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보험은 자발적 실업에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이 늘고 있단 의미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맥락은 지우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안전망으로 실업급여 제도가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제도개선이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핀다. <편집자>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던 김정화(40·가명)씨는 이달 일을 그만둬야 했다. 원아 정원이 채워지지 않아 두 반으로 나눠 운영하던 ‘만 1세반’을 통합하면서 보육교사 정원이 줄었고, 결국 김씨가 짐을 쌌다.

김씨가 실업급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2018년에도 실업급여를 받았다. 첫 아이를 임신해 출산휴가를 쓰려고 하자, 퇴직금을 적립하는 게 부담된다는 사용자의 말에 직장을 옮겨야 했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자 돌아온 것은 “그만둬라”는 통보였다. 그때도 김씨는 실업급여를 받았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결국 부당해고로 인정받았지만 원장은 김씨의 원직복직을 거부했다.

그의 실업이 대체로 그의 뜻과 무관했듯이 실업급여 수급자와 지급액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노동자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힘들다. 반복 실업을 유발하는 최근 노동시장 구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간제 노동자 4년 새 89만명 증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가지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는 증가 추세다. 2019년 380만명(18.5%)이던 기간제 노동자는 2022년 469만명(21.6%)로 늘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 기간제 노동자인 경우가 많고, 그런 탓에 구직급여 수급자 비율도 많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구직급여 신청자수를 성별로 나눠 보면 남성이 19만9천140명, 여성은 24만662명이었다. 3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수 대비 각각 2.37%, 3.6%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지난 12일 열린 당정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 참석해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며 실업급여 제도 개편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그가 콕 집은 이들은 대체로 불안정 노동시장에 내몰려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인 셈이다.

경력 인정 안 돼, 10년 일해도 최저임금

김정화씨가 일해 온 어린이집은 장기근속이 어려운 대표적인 일자리 중 하나다. 2021년 ‘전국보육교사실태조사(어린이집 조사보고)’에 따르면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2021년 당시 해당 어린이집 재직 경력은 평균 3년5개월로 나타났다. 같은해 여성 평균 근속연수 5.4년(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비교하면 2년 가량 적다.

2003년부터 어린이집에서 일한 김씨는 20년 경력이지만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는다. 세금을 제하면 월 200만원이 채 안 된다.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해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금액이 있어 그나마 숨통을 튼다. 하지만 지원수당은 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간외 각종 수당과 퇴직금, 실업급여 산정기준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호봉제가 적용돼 민간·가정 어린이집보다 처우가 조금 나은 편이지만 비중이 적다. 하지만 영유아 62.8%는 민간·가정 어린이집에서 보살핀다.

김씨는 “보육교사들은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해고가 쉽기 때문이다”며 “민간·가정 어린이집은 초임교사가 오든 3년, 10년 경력교사가 오든 최저임금만 지급한다”고 말했다.

10년 일해도 요양보호사는 1년마다 계약갱신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한정애(가명·52)씨는 경남의 한 요양보호시설에서 10년 넘게 요양보호사로 일했지만, 경영상 이유로 요양보호시설이 지난 2월 폐업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퇴직 전까지 그는 1년 단위로 기간제 계약을 맺고 일했다. 계약은 매해 자동 갱신되는 형태로, 계약서를 쓰지 않는 해도 있었다. 정규직으로 일했는지, 비정규직으로 일했는지 묻자 “거의 정규직”이라고 답했다. 임금은 최저임금이다.

현재 실업급여를 받으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최저시급 받으면서 일하려면 집과도 가까워야 하는데, 아직 마땅한 데를 못 찾고 있다”며 “기술 없고 능력 없고 하면 식당밖에 갈 데가 없다. 지인이 다니는 식당 2~3곳 알아봤는데, 장사가 안 돼 있는 사람도 줄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만 55세 고령자의 경우 2년 이상 고용해도 계약직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한씨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다. 반대로 실업급여라는 사회적 안전망을 활용할 가능성은 계속 높아진다는 뜻이다.

한정애씨가 일하는 보건복지업의 비정규직 규모는 지난해 8월 기준 138만8천명으로 비정규 노동자가 제일 많은 산업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전체 구직급여 신청자 수가 6만8천79명으로 제일 많은 산업이기도 하다.

“정부, 기간제 노동 최소화 등 정책 있어야”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고용보험은 실직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고용주와 노동자가 기여금을 내는 것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권리는 노동자에게 당연히 있다”며 “도덕적 해이나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논의로 이어지는 것 자체가 고용보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불안정한 일자리,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재취업해도) 일자리가 고되고 힘들거나, 갑질에 노출된다든가,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면 노동자가 (회사를) 나오게 되는 요인이 된다”며 “때문에 이직률도 높고 근속도 짧은 것이다. 실업급여 하한선을 낮추거나 없애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틀린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실업급여 제도 개편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하려는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실업급여는 계약기간 종료나 경영상 해고든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비자발적으로 이직하는 경우에게만 주어진다. 노동자들 탓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계속해서 파트타임(시간제)과 기간제 노동이 늘어나는 추세로, 정부가 실업급여 반복수급이 늘어난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기간제 노동을 최소화한다든가,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최소화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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