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구직급여 덕분에 하루를 더 산다는 생각을 했다. 일할 때 냈던 고용보험료에 따라 받은 것인데 정부(와 여당)가 해외여행을 다니니, 달달하니 하는 조롱을 하는 것이 황당하다.”

SK브로드밴드 콜센터 노동자로 일하다 실업급여를 받았던 김아무개(37)씨는 최근 당정협의 ‘시럽급여’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5년 당시 1년 계약 종료로 실직하면서 하루 4만원 가량의 구직급여를 받았다. 그나마도 90일이 지나자 그가 재취업을 하지 못했음에도 급여는 끊겼다.

또 다른 노동자 김아무개(37)씨도 남편이 다니던 직장 폐업으로 구직급여를 받아야 했던 시기를 가슴 아프게 기억했다. 당시 임신 중이라 일을 할 수도 없었던 터라 정부에서 주는 실업급여가 온전히 두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는 “실업급여 수급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듣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정부, 급여를 적선처럼 여겨”

정부·여당이 공청회를 열고 구직급여 하한액 폐지를 강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이 실업급여를 시럽에 빗대 희화화하고,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여성·청년은 이 기회에 쉬면서 해외여행 가고 명품을 소비한다”며 잘못된 사실을 말하는 등 설화까지 겹쳤다.

당장 야당은 들끓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자 스스로 내는 부담금으로 실업급여를 받는데 적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정부·여당 태도가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여당이 월 180만원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겠다며 연 공청회에서 청년·여성 구직자와 계약직을 폄훼했다”며 “실업급여가 너무 높아 노동의욕이 저하되고 노동자가 취업하지 않는다는 상관관계가 증명도 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구직활동 전제로 6만120원~6만6천원 수급

실업급여는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생활안정과 구직활동 촉진을 위해 받는 돈이다. 구직급여·취업촉진수당·연장급여·상병급여로 구분한다. 구직급여는 고용보험 적용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고 비자발적으로 퇴사한 뒤 재취업 활동할 때 지급한다. 재원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다. 구직급여일액은 이직 전 3개월 평균임금의 60%, 상한액 6만6천원이다. 하한액은 6만120원이다. 정부·여당이 “손보겠다”고 지목한 것은 하한액으로, 이를 폐지하거나 낮추겠다는 의미다.

정부·여당 주장의 근거는 지난해 9월19일 공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경제보고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19일 이 보고서 요약 분석본을 공개하고 OECD가 “사회안전망 수혜자가 저임금 직장 재취업 유인이 낮다”며 “실업급여 하한 하향조정, EITC(근로장려세제) 적용대상 확대 검토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OECD “낮은 가입률, 구직자 저소득 시장으로 내몰아”

OECD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직장 복귀에 대한 인센티브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한 점은 맞다. 그런데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OECD는 근로소득에는 과세하고 고용보험에는 과세를 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최저임금 노동자는 ‘비과세’로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실업급여를 받는 게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OECD는 해당 보고서를 통해 “한국 고용보험의 약점은 보장 범위가 낮다는 점”이라며 “낮은 고용보험 가입률과 빈번한 실업은 구직자가 가능한 빨리 취업하도록 강요해 질 낮은 일자리를 영속화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OECD는 “자영업자 등의 저조한 참여로 고용보험 수혜대상이 50% 미만”이라며 “효과적 이행수단을 통해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 확대 추진”을 강조했다.

정부여당의 주장처럼 하한을 없애거나 낮출 경우 드러날 효과는 불 보듯 뻔하다. OECD 보고서가 지적한 것처럼 저임금 노동자 상당수는 고용보험 바깥에 있거나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로 취업이 예상된다. 저임금 노동시장이 고착화하는 셈이다. 이는 사실 윤석열 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청사진’이다. 정부는 지난 1월3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5차 고용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취약계층 현금지원 삭감 △직접일자리 사업 축소 △실업급여 수급요건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놓은 게 외국인력 허용 확대다. 사람을 구하기 힘든 저임금 일자리에 외국인력을 우선 채워 넣고, 부족하면 실업급여 등 제도의 울타리를 허물어 저임금 노동자 공급을 늘리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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