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보험은 자발적 실업에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이 늘고 있단 의미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맥락은 지우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안전망으로 실업급여 제도가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제도개선이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핀다. <편집자>

대학을 휴학 중인 김나은(24·가명)씨는 지난해 5월부터 8개월간 지역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졸업 후 영상편집 일을 하려면 경력과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계약직이었지만 괜찮았다. “재학생 신분이고 오래 일할 직장을 찾은 것은 아니니까요.” 김씨가 말했다. 결국 계약기간 종료일은 다가왔고 그는 일을 그만뒀다. 6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았다.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의 공통점은 사업주가 필요할 때 책임을 지지 않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인력이란 점이다. 나은씨의 사례는 신규채용에 지원하려면 경력이 필요한 취업 시장과 경력을 쌓으려는 청년을 값싼 인력으로 쓰고 버리는 노동시장 구조가 결합된 결과다.

졸업 후 정규직 일자리 못 꿈꿔

나은씨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마친 뒤 퇴근했다. 월급을 받았고 자신의 일이 아닌 영상 기획, 대본 작성까지 떠맡았다. 일하는 형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다를 바 없었지만 동료는 그를 협력직원이라고 불렀고 그의 진짜 고용형태는 프리랜서였다.

예술인고용보험이 있던 터라 프리랜서인 나은씨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실업급여는 미래를 준비할 ‘틈’을 줬다.

“제가 취직을 하려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랑 병행하려면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실업급여 덕분에 생활비 걱정을 덜고 직무경험을 쌓는데 집중할 수 있었죠.”

실업급여로 그는 필요한 촬영장비를 샀고 해당 촬영장비로 자신의 업무능력을 입증할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이렇듯 미래를 차곡차곡 준비하지만 대학을 졸업 후 정규직 일자리는 바라지 못한다. 김씨는 “영상편집 업무는 대부분 프리랜서를 구하기 때문에 바로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많이 없다”고 했다.

방송산업 불안정 노동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전체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2020년 공공부문 방송사 50여개를 분석한 결과 직·간접고용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의 비율이 약 42%(6천999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프리랜서 규모는 15.9%(2천659명)로 이 중 10명 중 7명이 여성이다.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프리랜서 월평균 임금은 180만3천원으로 정규직 임금 대비 24.7% 수준에 그친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관계자는 “방송사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방송이 중단·종료·폐지되거나 개편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요즘에는 시즌제 프로그램이 많아져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기회가 예정보다 줄었다”고 설명했다.

고용보험 가입할 수 있게 됐지만
“부분실업급여 인정 안 돼, 한계” 지적

비단 방송계 일만은 아니다. 프리랜서·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근로기준법 밖 노동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 결과 특수고용 노동자 규모는 22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취업자의 8%가 넘는 규모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의 ‘2022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플랫폼 종사자는 약 80만명이다. 별점 같은 고객만족도 평가가 일의 배정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 규모는 2021년보다 66만명(20.3%) 늘었다.

정부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해 왔다. 2020년 12월 예술인고용보험이 시행됐고, 2021년 7월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일부 직종에 고용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헐겁고 느슨해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손재광 학교비정규직노조 방과후강사분과 전국분과장은 “방과후강사는 여러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니 일부 수업이 중단돼 소득이 줄어도 부분실업이 인정되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통상 1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실제 겨울방학 기간인 1~2월은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학교가 많아 수입이 ‘0원’일 때도 있다. 10개월 단위로 계약해 완전 실업인 기간이 있는 경우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8년차 방과후강사로 일하는 고명호(40) 학교비정규직노조 제주지부 방과후강사분과장은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시행 후 올해 처음 실업급여를 받았다. 위수탁계약이 지난해 3월부터 그해 12월까지로 명시돼, 올해 1~2월은 완전한 실업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후기’를 묻자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유가 생기더라”고 했다. 고용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그는 매해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5년에 3회 이상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반복수급이 매해 늘고 있다며 패널티를 부여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방과후강사처럼 반복실업을 야기하는 고용구조가 먼저 개선하지 않는다면 명호씨 삶은 점점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의 사회적 위험은
실업 아닌 소득감소로 나타나”

사각지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전체 자영업자 수는 563만2천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의 20%가 넘는다. 하지만 고용보험 가입률은 2020년 기준 고용보험 가입률은 0.57%에 그쳤다. 2012년 1월부터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의무가입이 아닌 탓에 1%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임금근로자가 아닌 사람들은 소득이 불규칙해서 이들의 사회적 위험은 실업의 형태가 아닌 소득감소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며 “그런데 고용보험 제도는 소득의 감소나 단절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실업을 보호하는 제도로 설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사람들의 경제활동 형태에 맞게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며 소득기반 고용보험 제도 추진, 부분실업급여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우리는 자발적 실업과 부분실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본캐(본래 캐릭터), 부캐(부 캐릭터), N잡러 같이 현재 일을 해도 또 다른 일자리로 들어가기 위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런 것에 대한 정책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로 디지털 전환 시대로 가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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