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말과 행동이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구호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방안은 많다. 그중에서도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결사체를 만들어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행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것을 유력한 방안으로 꼽는다.

현 정부는 양대 노총을 포함해 기존 노조를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주범으로 꼽지만, 기존 노조 조합원들과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취약계층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에는 인색하다. 관련한 정부정책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1년여간 정부가 주력한 것은 ‘법치’란 이름의 노조탄압이었다.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내부시장 노조와 외부시장 노조를 가리지 않았다. 복기해 보자.

비정규직 교섭은 ‘불법화’ ‘억누르기’
기존 노조는 자존감 상처 주고 힘 빼기

지난해 6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며 가로·세로·높이 1미터 크기의 철구조물에 자신을 가둔 지 한 달 남짓 되던 때, 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였다. 당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결정권이 없는 하청업체와의 교섭에서 성과가 없자, 원청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그들의 싸움으로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개별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결국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곧 국회 본회의 처리가 예상되지만 줄곧 반대 목소리를 내 온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정부는 노조법 개정 대신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격차 해소를 위해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꾸려 협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상생협의체에는 원청이든 하청이든 ‘노조’가 없었다.

지난해 11월 특수고용직인 화물노동자가 최저임금이나 다름없는 안전운임제를 전 업종에 확대해 달라며 차를 세우자 돌아온 건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이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관례화한 건설노동자의 월례비 지급 요구, 조합원 채용 요구 교섭 관행을 불법으로 내몰면서 구조적 문제는 지워 버렸다. 정부는 이런 행위를 ‘법치’란 말로 정당화했다. 목숨을 걸고, 때로는 불법에 대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비정규직이 내려던 목소리는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8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들춘 것은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 자녀의 우선·특별채용 내용을 담은 노조의 해묵은 단협 조항이었다. 단협 시정명령 대상은 상급단체 집단탈퇴 금지 규약으로도 번졌다.

그해 12월에는 노조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며 노조에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하며 노조와 대립각을 세웠다. 최근에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1천명 이상 노조는 결산자료를 공시를 하지 않으면 세액공제를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모두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노동 3권을 약화하는 조치다. 윤석열 정부가 진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동자 이해대변제도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개선책’이라 이름 붙이기도 쉽지 않다. 근로자대표제 개선이 그렇다. 당정은 근로자대표는 과반수노조가 맡고, 과반수노조가 없다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맡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과반수노조와 근로자위원조차 없다면 노동자 과반이 참여하는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근로자대표를 뽑는 방안을 마련했다. 근로자대표의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고, 사용자가 근로자대표 활동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특정 직종·직군 단위의 ‘부분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있으면 근로자대표는 그 의사에 따르도록 했다. 근로자대표제는 노조가 없거나 그 힘이 현저히 약한 사업장의 노동자 이해대변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부분근로자대표제는 과반노조의 힘은 물론,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방어권마저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사회적 대화라도 잘해야 하는데…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부는 상반기 중 노동시장 이중구조 대책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대로라면 유야무야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가 모인 연구회·자문단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권고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탑다운식 결정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사회적 대화가 재개될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포스코 하청노동자의 교섭 타결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경찰에 무력진압된 뒤, 구속까지 되면서 한국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경사노위가 운영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는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 등 새로운 고용형태 노무제공자를 위한 제도 방안을 논의한 결과를 상반기 중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를 토대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계획도 무산된 셈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문가들이 만든 안을 정부가 받는 것은 현장 수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노사가 중심이 돼 현실에 맞게 합의해야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노사관계가 발전하려면 노사가 중심이 돼 서로 파트너십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노사의 조율의지로 끌고 가야 하는데, 정부가 노조를 적대시하면 노사를 중심에 세우는 체질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중구조 개선 미룰 수 없다면
“초기업 교섭, 원·하청 공동교섭해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이 나온 지 이틀 뒤 열린 국무회의에서 신속한 정책 추진을 요구하며 한 말이다. 전문가들도 이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가야할 길은 다르다고 말한다. 하나같이 ‘단체교섭’ ‘초기업 교섭’ ‘사회적 대화’를 강조한다.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사회학)는 “격차를 없애려면 최저임금을 인상하거나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률을 높여 가야 한다”며 “조직이 어렵다면 초기업단위 교섭과 단협적용을 늘려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도 “노동시장 임금격차를 완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이라며 “전년도 단체교섭 임금인상률, 물가인상률과 같은 요소들이 최저임금에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원·하청 노사가 모두 참여하는 교섭 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나 택배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플랫폼 사회적 대화포럼과 같은 교섭체가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대안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사회적 대화는 결국은 이해 정치이고, 이를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당사자가 참여해 같이 바꿔 나가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단계적 사회적 대화 설정은 이후 오히려 강압기조로만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단계적 사회적 대화란 원·하청 노사가 앉아 합의를 이뤄 내기 어렵다며 원·하청 사용자만 모여 먼저 대화를 시작한 조선업 상생협의체 같은 대화 형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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