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은 자발적 실업에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이 늘고 있단 의미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맥락은 지우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안전망으로 실업급여 제도가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제도개선이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핀다. <편집자>

정부가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으며 실업급여 하한액을 축소하고, 실업급여 반복 수급시 수급액을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에 참석한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의 말을 빌리면 “최저임금 연동 하한액과 손쉬운 수급 요건은 실업급여 반복수급, 면접 노쇼(No Show) 등 근로의욕 저하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달리 말하면 제도 장벽이 낮아 실업급여 제도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려는 수급자가 생기니, 진입장벽을 높이고 보장범위는 낮추겠다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 불안정성이 커지고 반복 실업을 낳는 노동시장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한액 높지만, 지급 기간 짧아
도덕적 해이 근거 없어

우리나라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로 2022년 기준 월 184만원 수준이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근로소득(179만원)과 비교하면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가깝거나 조금 높다. 실업급여 하한액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높다는 주장도 일부 사실이지만 지급 기간을 고려하면 높은 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의 실업급여 최대 지급일은 270일이지만 일본(360일)과 독일(24개월), 스위스(520일) 등보다 낮다.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하한액 높아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 부정수급이 발생한다는 주장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실업급여 수급자는 163만1천명으로 이 중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건은 2만3천883건이다. 실업급여 수급자 대비 부정수급건 비율은 1.46%였다. 10년 전인 2013년(1.89%) 보다 오히려 줄었다. 최근 10년 새 부정수급 비율이 2%를 넘긴 것은 2016년과 2017년뿐으로 나머지 해에는 2%가 채 안 됐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모든 정책은 왜곡이 조금씩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부정수급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면 정책이 실패한 것이지만, 부정수급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실업급여 제도 자체가 잘못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식의 논리는 실업안전망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실업급여 반복수급 제재시,
선의의 피해자는 어쩌나”

실업급여 반복수급 개선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한 것으로 여야 의견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노동부는 강조한다.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제고하고 구직활동을 촉진”하려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정부안과 장철민·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안 4개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직일 이전 5년 동안 실업급여를 3번째 받게 되면 실업급여액을 최대 50%로 삭감하는 안이 담겼다.

하지만 반복수급시 실업급여 삭감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높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20년 ‘구직급여 반복수급 원인 분석 및 제도개선 방안 검토’ 보고서를 내고 “3회부터 제재하면 고의적으로 매년 수급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할 수 있고 특히 젊은층일수록 그렇다”고 지적했다. 당시 연구진은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아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단기 공공일자리 사업, 해운업 등 일부 업종의 반복 실업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권익성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작성해 발간한 <노동패널 브리프> ‘실직 전 고용 안정성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 및 재취업 행태’에 따르면 “실직 전 고용이 불안정했던 실업급여 수급자의 61.3%는 재취업 후에도 여전히 임시·일용직에 머물러, 직업훈련이나 교육훈력 등 인적자본의 축적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상용직·임시일용직 간 격차는
논의 테이블 밖으로 밀려나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축소가 고용보험 개선책으로 거론되면서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점점 커지는 문제, 고용보험 제도 안 상용직과 임시·일용직 노동자 간 격차에 대한 논의도 자취를 감췄다.

OECD 2022년 한국경제보고서가 강조한 것은 전통적인 고용 형태 중심으로 설계돼 비정규 노동자를 배제해 사회보장 격차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의 경우도 고용보험이 가입 문을 연 지 10년이 넘었지만 가입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고용이 증가하면서 고용보험 제도 개선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공론화가 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2020년 12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새로운 고용형태가 빠르게 확산돼 근로자와 자영업자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취업자에 대해 제도적 보호를 확대해야 할 시점”이라며 “고정된 사업장을 넘어 ‘일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관리되는 사회보험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의 일환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자영업자 고용보험 적용 확대 연구회가 지난해 3월 자영업자에게 고용보험을 당연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지만 이후 논의는 잠잠하다.

권익성 책임연구원은 “실직 전 고용이 불안정했던 근로자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고용이 안정적이었던 근로자의 약 65% 수준으로 고용안정성에 따라 실업급여 수급률에 격차가 난다”며 “취업 취약계층의 고용보험 가입률 제고를 위해 고용보험 적용 범위 확대와 함께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의 가입 독려를 위한 적극적 홍보와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조 활동 장려, 단결권 보장부터”

정부는 불안정 일자리 감소 정책 대신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 파견 제도 확대 검토 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가 고용보험 제도 개선 의지를 가졌는지 의심을 품는 이들이 많은 배경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나오는 정책을 보면 오히려 밑(하위 계층)을 더 끌어내리는 것”이라며 “취약계층의 숨 쉴 여지를 최소화하고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말을 잘 듣게 하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승윤 교수는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텐데, 노동자가 협상력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안전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다지려면 노조활동을 장려하고 단결권을 보호·보장해야 한다. 더 먼 길 같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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