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노동, 사라진 교섭 권리

간접고용 노동자는 ‘진짜 사장’을 찾아 십수 년을 헤맸다. 교섭으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원청은 ‘내가 사장이 아니라’며 대화를 거부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플랫폼 사용자를 간신히 교섭테이블로 끌고 왔지만 노동조건 개선에 큰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꽉 막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열쇠는 단체교섭이다. 교섭할 권리를 잃은 사내하청·간접고용 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묻는다. 누구랑 대화하란 말인가. 무엇을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특별취재팀 임세웅·강예슬·이재·제정남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저희는 올해 하청 교섭 안 합니다.”

김현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직지회장이 지난 22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지회는 현대차 울산공장 하청노동자들이 모인 곳이다. “하청사들이 교섭에서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자기네들이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최종 결정은 원청에서 하는 거다, 그렇게만 되풀이하는 거죠.” 수화기 너머로 라이터 불을 붙이는 소리에 이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는 원·하청 업체와 만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교섭 방식을 시도했다. 그리고 모두 실패했다.

교섭방식 1 : 하청업체와 교섭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회가 만들어진 2003년부터 사내하청업체들과 교섭을 시도해 왔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전주·아산에 하나씩 있는 비정규직지회는 업체별 요구안뿐만 아니라, 지회 공동요구안을 만들어 교섭을 시도해 왔다. 고용보장과 임금·수당 등을 같은 것을 동일한 기준으로 하청업체에 심기 위해서다.

업체별 교섭은 있었지만 같은 기준을 전 하청에 심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2022년 울산공장 사례는 대표적이다. 22개 사내하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했다. 11개사는 입장을 내지 않았고, 나머지 11개사는 지회와의 교섭을 거부했다. 결국 교섭은 타결되지 않았다.

하청업체가 어떻게든 교섭에 나서지 않으려는 이유를 지회는 알고 있다. 하청은 원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원청이 마음에 들지 않는 하청업체를 폐업시킬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청 노사가 원청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으로 교섭을 타결하면, 원청은 폐업을 권유해 하청 노사합의를 무효화한다. 김 지회장은 “업체 간판을 바꿔 버리는데, 고용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단협은 승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한 그도 소속 회사가 다섯 차례나 바뀌었다.

전주공장과 아산공장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지회장 김광수)에 따르면 올해 하청업체와 교섭을 6차례 진행했다. 회사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지회는 지난 20일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물론 지회가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다. 김광수 지회장은 “결과는 크게 못 내더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교섭 결과가 결국 원청에서 내려오는 것을 알지만, 하청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고 동시에 쟁의권 확보 절차도 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섭방식 2 : 원청 교섭에 하청 요구안 끼워넣기

비정규직지회들은 하청 노사교섭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규직 교섭에 하청 문제를 올리는 시도도 병행했다. 원청 정규직이 가입한 현대차지부를 통해서다. 현대차지부에는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사업을 담당하는 이들이 있다. 비정규직지회 대표자들과 주기적으로 연대회의, 1박2일 간부 수련회와 같은 공식사업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시로 소통이 이뤄지는 만큼 기대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김광수 지회장은 부정적이다. “연대에 의지를 가진 정규직 간부 몇 명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현대차는 비정규직지회 요구안은 교섭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직접 사용자가 아니며 하청 노사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지회의 요구는 원청이 개입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올해 지회 요구안인 ‘현대자동차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기본협약’만 봐도 그렇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하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업체 변경시 고용·근속·단체협약 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정규직만 이용할 수 있는 현대 산업보건센터나 구내식당 메뉴를 모두가 이용 가능하게 하는 것, 정규직과 같은 기본급과 성과급을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관심이 없다. 그나마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활발한’ 교섭인 원청 노사교섭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는 언감생심 끼어들기조차 어렵다. 그룹 계열사의 교섭조차 현대차를 중심으로 수직적으로 일괄 관리하고 있는 구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사가 교섭을 시작하면 노무관리 담당자들은 각 지부나 지회의 요구안을 받아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본사로 보고한다. 계열사의 맏형격인 현대차 노사교섭이 타결되면, 본사는 이를 토대로 다른 계열사들에게 제시안을 내려보낸다. 현대차가 획득한 임금인상률에 연동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양재동 가이드라인’이다. 이런 구조에서 정규직노조는 임금이나 성과금, 정규직 복지 같은 사안에만 매몰되기 쉽다.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다루더라도 현대차지부가 양재동 가이드라인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이덕화 현대차지부 대외협력부장은 “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로 요구안을 올리고, 우리는 연대차원에서 비정규직 임금인상을 사측에 요구한다”며 “같은 (현대차공장)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긴 하는데, 우리가 단체교섭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현대차지부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것은 현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불법이다. 현대차지부가 정규직과 사무직, 비정규직을 모두 하나의 조직으로 만드는 ‘1사 1노조’로 전환한다면 비정규직 처우를 다루기 현재보다 수월할 수 있다. 2006년 이후 지부 대의원대회에 세 차례 안건으로 올라갔고, 모두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교섭 방식 3 : 원·하청이 함께하는 교섭

원청 노사끼리, 또는 하청 노사끼리 하는 현대차의 교섭 구조가 흔들렸을 때가 있긴 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다. 대법원은 2010년 7월22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 사건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2012년 2월23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확정 판결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사과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고, 현대차 사측은 정규직 특별채용을 열겠다며 대화를 제안했다. 정규직 노조인 현대차지부도 적극 나서면서 원·하청 공동교섭의 판이 깔렸다.

