 들어오면, 잔업할 곳이나 특근할 곳을 찾는데 이렇게 되면 조선소들도 중장기적으로 손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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