교섭은 4년을 끌었다. 현대차와 현대차지부,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와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는 교섭 시작 2년 뒤인 2014년 8월, 4천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는 데에 합의했다. 2016년 이후에는 줄어드는 정규직만큼 사내하청 노동자를 우선채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울산 비정규직지회는 특별채용방식이 현대차의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울산 비정규직지회는 결국 2016년 3월15일 특별채용에 합의했다. 직접생산 하도급업체에 재직하는 인원 중 2천명을 2017년까지 특별고용하고, 2018년 이후에는 직영 소요인원 발생에 따른 기술직 공개채용시 직접생산 하도급업체 노동자를 일정 비율 채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불법파견 소송 패소로 부담을 느낀 원청을 억지로 끌어들인 원·하청 공동교섭의 생명은 짧았다.

이후에도 법원 판결 없이는 원·하청 노사가 교섭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현대차 노사는 2017년 12월 임단협에서 2021년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3천500명을 특별채용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까지 사내하도급 및 직영 촉탁계약직 50% 감축, 중소기업 상생안 마련, 4차 산업혁명 대응 관련 노사공동 협의체 구성도 약속했다. 현대차에서 사내하청을 줄이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모두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전 사례와 다른 것은 대법원 확정판결 전에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고, 정규직 노사만의 합의라는 점이다.

현대차·기아 비정규 노동자들은 2021년 9월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서울지방노동청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노동부 중재로 원·하청 특별교섭을 열기로 했지만 안건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됐다. 반면에 2022년 10월 대법원이 현대·기아 간접공정도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현대차 사측은 현대차지부와 3개 지회가 참여하는 특별협의를 수용했다. 같은해 12월 확정판결을 받은 사내하청 노동자 직접고용 조건에 합의했다.

교섭 방식 4 : 산별교섭

2003년부터 20년 역사를 가진 금속 노사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하청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순 없을까. 시도는 있다.

매번 금속노조 산별교섭 요구안에는 하청노동자들이 내 온 목소리가 포함됐다.

올해 요구안을 살펴보면, 금속산업 최저임금 13.2%를 인상한 1만1천원과 월 통상임금 248만6천원 중 높은 금액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산별 내 실질적 최저임금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도다. 핵심 의제 중 하나로는 비정규직 철폐와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넣었다. 세부 요구로 불법파견 근절과 자회사 확산 규제, 인력충원과 다단계 하청구조 철폐, 자동차 부품사 총고용 보장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산업전환기 지속가능한 미래 발전과 고용안정,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책임성 있는 산업전환 역시 요구안에 포함됐다.

다만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산별교섭에 큰 기대가 없다. 현대차 사측이 금속 노사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현제 지회장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현대차 울타리 안에 있는 사업장이라 산별교섭의 영향도 없고, 단협이나 임금 모두가 현대차와 현대차지부의 교섭과 연동됐기 때문에 그들의 교섭이 곧 산별교섭”이라고 했다. 김 지회장은 “부품사도 그 회사 하청도 다들 현대차의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기 때문에 현대차 교섭만 지켜본다”고 덧붙였다. 김광수 지회장도 “현실적으로 현대차지부가 하는 역할이 크지만 원청 노사교섭에서 비정규직 얘기를 잘 안 하고, 현대차도 워낙 강경하게 선을 긋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선택 : 원청에 직접교섭 요구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선택한 교섭 방식은 원청과의 교섭이다. 원칙론일뿐이다. 비정규직 단위에서 통합대의원대회를 열어 원청 교섭 안건과 교섭위원을 결정한다. 그 내용을 금속노조 본조에 올리면, 요구안들을 본조에서 받아 공문을 전달한다. 사측은 외면한다. 역시 원청은 꿈쩍 않는다.

비정규직지회는 올해 5월24일부터 현대차에 직접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는 공문을 보내 “관계 법령에 따르면 단체교섭 의무를 부양하는 사용자는 명시적 내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사용자여야 하는데, 당사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과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며 “단체교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이후부터는 대화를 시도하는 비정규직지회와 이를 막으려는 회사의 충돌이 이어졌다. 충돌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흐른다. 비정규직지회는 상견례 날짜와 장소를 통보하고, 시간을 맞춰 상견례 장소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으로 향한다. 경비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회의 울산공장 출입을 막기 위해서다. 몸싸움이 일어난다. 울산공장이 근무지인 노동자들만 통과한다. 그들은 요구안을 들고 본관까지 향한다. 현대차 사측이 나타나는 일이 없다. 본관은 잠겨 있다. 본관 문에 요구안을 걸어 둔다. 다음 상견례 일시와 장소를 통보한다. 원청은 반응이 없다. 다음 상견례날에 같은 일이 반복된다.

지난 23일로 3회차 교섭일이 지났다. 교섭요구안을 본관에 걸어놓기 위한 충돌이 세 번 반복됐다. 김현제 지회장은 “교섭결렬 선언을 하고, 다음 주에는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들어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김광수 지회장은 “‘대가리 깨져도’ 들어가고 보는 것”이라며 “문전박대 당하고, 무시당하고 끝나는 게 매년 반복된다. 이를 통해서 합의가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올해라고, 내년이라고 뭔가 다를까. 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통과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김현제 지회장은 “사용자 범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로 확대한다면, 일부의 특권처럼 사용되는 교섭을 모두가 누릴 수 있고, 차별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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